지난 5월 6일 목요일날 서울 삼성동 COEX 홀 C(3) (구 대서양홀)에서 열린 '제 8회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주류 박람회로는 아마도 가장 국제적이고 규모에서도 가장 큰 박람회로 알고 있는데요, 벌써 8회나 되었군요. 지금까지 이 박람회에는 세 번 정도 참석했었는데, 해마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올해의 변화라고 한다면 와인 부쓰가 상대적으로 줄고, 사케 부쓰가 많이 늘었다는 것. 고량주도 참석 업체가 눈에 많이 보이고 국산 와인 업체도 숫자가 좀 늘었다는 것. 막걸리는 시중의 인기가 무색하게 한 업체만이 참가했더군요. 그리고 와인에 관련된 잔이나 디캔터 같은 악세사리를 전시한 부쓰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주류 박람회의 경우 일일이 시음을 하다보니 아무리 적은 양을 마신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음을 하다보면 취기가 올라오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음을 하고 나서 마시지 말고 버킷 같은 데다 뱉어야 취기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남은 술을 버릴 수 있는 버킷은 있어도 입안의 술을 뱉을 만한 버킷은 눈에 별로 띄지 않더군요. 더구나 사케나 고량주 같은 경우는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많았구요. 그러다 보니 참가한 모든 업체의 주류를 다 시음해보지 못했습니다. 뱉지 못하고 조금이나마 마시게 되는 상황에서 전부 다 시음했다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막판에 가서는 상당히 취기가 올라온 상태에서 집으로 귀가하였답니다. 술에 관심이 많고 시간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이틀이나 삼일에 걸쳐 참석하셔서 박람회에 나온 모든 주류를 충분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박람회 참관비가 만만치 않게 들겠지만 투자한 만큼 충분히 본전은 뽑으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관련 포스트는
1. 와인편
2. 사케편
3. 기타 주류편
4. 악세사리편
으로 총 4회에 걸쳐 올리게 되며, 사진과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됩니다.
그럼 와인편부터 시작합니다.
1. 와인편
1) 미국
박람회장 가장 우측에 설치된 미국 와인 부쓰부터 시음 시작입니다. 미국 농업 무역 사무소에서 몇몇 업체의 부쓰를 설치하고 와인을 전시해놓고 있었습니다.
CEI(Colony Enterprise, Inc).라는 업체인데, 재미있게도 와인을 설명해주시고 시음주를 따라주시는 분들이 모두 50~60대의 한국인(?) 남성분들이더군요. 다른 와인 부쓰는 대개 젊은 남자나 여자분이 설명과 시음을 해주었던 것과 비교되어 기억에 남더군요.
첫 시음주인 라노(Llano Chenin Blanc). 전반적으로 달달하고 약간 신 맛이 나는 평범한 스타일의 와인. 더운 날 안주 없이 가볍게 마시면 좋을 듯한 맛.
두꺼비 라벨이 재미있는 토드 할로우 피노 누아 로제(Toad Hollow Dry Pinot Noir Rose 2008). 딸기향이 특징적이며 매우 시고 드라이 합니다. 식전주로 차갑게 해서 마신다면 입안에서 침이 꿀럭꿀럭 솟아나올 듯.
CEI에서 마지막으로 시음한 스테펜 빈센트 메를로(Stephen Vincent Merlot) 2008. 메를로로 만든 와인인데 품종의 특징을 잘 잡아내지 못한 듯 합니다. 드라이하고 쓴 맛, 그리고 향에서 비린내가 좀 납니다.
다음은 원 바인(One Vine)이란 와인업체의 와인입니다. 설명은 잘 생긴 재미교포 청년(?)이 해줬는데, 우리 말이 다소 서툴지만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신 와인은 총 5종.
첫 와인은 원 바인 샤르도네(One Vine Chardonnay) 2009. 버터향이 은은히 나며 토스트향이 살짝 느껴지는 가볍고 산뜻한 맛의 와인입니다. 오크 숙성을 조금만 한 듯 후루티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어서 마신 데메트리아 샤르도네(Demetria Chardonnay) 2008. 원 바인 샤르도네보다 좀 더 진한 맛이 나는 것이 오크 숙성 기간이 좀 더 긴 모양입니다. 달착지근한 버터향과 구수한 토스트향이 기분 좋은 와인입니다.
샤르도네(Chardonnay)하고는 커플과 같은 품종이죠? 데메트리아 피노 누아(Demetria Pinot Noir) 2007. 꼬리한 동물향과 향신료향이 특징적이며 살짝 바닐라향이 느껴졌습니다. 매우 드라이하며 살짝 쓴 맛이 느껴지는 와인.
다음은 월넛 시티 와인웍스 피노 누아(Walnut City Wineworks Pinot Noir) 2008. 베리류로 만든 캔디향이 매우 우아하게 펼쳐지는 와인으로 부드럽고 짙은 맛을 갖고 있습니다. 입안에서 걸리적거리거나 쓴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시음한 와인은 마텔로토 리저브 카베르네 소비뇽(Martellotto Reserve Cabernet Sauvignon) 2006. 미국 와인치고는 매우 드라이하고 스파이시한 향이 특징인 와인입니다.
2) 스페인
그 다음에 시음했던 것은 스페인 와인입니다.
참 다양한 와인들. 아쉽게도 다 시음하지는 못했구요, 모두 5종의 와인만 시음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순서에 맞춰 까바(Cava)로. 에멘디스 이멈 브뤼 리제르바(Emendis Imum Brut Reserva). 강하지만 균일한 탄산이 돋보이며 매우 시고 드라이한 맛입니다. 식전주로 딱이네요.
이어서 마신 와인은 로스 나바레스 베르데호(Los Vavales Verdejo) 2009. 가벼운 버터와 토스트의 향을 갖고 있고 물처럼 뉴츄럴하며 편한 맛입니다. 회하고도 잘 맞을 것 같고, 단단하고 짭짤하며 꼬리한 맛의 염소젖 치즈하고 곁들이면 꽤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떼르 다우베르뜨 까베르네 소비뇽(Terrer d'Aubert Cabernet Sauvignon) 2006. 달콤한 향을 풍기며 약간 단 맛을 갖고 있는 편안한 스타일의 와인. 코리아와인챌린지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기는 합니다.
이어서 마신 그레사(Gresa) 2007. 역시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향과 맛을 보여주는 와인. 코리아와인챌린지 은상 수상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지막 시음 와인은 올리버 콘티 트레유(Oliver Conti Treyu) 2009. 매우 부드럽고 깨끗하며 신선하고 뉴츄럴한 맛.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데, 이 날 최고의 화이트라고 생각합니다.
3) 프랑스
프랑스 와인은 약간의 보르도 와인이 있기는 했지만 주로 남부 프랑스(주로 랑그독 루시옹) 와인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메뉘 보르도 소비뇽 블랑(Menuts Bordeaux Sauvignon Blanc) 2008. 소비뇽 블랑 80%에 세미용(Sémillon) 20%를 블랜딩하여 만들었습니다. 아주 드라이하며 산뜻한 맛, 상큼하며 단 과일향이 인상적인 와인이었는데, 보르도 화이트 와인치고는 그다지 오일리(Oily)하지 않고 깔끔한 맛이더군요. 10점 만점에 9점!
메뉘 보르도 메를로 까베르네(Menuts Bordeaux Merlot Cabernet) 2008. 메를로 85%, 까베르네 소비뇽 15% 비율로 블랜딩된 와인입니다. 아주 드라이하고 적당한 양의 신맛이 스테이크 같은 육류 요리와 함께 하면 매우 좋은 궁합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위의 두 와인은 보르도 중에서도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지역의 와인이고, 다음은 남부 프랑스(Sud de France) 지역의 와인입니다.
도멘 드 패밀롱그 에떼 아 패밀롱그(Domaine de Familongue Ete a Familongue) 2009. 아주 좋은 향과 맛을 보여준 와인으로 매우 드라이하나 하지만 끝에 가서 산뜻한 단 맛이 살짝 윙크를 하고 가는 느낌의 와인. 이날 최고의 로제 와인이었습니다. 햄이나 차가운 돼지고기하고 함께 먹으면 최고의 맛을 보여줄 듯 합니다.
도멘 드 패밀롱그 렌볼 드 패밀롱그(Domaine de Familongue l'Envol de Familongue) 2007. 주품종이 까리냥(Carignan)이라는데 제 입맛에는 안 맞는지 마시기 편한 와인이었지만 이렇다할 특징을 못 느꼈습니다.
도멘 드 패밀롱그 라메 드 패밀롱그(Domaine de Familongue L'ame de Familongue) 2007. 그르나슈(Grenache)를 주로 넣어서 만든 와인으로 드라이하고 스파이시한 맛이 특징.
도멘 드 패밀롱그 트와나상스(Domaine de Familongue 3naissances) 2005. 이거 이름을 제대로 적은 건지 모르겠네요. 역시 드라이하며 향은 상당히 좋으나 맛은 제 취향이 아니었던 와인입니다.
도멘 드 패밀롱그 르 까리냥(Domaine de Familongue le Carignan) 2008. 향과 맛이 상당히 독특했고 제 입맛에 가장 맞았던 와인. 같은 까리냥이래도 고가로 가니까 제 입맛에 맞게 되는군요.
몽 따슈 소비뇽 블랑(Mont Tauch) 2009. 매우 드라이하고 가벼운 맛의 소비뇽 블랑 와인. 이날 나왔던 화이트 와인의 대부분이 소비뇽 블랑 같은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의 와인이더군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라 데무아젤 도멘 퐁생뜨(La Demoiselle Domaine Fontsainte) 2007. 드라이하고 상큼하며 가벼운 과일맛을 가진 레드 와인. 여기까지 오니 이미 코는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가 되어 제대로 된 시음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끌로 뒤 센튜리온 도멘 퐁생뜨(Clos du Centurion Domaine Fontsainte) 2006. 미디엄 바디에 다양한 붉은 과일향을 느끼게 해주는 와인인데 제법 깊은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4) 기타 지역
그리고 특이한 와인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보가 피노 그리지오(Voga Pinot Grigio). 흡사 거대한 스킨 로션 같은 병에 담긴 이 와인의 정체는 이태리 스파클링 와인으로, 병에서 2차 발효를 하는 메쏘드 트라디시오넬(Méthode Traditionelle) 방식으로 만들지 않고 커다란 탱크에서 2차 발효를 하여 병입하는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드라이하고 깔끔한데 깊고 복합적인 맛은 역시나 떨어지더군요.
보니또 비노 띤또(Bonito Vino Tinto).
보니또 상그리아(Bonito Sangria). 둘 다 국내업체에서 이태리 와인을 OEM 방식으로 만들어서 수입하는 와인입니다. 맛이 달고 편하며 알코올 도수도 낮아서 여성들도 마시는데 아무런 부담도 없는 스타일의 와인이지요. 여름에 놀러갈 때 차갑게 해서 한 잔 하면 딱! 좋을 듯 합니다.
휴~ 사진을 찍어두고 시음 소감을 적어놓았던 와인들은 여기서 끝이지만, 이외에 호주 와인과 전통적인 이태리 와인 시음도 꽤 많이 했답니다. 다만 혀와 코가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와인을 마셨을 때 맛있다, 맛없다 밖에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와인만 꾸준히 시음했다면 좀 더 사진을 찍고 기록을 했을텐데, 이외에 사케와 고량주를 또 시음했던지라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길진인터내셔날 부쓰와 코리아와인챌린지 부쓰에는 들리지 못했는데 상당히 아쉽더군요. 내년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다음 포스트는 사케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