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프랑스] 쎄미용 - 매혹적인 스위트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숨어있는 강자 (재업)

까브드맹 2023. 12. 3. 20:44

쎄미용 포도의 모습

포도 품종을 공부할 때 빠지진 않지만, 와인 라벨에서 품종명을 보기 힘든 포도가 쎄미용(Sémillon)입니다. 대부분 다른 포도와 섞어서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쎄미용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함께 보르도 화이트 와인의 바탕을 이루며,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소테른(Sauternes)을 만들 때 꼭 들어가는 유명한 포도입니다.

1. 쎄미용의 특성

1) 부족한 산도

국제 품종으로 부르는 양조용 포도를 언급할 때 보통 레드 와인용 포도는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시라/쉬라즈(Syrah/Shiraz), 피노 누아(Pinot Noir)를 들고, 화이트 와인용 포도는 샤르도네(Chardonnay), 소비뇽 블랑, 리슬링(Riesling)을 듭니다. 유명한 디저트 와인인 소테른을 만들 때 사용하는 쎄미용은 왜 빠졌을까요? 쎄미용은 국제 품종으로 꼽히기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족한 점은 바로 새콤한 ‘산(酸)’이죠. 그래서 쎄미용은 단일 품종 와인으로 만들지 않고 대부분 다른 포도를 섞어서 만듭니다. 주로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이 산을 보완하는 용도로 사용되죠. 비록 산 성분은 적지만,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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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도의 특성과 재배 환경

쎄미용은 비교적 재배하기 쉽고 병충해에도 강합니다. 노블 롯(Noble Rot)을 일으키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곰팡이를 제외하면 다른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꽤 강하죠.

쎄미용은 포도가 일찍 여물며 날씨가 따뜻한 곳에선 껍질에 핑크빛이 약간 돌기도 합니다. 재배 밀도를 높일 수 있어서 1에이커 당 6~8t 정도의 양을 지속해서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정력적인 품종이죠. 다만 껍질이 얇아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선 포도알이 시들 수 있습니다. 쎄미용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 날씨는 낮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밤에는 기온이 쌀쌀해서 일교차가 큰 기후입니다. 이런 기후는 당도와 산도가 함께 높아야 하는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날씨이기도 합니다.

2) 쎄미용과 노블 롯

껍질이 얇은 쌔미용은 뜨거운 열기와 곰팡이에 취약합니다. 이런 특성은 특정한 환경에서 포도 껍질에 독특한 현상을 일으키죠.

노블 롯에 걸린 쎄미용 포도

새벽에 안개가 자주 끼는 강 주변에서 자라는 쎄미용 포도의 얇은 껍질에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라는 인체에 해가 없는 곰팡이가 잘 번식합니다. 포도알에 붙은 곰팡이는 얇은 포도 껍질에 구멍을 내며, 낮에 태양이 떠오르면 포도 껍질의 구멍을 통해 수분이 증발하죠. 이 상태가 계속되면 포도알은 쪼글쪼글하게 말라버립니다. 이것을 노블 롯, 한자로 귀부(貴腐) 현상이라고 합니다. 노블 롯이 발생한 포도알은 수분이 빠져나가서 과즙에 당분이 매우 농축되며, 이런 포도로 만든 와인은 농축된 당분 덕분에 매우 답니다.

소테른은 가론(Garonne)강 주변에서 기르는 노블 롯에 걸린 쎄미용에 소비뇽 블랑을 넣어서 부족한 산미를 보충하고, 때때로 향을 위해 무스까델(Muscadelle) 포도를 조금 넣어서 만든 스위트 와인입니다. 화려한 황금빛과 특이한 과일 향, 깊고 그윽한 단맛과 새콤한 신맛이 나는 세계적인 명품 디저트 와인이죠. 소테른뿐만 아니라 인근의 바르삭(Barsac)과 세론(Cerons)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2. 쎄미용의 역사

오랜 역사를 가진 쎄미용의 원산지는 프랑스 보르도로 알려졌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1736년의 기록에서 "쌩-테밀리옹의 쎄미용"이라는 글귀를 찾아볼 수 있고, 현지 마을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19세기 초반 쎄미용은 호주의 포도밭에 심어졌고, 1820년대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도밭의 90%에서 쎄미용을 재배할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쎄미용을 와인 포도(Wine Grape)라는 뜻으로 윈듀리프(Wyndruif)라고 불렀죠.

남아프리카 공화국뿐만 아니라 칠레에서도 쎄미용 재배가 활발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체 포도밭의 75% 이상이 쎄미용 밭일 정도였죠. 그만큼 널리 재배했고, 양조용 포도의 대명사 격인 포도였습니다. 그러나 포도 재배법의 발달과 국제 품종의 확산으로 이제는 예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쎄미용 수확량은 전체 포도의 1% 정도입니다.

3. 쎄미용 포도 재배지

1) 프랑스

소테른과 바르삭의 위치

쎄미용은 현재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포도로 주 생산지는 역시 보르도입니다. 소비뇽 블랑이나 무스까델과 함께 쎄미용은 보르도에서 공인된 세 가지 화이트 와인용 포도 중 하나입니다. 보르도에선 산미가 적은 쎄미용을 산미가 풍부한 소비뇽 블랑과 섞어서 여러 스타일의 화이트 와인을 만듭니다.

그라브(Graves)에선 오크통에서 숙성하여 견과류와 버터 풍미가 향긋하면서 상대적으로 신맛이 적은 부드러운 풀 바디 와인으로 생산하죠. 가론강과 도르도뉴(Dordogne) 강 사이의 앙트르 두 메르(Entre-deux-Mers)에선 산미와 과일 풍미가 많은 미디엄 바디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만듭니다. 그라브 남쪽의 소테른에선 단맛과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멋진 스위트 디저트 와인으로 양조합니다. 그 외에 보르도 인근 지역인 베르쥬락(Bergerac)에서도 쎄미용을 많이 재배합니다.

2) 신세계

신세계의 와인 생산지 중에선 호주의 헌터 밸리(Hunter Valley)와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 뉴질랜드, 캘리포니아, 칠레 등에서 쎄미용을 많이 재배합니다.

19세기 초에 시작된 호주의 쎄미용 재배는 지금도 활발합니다. 특히 시드니 북쪽의 헌터 밸리가 유명한 생산지로 그곳에선 오랫동안 쎄미용을 헌터 리버 리슬링(Hunter River Riesling)으로 불렸습니다. 국제 품종인 리슬링의 명성에 편승하려는 마케팅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헌터 밸리에선 쎄미용을 중심으로 네 가지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을 섞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와인

• 소테른처럼 단맛이 강한 와인 

• 미네랄 풍미가 있는 복합적인 맛의 와인. 손으로 수확한 포도로 만들며 숙성 잠재력이 뛰어납니다.

• 고품질 드라이 와인.

위의 네 가지 중 3번과 4번은 린드만(Lindemans)과 툴로크(Tulloch), 맥윌리암스 엘리자베쓰(McWilliam's Elizabeth), 드라이톤(Drayton's), 티렐스(Tyrrell's) 같은 와이너리에서 개발했으며, 호주 쎄미용 와인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인정받습니다.

 

 

헌터 벨리의 쎄미용 와인은 큰 통이나 병에서 단기간 숙성한 다음 수확한 이듬해에 출시합니다. 화이트 와인 중에는 오크통에서 발효하는 것이 종종 있지만, 헌터 밸리의 쎄미용 와인은 결코 오크통에서 발효하지 않습니다.

병에서 숙성한 헌터 밸리산 쎄미용 와인은 버터 빛 색상과 구운 토스트, 혹은 꿀 내음, 긴 여운과 가벼운 산도가 있는 복합적인 맛이 나옵니다. 숙성 기간이 짧은 와인은 대부분 드라이하고 레몬과 라임 혹은 푸른 사과 풍미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일 풍미가 좀 더 강해지는 추세이죠.

헌터 밸리 외에도 바로싸 밸리나 마가렛 리버(Margaret River)에서도 쎄미용 와인을 만들며, 아들레이드 힐스(Adelaide Hills)에선 추운 기후로 인해 아주 복합적인 풍미가 있는 쎄미용 와인이 많이 나옵니다.

칠레에서도 한때 쎄미용 재배가 활발했지만, 지금은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주와 캐나다에서는 아이스 와인과 레이트 하베스트 와인을 만들 때 쎄미용을 사용합니다.

4. 쎄미용 와인의 향

스위트한 쎄미용 와인의 대표 향 중 하나인 살구 설탕 절임

쎄미용 와인의 특징적인 향은 오크 숙성을 통한 토스트와 무화과, 망고 등의 열대 과일, 복숭아 같은 핵과류, 자몽과 레몬 같은 시트러스 과일, 잔디의 향입니다. 노블 롯에 걸린 포도로 만든 쎄미용 와인에선 벌꿀과 배, 망고, 설탕에 절인 살구의 복합적인 향이 나오죠. 하지만 값싼 디저트 와인에선 꼬리한 단내가 나오기도 합니다.

5. 쎄미용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소비뇽 블랑이나 샤르도네를 혼합한 드라이한 쎄미용 와인은 새우, 홍합 등의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쎄미용과 소비뇽 블랑을 섞어서 오크 숙성한 보르도 화이트 와인은 흰살생선 스테이크나 크림소스를 얹은 해산물 요리와 잘 맞습니다. 닭과 칠면조 같은 백색육이나 돼지고기 요리와 먹어도 좋습니다. 쎄미용 와인은 매운맛이 없는 한식과 일식에도 잘 어울립니다.

쎄미용으로 만든 디저트 와인은 치즈 중에서 톡 쏘는 쿰쿰한 향과 강한 짠맛이 나는 고르곤졸라(Gorgonzola)나 로크포르(Roquefort) 같은 블루 치즈(Blue Cheese)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단맛이 강한 디저트와 먹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