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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와인 역사

[프랑스] AOC 제도의 역사 (이미지 출처 : http://www.thefrenchcellar.sg/wp-content/uploads/2015/08/AOC_winemag.png)1. AOC?프랑스 와인 법규인 지역 명칭 통제법은 "아펠라씨옹 도리진 꽁트롤레(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약자로 AOC라고 합니다. AOC는 글자 그대로 "지역(Origine)"의 "명칭(Appellation)"으로 (와인의 품질과 등급을) "통제(Controlee)" 혹은 "관리"하는 법입니다. 즉, 특정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규정에 맞춰 만든 와인의 레이블에 해당 지역의 지명을 표시해서 소비자가 레이블에 적힌 와인 산지를 보고 품질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AOC에 따라 결정되는 프랑스 와인의 최고 등급이 AO.. 더보기
[역사] 마리 루이즈 파리소(Marie Louise Parisot) 와인 레이블에 그려진 말을 탄 여성은 평생을 와인 사업에 바친 마리 루이즈 파리소입니다.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던 20세기 초반의 부르고뉴에서 오로지 와인을 위해 살았던 마리 루이즈의 생애에 대해 아래와 같은 얘기가 전해집니다."딸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미스터 파리소는 미칠 듯이 기뻐했습니다. 마리 루이즈는 자라면서 활발한 성격을 가졌고 그녀의 푸른 눈은 총명한 기운으로 반짝였죠. 변덕스럽기도 했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다정했고 주도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와인 창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와인 생산자와 창고지기, 오크통 제작자와 친분을 쌓았죠. 16살에 그녀는 와인 창고를 담당했고 와인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30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문적인 와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여성 중 한.. 더보기
[역사] 최초의 프리스티지 뀌베 샴페인(Prestige Cuvée Champagne), 돔 페리뇽(Dom Pérignon) (이미지 출처 : http://www.stickpng.com/assets/images/585e6867cb11b227491c3411.png)모에 샹동(Moët & Chandon) 샴페인 하우스가 만드는 돔 페리뇽은 하우스의 고급 샴페인으로 판매하는 빈티지 샴페인(Vintage Champagne) 브랜드입니다. "Dom Pérignon"이란 이름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였던 돔 페리뇽(1638~1715)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그는 샹파뉴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린 중요한 개척자였죠. 하지만 인기 있는 전설과 달리 그가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참고 글 : [역사] 스파클링 와인의 기원돔 페리뇽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오빌레(Haut.. 더보기
[역사] 오스트리아의 부동액 와인 사건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와인 강국입니다. 약 4천 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던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었을 만큼 와인 역사가 오래되었죠. 중세에는 교회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업을 이끌었고, 16세기에는 와인 산업이 번창했습니다. 1780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와 조세프 2세(Joseph II)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업을 진흥하려고 복잡한 주세를 하나로 통일했죠.19세기에 유럽의 포도밭을 덮쳤던 악몽 같은 신대륙의 침입자인 가루곰팡이(Powdery Mildew=Uncinula necator)와 노균병(Downy Mildew=Peronospora), 필록세라(Phylloxera) 삼총사(?)는 오스트리아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 더보기
[역사] 스파클링 와인의 기원 오랫동안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옛날에 출판했던 많은 와인 책자와 인터넷의 몇몇 자료를 살펴보면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샹파뉴의 오빌레(Hautvillers) 대수도원에서 와인 창고 책임자로 일했던 돔 페리뇽(Dom Perignon)이 처음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고 나오죠.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의 역사는 돔 페리뇽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후로 많은 사람이 와인에서 탄산 가스가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런 현상에 관해 기록을 남겼지만, 와인에 거품이 생기는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죠.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 더보기
[역사] 칠레에서 부활한 보르도 포도, 까르메네르 (이미지 출처 : https://cdn2.justwineapp.com/assets/article/2017/01/Carménère.jpg)까르메네르(Carmenere)는 까베르네(Cabernet) 계열의 포도 중 하나로 까베르네 소비뇽과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 말벡, 쁘띠 베르도와 함께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6개의 적포도 중 하나입니다. 보르도에서 까르메네르는 색이 짙은 와인을 만들 때 사용했으며, 때때로 쁘띠 베르도처럼 이국적인 향신료 향과 색, 탄닌을 보강하려고 다른 품종과 혼합하곤 했죠. 까르메네르라는 이름은 진홍색(Crimson)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카민(Carmin)"에서 유래했으며 가을에 잎이 지기 전의 까르메네르 잎 색깔이 밝은 진홍색을 띠어서 붙은 것이랍니다. 이 포도는 역사적으로 ..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게르만 왕조 지배하의 와인 산업 앞서 고트족이 포도밭을 보호했던 사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고트족뿐만 아니라 다른 게르만 부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를 점령한 색슨족은 와인을 ‘어른과 현명한 자를 위한 술’이라고 봤는데, 이는 그리스와 로마인이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같습니다. 색슨족은 와인을 재료로 한 요리법을 선보였고, 와인을 넣고 끓인 닭 요리나 와인에 넣고 졸인 과일을 환자용 음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색슨인들은 망자를 위해 차리는 식탁에도 와인을 올렸는데, 아마 와인에게서 우리나라 제사상의 제주(祭酒)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나 봅니다. 해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노르만인도 프랑크 북부의 강가를 거주지로 삼은 후부턴 노략질 대신 프랑크 북부 지역의 와인 무역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영국 등지로 향하는 와..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시작 (526년 경의 게르만족 왕국들과 동로마 제국.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Germanic_peoples#Pytheas)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여러 게르만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중세의 문이 열리게 되죠. ‘중세’하면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로마 시대보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죠. 하지만 많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 중세시대 초기의 여러 문화나 제도는 이미 로마 시대 말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그 후에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세는 온전히 발전 단계에 있었던 역사이지 퇴보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유럽 내륙으로 퍼져나간 로마의 와인 문화 (최후의 만찬.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Eucharist)로마 군단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와인 생산지는 1세기경에 남으로 크레타섬, 북으로 잉글랜드, 서로 포르투갈, 동으로 폴란드까지 넓혀졌습니다. 한국인에게 쌀과 된장이 주식이듯 로마인에겐 빵과 와인이 주식이었으므로 로마의 군인들이 현지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곳을 중심으로 와인 문화가 퍼져나갔죠. 만약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었으면 무역로를 따라 와인을 수입해서 마셨습니다.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통해 사실상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와인은 주요 식품으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의 7성사 중 하나인 성..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제국의 로버트 파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1499년에 베네치아에서 인쇄된 .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Natural_History_(Pliny))로마의 학자이며 작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현대의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에 비견될 만한 당대의 와인 전문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카가 있어서 대(大) 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그는 란 책을 쓰면서 서기 1세기 무렵의 로마 제국과 이웃 국가에서 생산하던 와인에 관해 자세히 적어놓았죠. 에는 91종의 일반 와인, 50종의 고급 와인, 38종의 수입 와인 등 모두 합쳐 179종의 와인 목록이 나오며 플리니우스는 이 와인들을 원산지별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평가 (페트로니우스의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Petronius)로마 시대에도 와인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하나같이 독하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와인 전문가들처럼 색이나 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도와 알코올 도수였죠. 평가 항목에는 와인의 숙성도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오래된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의 ‘오래된 와인’이란 전년도에 만든 와인을 뜻했다고 합니다. 대다수 와인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식초로 변하거나 상했다는 얘기죠.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이나 탄닌이 많이 들..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와인의 스타일 (렛시나 와인에 들어가는 송진.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Retsina)로마 시대의 와인도 현대 와인처럼 맛과 향이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다양했죠. 서민들이 즐긴 와인은 오늘날의 저가 와인처럼 묽고 가벼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은 와인을 다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만드는 음료인 ‘로라’를 즐겨 마셨습니다. 병사들은 취하면 안 되므로 와인 대신 식초로 변질되기 직전의 와인에 물에 타서 만든 포스카(Posca)를 마셨죠. 부유층은 좋은 와인을 마셨는데, 당도가 높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쳐줬습니다. 그래서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를 말려서 당도를 최대한 높인 상태에서 와인을 만들었고, 끓인 포도즙과 꿀을 넣어 단맛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오늘..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2/2 (고대 로마의 여성.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Women_in_ancient_Rome) 로마와 그리스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산부가 술을 마셨을 때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일종의 권위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와인을 비롯한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술에 취하면 문란해진다는 남성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서도 술에 취한 여성이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와인에 관대했던 로마에서도 여성의 음주는 부도덕한 것이었죠...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1/2 (로마인의 포도 밟기.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wine_press)처음 만들었을 땐 계층의 구분 없이 마시는 술이었을 와인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퍼지면서 왕족과 귀족의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자들은 피와 같은 색을 지닌 와인에서 고대인들이 신성함을 느꼈고, 두 지역 모두 포도를 재배하기에 기후와 땅이 마땅하지 않아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에 와인이 고위층을 위한 술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족과 귀족이 와인을 독차지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흔한 재료인 보리로 만든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당시 서민들에겐 맥주가 와인보다 더 인기 있었다고 하네요.와인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됩니다. 두 지역 모두 포..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용기 (오크통을 실은 로마시대 상선.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Barrel)고대 조지아인이 토기에서 포도가 발효한 와인을 발견한 이래로 와인 양조는 토기에서 이뤄졌습니다. 페니키아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 암포라라는 토기에 와인을 양조했고, 이웃 나라로 수출했죠. 하지만 암포라 외에 다른 용기를 쓰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때때로 염소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와인을 양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번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주머니는 다시 쓸 때 조심해야 했죠. 와인이 발효할 때 나오는 탄산가스가 낡은 주머니의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와인이 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성경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상황에 유의하..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시대의 와인 보관법 (지중해 식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열매인 올리브.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Olive)오늘날처럼 유리병이나 코르크 마개, 이산화황이 없었던 고대에는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와인을 만들 때 으깨진 포도알을 발효조 안에 넣으면 포도 무게 때문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포도즙이 있습니다. 이 즙은 고급 와인을 만들 때 쓰는데, 옛날에도 고급 와인 양조에 사용했습니다. 이 즙으로 만든 와인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보관만 잘하면 몇 년 동안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이 매우 적어서 포도를 압착해서 짜낸 즙을 함께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죠. 두 즙을 섞어서 만든 와인을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고대 로..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군의 음료수, 포스카. 와인에 맛 들인 고대 로마인이 와인 사업의 수익성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에 포도밭을 가꾸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부와 중부 유럽을 석권해 나가는 로마군의 군화 발자국을 따라 포도나무와 와인도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죠. 하지만 로마군이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군인들의 건강이 더 큰 이유였죠.요즘도 상수도 시설이 안 좋은 곳에서 물을 잘못 마시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로마군이 알프스 너머 유럽 대륙을 정복해 나갔던 옛날에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했겠죠. 만약 병균이 우글거리는 물을 잘못 마셨다가 부대 안에 이질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전투력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러시아로 쳐들..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인들, 와인 생산을 논하다. (콜루멜라의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Columella)대 정치가 카토도 농업론에서 와인에 관한 내용을 썼지만, 고대 로마인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이 기록한 와인 양조법을 현대 와인 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 와인과 관련된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콜루멜라(Columella)는 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습니다.•포도나무 사이의 알맞은 간격•와인 종류에 따른 적합한 생산지들•버팀목 세우는 방법과 일꾼 한 명이 하루에 세울 수 있는 버팀목의 양•포도 농사에 필요한 일꾼의 수•노예의 식대•포도 품종에 따른 와인의 양과 ..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의 와인 산업 (와인을 실어나르는 무역선을 묘사한 로마 시대 부조.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Roman_Empire)전쟁을 통해 지중해를 앞마당 연못처럼 만들어버린 로마는 당대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와인 문화를 흡수, 통합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에는 그리스인이 개간해 놓았던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을 접수해서 와인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굳혔죠.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정치가 카토(Cato)는 에서 “포도 재배는 이제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당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가내 소비가 아닌 산업 형태를 갖췄음을 알 수 있죠.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그리스와.. 더보기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와인, 로마로 전파되다. (기원전 4세기의 이탈리아 반도. 로마 북쪽으로 에트루리아가, 반도의 남쪽으로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Ancient_Rome)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인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지만, 다른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죠. 그들이 그리스 문명에서 배운 문화 중에는 당연히 와인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주목했던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여러 개의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도시 근처엔 당연히 포도밭을 조성해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죠. 이탈리아의 토질이나 지형,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했기에 그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