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파클링 와인의 시작은?
많은 와인 생산자가 뜻하지 않게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완전히 발효되지 않아 당분이 남은 와인을 병에 넣고 밀봉하면 병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나 탄산가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물론 살균이나 아황산 처리 등이 불량해서 밀봉한 와인에 효모가 함께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샴페인을 발명했다고 잘못 알려진 동 페리뇽도 같은 실수를 했을 겁니다. 그러나 동 페리뇽은 이런 현상을 보고 샴페인을 개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 사람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오크통에서 와인을 양조하고 저장하면 발효 과정에서 생긴 탄산가스가 오크통의 미세한 틈으로 빠져나가 이런 현상을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유리병에 담긴 와인은 녹아있던 탄산가스가 개봉할 때 거품의 형태로 터져 나가죠. 누군가 거품이 올라오는 와인을 맛보고 그 맛에 반해 일부러 거품이 들어간 와인을 만들려고 한 것이 스파클링 와인의 시작일 겁니다. 그래서 스파클링 와인 생산에 유리병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병은 탄산가스의 높은 압력을 견딜 만큼 튼튼한 내구성을 갖춰야 합니다.
영국은 1615년 왕의 칙령으로 유리 공업에 석탄을 사용하면서 고압에 견디는 튼튼한 병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662년 크리스토퍼 메렛(Christopher Merret)은 당분을 첨가하여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영국 학술원(Royal Society)에서 발표했고, 그 기록을 보더라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 영국에서 개발된 것은 확실합니다. 때땅저(Taittinger)의 와인메이커인 피에르 에마뉘엘 때땅저도 2019년 1월에 프 피가로 신문(Le Figaro newspaper)과 인터뷰하면서 “영국에서 실수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
그러나 크리스토퍼 메렛이 스파클링 와인 양조법을 최초로 밝혀낸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전에 영국 서부에선 이미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만 사과주(Cider)를 이용한 스파클링 와인이었을 뿐이죠. 대표적인 사례로 케넬름 디그비 경(Sir Kenelm Digby)은 1633년에 강화유리를 사용하여 병 발효의 압력에 견딜 수 있는 현대적인 와인 병을 설계했고, 자신의 책에 강화유리병을 사용한 스파클링 사과주 양조법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또한 헤리퍼드셔 주 출신인 존 빌(John Beale)은 머렛이 발표하기 10년 전에 영국 학술원에 병에 담긴 사과주에 설탕을 첨가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논문에 나온 설탕 첨가량도 1ℓ당 20g으로 오늘날 샴페인에 넣는 양과 거의 같습니다.
이처럼 영국에서 처음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했지만, 정작 영국보다 프랑스의 샴페인을 비롯한 다른 와인 생산국의 스파클링 와인이 더 유명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양조용 포도를 기르기에 맞지 않은 영국의 날씨 때문이죠. 그러나 최근 지구 온난화로 영국의 남쪽 해안 지대에서 양조용 포도를 재배할 수 있게 되었고, 스파클링 와인 생산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이 들어와 판매된 적이 있었죠. 맛과 향도 꽤 좋은 편입니다.
2. 동 페리뇽은 스파클링 와인을 싫어하셨어!
동 페리뇽(Dom Pierre Pérignon, 1638-1715)이 살았던 시절의 상파뉴에선 병 속의 2차 발효가 와인 생산에서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북위 49.31도에 위치한 샹파뉴 지역은 다른 와인 생산지보다 겨울이 빨리 찾아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발효가 다 끝나기 전에 멈추게 됩니다. 예전에는 발효가 덜 끝났는지도 모르고 와인을 병에 넣는 일이 잦았고, 이러면 봄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다시 발효가 진행되어 탄산가스의 압력으로 병이 폭발하는 일이 생기곤 했죠. 그래서 동 페리뇽은 이런 재 발효를 방지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718년에 발행된 <동 페리뇽의 지침>이란 양조 방법에는 피노 누아로 고급 와인을 만드는 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고, 동 페리뇽은 재 발효가 자주 일어나는 청포도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피노 누아를 선호한 이유는 향과 품질의 지속성이 좋은 것도 있지만, 봄에 거품이 잘 생기지 않아서 일지도 모릅니다.
동 페리뇽이 “빨리 와보세요. 지금 나는 별을 마시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이 글귀는 19세기 후반에 인쇄된 광고 전단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동 페리뇽은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 않았고, 당시 기록을 보더라도 거품 나는 와인을 팔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동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하고 코르크 마개를 최초로 사용했으며 와인 맛을 잘 알아맞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후배 수도승인 동 그로사(Dom Grossard, 1749–1825))의 작품입니다. 1821년에 동 그로사는 동 페리뇽을 샴페인 발명가로 추대하면서 동 페리뇽뿐만 아니라 오빌레 수도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그는 동 페리뇽이 코르크를 처음 사용했고, 포도 맛을 보고 포도밭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죠. 참고로 동 페리뇽이 장님이란 소문은 그가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을 자주 하면서 해석이 잘못되어 그렇게 전달된 것입니다. 동 페리뇽은 장님이 아니었습니다.
동 페리뇽이 샴페인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샹파뉴 와인의 발전을 위해 남긴 업적은 매우 큽니다. 동 페리뇽은 과감한 가지치기로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줄이고, 포도나무를 1미터 이상 자라지 않게 했습니다. 모두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포도 재배법입니다. 수확은 기온이 낮은 새벽에 포도가 으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포도는 골라냈습니다. 이것도 오늘날 고급 와인을 만들 때 필수적인 작업이죠.
동 페리뇽이 수도원의 와인 품질을 끌어올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오빌레 수도원의 명성을 드높인 것은 사실입니다. 덕분에 그는 죽은 후 수도원장이 묻히는 수도원 내의 묘지에 묻힐 수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1. 김준철와인스쿨 김준철 원장님의 와인소식 67호 & 142호
2.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