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역사

[역사] 스파클링 와인의 기원

까브드맹 2018. 7. 6. 08:00

스파클링 와인의 모습

오랫동안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옛날에 출판했던 많은 와인 책자와 인터넷의 몇몇 자료를 살펴보면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샹파뉴의 오빌레(Hautvillers) 대수도원에서 와인 창고 책임자로 일했던 돔 페리뇽(Dom Perignon)이 처음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고 나오죠.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의 역사는 돔 페리뇽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

1. 와인에서 올라오는 탄산 가스의 발견

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후로 많은 사람이 와인에서 탄산 가스가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런 현상에 관해 기록을 남겼지만, 와인에 거품이 생기는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죠.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달의 변화나 선과 악의 정령이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미 중세 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샹파뉴의 와인에 거품이 쉽게 생기는 현상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와인을 만들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와인 양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며, 당시 샹파뉴에서는 이런 와인이 나오는 것을 꺼렸죠.

2. 오빌레 대수도원의 돔 페리뇽

돔 페리뇽의 동상
(돔 페리뇽의 동상.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d/Epernay_dom_perignon.jpg/734px-Epernay_dom_perignon.jpg)

1668년에 오빌레 대수도원의 와인 창고 책임자로 임명된 돔 페리뇽이 수도원으로부터 받은 명령도 "병 안에서 생기는 거품 때문에 와인이 저장고 안에서 터지면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 사전에 거품을 제거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병이 폭발하면서 튀어 나가는 유리 파편으로 다른 병들이 연쇄적으로 깨지는 일이 일어났고, 이런 사고 때문에 와인 창고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보관하는 와인의 20~90%가 깨져버리는 일이 계속 반복되었죠.

발효 과정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현상과 깨져버린 와인 병에서 끓어오르는(?) 거품을 보면서 몇몇 비평가는 스파클링 와인을 "악마의 와인(The Devil's Wine)"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스파클링 와인의 생산이 조심스럽게 늘어난 18세기 초반에도 와인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저절로 터지는 병의 파편에 다치지 않도록 야구의 포수가 쓰는 것과 비슷한 묵직한 철제 마스크를 써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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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크리스토퍼 메렛의 연구

샹파뉴 와인에서 종종 거품이 발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첫 번째 사람들은 영국인이었습니다. 그들은 거품이 생기는 이유를 알려고 노력했죠. 당시 샹파뉴 와인은 종종 나무로 만든 통에 담겨서 영국으로 수입되었는데, 샹파뉴 지역의 추운 날씨 때문에 발효 작용이 멈춘 와인 안에는 미처 발효되지 못한 당분과 활동을 멈춘 효모가 들어있었죠. 상인들은 영국에 도착한 와인을 판매하려고 병에 나눠 담았습니다. 이윽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효모가 다시 활동했을 때, 영국에서도 샹파뉴처럼 병이 터지는 일이 일어났느냐...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17세기의 영국에선 유리병을 만들 때 석탄을 원료로 사용했습니다. 석탄의 높은 화력 덕분에 영국에선 나무를 원료로 쓰는 프랑스보다 더 강한 유리병을 만들 수 있었죠. 영국에서 만든 와인 병은 탄산 가스의 압력에 충분히 버틸 만큼 튼튼했습니다. 영국인들은 한 때 로마인도 사용했지만,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수 세기 동안 잊혔던 코르크 마개를 재발견했습니다. 튼튼한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로 빈틈없이 밀봉된 와인 안에 녹아있는 형태로 탄산 가스는 터지지 않고 보관될 수 있었죠. 그리고 와인을 개봉했을 때 거품의 형태로 빠져나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메렛의 모습
(크리스토퍼 메렛의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s://www.rcplondon.ac.uk/sites/default/files/styles/sidebar-landscape/public/media/Images/Merrett%2C%20Christopher_PR3701_0.jpg?itok=VTV1Pq2w&c=70705a19c2ec02b980f958eb245f02ec)

1662년에 영국의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Christopher Merret)은 와인에 남아있는 당분이 어떻게 와인에 발포성을 갖게 하는지, 또한 와인을 병에 담기 전에 설탕을 넣어서 거의 모든 와인을 스파클링 와인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해 기술했습니다. 그가 남긴 글은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 가운데 하나로 돔 페리뇽이 와인 창고 책임자로 임명되기 6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메렛은 프랑스 샹파뉴의 와인 생산자들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서 팔기 전에 영국의 상인들이 스파클링 와인을 먼저 생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죠.

돔 페리뇽이 스파클링 와인을 발명하지 않았고 샴페인을 처음 만들지도 않았지만, 그의 공헌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됩니다. 평생을 샹파뉴 와인의 품질 향상에 노력했던 돔 페리뇽은 샹파뉴에 있는 포도밭의 특성과 알맞은 품종의 관계, 부드러운 압착법을 써서 적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법, 샴페인 블렌딩, 포도 블렌딩, 더 뛰어난 형태의 병과 코르크 마개의 사용 등등 샴페인의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죠.

 

 

4.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 블랑께뜨 드 리무?

메렛이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을 발표한 것보다 무려 1세기 전에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랑그독(Languedoc)의 리무(Limoux) 지역에 있는 쉬르 다르끄(Sieur d'Arques)이죠.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든 사람들은 리무에서 멀지 않은 이웃 마을에 있는 쌩-틸레르 대수도원(St. Hilaire Abbey)에서 지내던 베네딕트(Benedict) 수도회의 수녀들이라고 합니다. 수녀들은 발효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병에 담은 와인에서 이상한 거품이 생기는 것을 관찰했고, 1531년에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인 블랑께뜨 드 리무(La Blanquette de Limoux)를 만들었다고 얘기하죠.

이 주장이 역사적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무 지역은 예전부터 전통 방식으로 다 뛰어난 스파클링 와인으로 탄탄한 명성을 쌓아왔습니다. 리무가 있는 랑그독 지역은 지중해와 인접한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 추운 북쪽의 샹파뉴에서 일어나는 불완전한 발효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상할 겁니다. 하지만, 리무는 내륙의 고지대이며 지중해 기후보다 서늘한 대서양 기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곳이라서 그런 현상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쉬르 다르끄 프르미에르 불레 브뤼 2013

블랑께뜨 드 리무 와인에 관해 언급한 옛 기록 중에는 리무 지역의 군주였던 쉬르 다르끄(le Sieur d’Arques)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축하주로 블랑께뜨 드 리무를 병 채로 들이마셨다는군요. 4백여 년이 지난 1946년에 쉬르 다르끄 와이너리의 설립자들은 이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와이너리와 생산하는 와인에 "쉬르 다르끄"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3. 영문 위키피디아 스파클링 항목

4. 쉬르 다르끄(Sieur d'Arques) 홈페이지

5. 와인21닷컴 쉬르 다르크 버블 넘버원 로제 항목

6.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