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사케를 제외한 나머지 주류는 전통주와 국산 와인 그리고 중국의 고량주들이었습니다. 그중에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을 이용해서 만든 국산 와인들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더군요.
1. 전통주와 국산 와인
기타 주류 첫 번째 시음 와인은 전통의 명주인 진도 홍주. 진도에서 자라는 지초(芝草)라는 약초를 섞어 만든 증류주인데, 지초는 본초강목에 의하면 배앓이, 장염, 해열, 청혈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소주 같은 증류주도 적당량 마시면 장(腸)을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지초까지 섞였으니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런데 약 핑계 대고 많이 마셔대면 큰일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40도 정도 되는 독한 술이거든요.
색깔이 빨간 것이 참 예쁘죠? 산딸기 같은 베리류의 과일향이 특징으로 강하고 부드러우며 매우 깔끔합니다. 독주 좋아하시는 여성분들이라면 강추!
요즘 인기절정인 막걸리도 참가했습니다. '우리쌀 청정수 솔바람 생막걸리'. 이름이 길기도 하군요. 그런데 이 업체를 제외하고는 막걸리를 내놓은 업체를 볼 수가 없었는데, 막걸리 업체가 대개 영세해서 참가에 부담이 가서 그랬는지, 아니면 구태여 홍보 없이도 지금까지 장사를 잘해와서 참가를 안 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음을 해보니 시중의 생막걸리보다 더 깊고 깔끔한 맛을 보여주더군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른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감미료로 아스파탐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사장님하고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 봤는데, 그분도 아스파탐을 빼고 막걸리를 만들고 싶지만 그러면 팔리지가 않는다고 하시네요. 요즘 사람들이 전통 막걸리의 텁텁하고 은근한 맛보다는 달착지근한 요즘 막걸리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아스파탐을 빼버리면 답이 나오질 않는답니다. 하긴 요즘 나오는 막걸리들 치고 생막걸리든 살균탁주든 아스파탐이 빠져있는 막걸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스파탐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여러 얘기가 있지만, 쌀과 물과 누룩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막걸리에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넣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파탐을 넣은 막걸리는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새로운 맛이지, 전통의 맛이 아닐 뿐만 아니라 막걸리의 발전에 있어서도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스파탐을 넣어서 단 맛을 강화시키다 보면, 막걸리 고유의 깊은 맛이 단 맛에 가려져 버리는 일이 발생해 버리게 되죠. 와인이 점점 드라이한 맛을 추구하는 것이나, 사케가 단 맛이 주류였다가 점차 안 단 맛으로 가는 거나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단 맛으로 점철된 술은 처음에 마시기는 편할지 모르지만 깊은 맛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재료에서 우러나온 자연적인 단 맛이 아니라 설탕이나 인공 감미료로 만든 단 맛일 경우 더욱 그렇게 되지요.
시중의 음식들이 소금, 고추, 설탕, 조미료를 잔뜩 집어넣어 달고, 짜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깊은 맛이 점차 사라져 버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주들도 그렇게 돼버려 더 이상 예전의 깊은 맛을 낼 수 없게 돼버리는 게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자연적인 맛이 아닌 인공적인 맛은 언젠가 한계에 부닥치게 되기 마련입니다. 결국 소비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하고 인공적인 요소가 빠진 자연스러운 술을 찾아줘야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가 빠진 술이 자연스럽게 시중에 나오게 될 텐데... 그날이 언제나 오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시중에 나온 생막걸리에 대한 한겨레신문의 기사와 애주가가 뽑은 최고의 막걸리에 대한 시사인의 기사를 읽어보시고요, 시사인의 기사에 나온 송명섭 막걸리는 아스파탐을 넣지 않은 생막걸리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 번쯤 드셔보셨을 청도의 단감 와인인 감그린 2006. 단감으로 만들었는데, 아세톤 비슷한 향이 나면서 꽤 단 맛을 보여줍니다. 디저트용 와인으로 괜찮을 듯. 그런데 콘셉트인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감처럼 끝에 가서 조금 떫은맛이 느껴지네요.
이건 좀 더 고급으로 만든 감그린 스페셜 2006. 일반 감그린 와인보다 조금 덜 단맛을 보여줍니다. 설명하시는 분은 드라이한 맛이라 했는데, 상대적으로 덜 달 뿐이지 와인처럼 드라이한 맛은 절대 아닙니다. 역시 감그린처럼 아세톤 비슷한 향이 납니다.
디오니캐슬 다래 와인. 농익은 모과처럼 달착지근한 향이 나는데 맛은 물처럼 싱겁더군요.
디오니캐슬 다래 와인 스위트. 어째 글꼴이 군바리틱하군요.... 라벨의 글자 모양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역시 모과가 농익은 듯한 매우 달달한 향. 맛도 기대만큼 단 맛이 나옵니다. 위의 다래 와인은 솔직히 아닌데, 이건 상당히 괜찮군요. 식후에 디저트 용도로 드셔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디오니캐슬 블랙라즈베리 와인. 복분자 와인이지요. 석류 캔디의 향이 납니다. 맛도 향과 비슷한 석류 사탕 같은 맛이 나고요. 장어구이랑 함께 먹으면 딱 좋을 듯!
사천에서 나온 '나에게 다래 2008' 와인. 드라이 와인이라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나 드라이지 원래 와인 기준으로 치면 세미 스위트 정도입니다. 국산 와인들이 스위트 와인은 마실만 한 게 꽤 되는 반면, '드라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들은 별 볼 일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와인은 상당히 괜찮더군요.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마셔보고 싶습니다.
국순당에서 나온 '명작 복분자'. 명작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최고의 복분자주입니다. 지금껏 제가 마셔본 복분자주 중 가장 맛있더군요. 달되 입안에 걸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갖고 있고, 부드러운 질감과 자연스러운 향이 끝내줍니다. 누군가 복분자주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강추해 줄 만합니다.
2. 리큐르
리큐르 종류는 거의 출품되지 않았지만, 이거 하나로 능히 다른 술들을 대적할만합니다. 아프리카의 마루라(Marula) 열매로 만든 '아마루라 크림(Amarula Cream)'.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마루라라는 열매가 있는데 그 향과 맛이 얼마나 좋은지 코끼리가 이 열매의 향을 맡으면 환장하고 덤벼든답니다. 그래서 라벨도 마루라 열매의 향에 환장한 코끼리가 달려드는 모습을 그려놨다네요. 크림 베이스 리큐르다 보니 매우 부드럽고 연유를 잔뜩 넣은 커피 비슷한 향과 맛이 납니다.
3. 증류주
증류주는 국내주로 화요(火堯)가 나왔지만 예전에 마셔봤으므로 패스.
역시 동양 증류주의 강자인 중국 고량주 부쓰로~~ 그러나 이미 상당히 마신 관계로 부쓰를 다 둘러보진 못했고요.
내걸린 문구가 재미있어서 들른 곳인 마오타이코리아(주)의 부쓰입니다. 두 종류의 고량주를 시음했는데
모태영진주(茅台迎眞酒) - '마오타이잉진'이라는 고량주입니다. 43%의 고도주(高度酒)인데, 향과 맛이 거칠고 너무 강해서 제 입맛에는 안 맞더군요. 터프하고 남자 같은 술.
반면에 홀로 '독(獨)'은 OEM방식으로 들여오는 35도의 저도주(?)입니다. 향과 맛이 청량하며 깔끔해서 입맛에 딱 맞더군요. 탕수육 같은 육류요리에도 좋고 팔보채 같은 해물요리에도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와인과 사케를 제외한 기타 주류들은 종류는 적었지만 나름대로 개성이 강한 술들이 많아 재미는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더 다양하고 재미난 술들이 전시되었으면 좋겠네요.
자, 이제 마지막 포스트인 액세서리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