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와인 등급을 제대로 받으려면 지역과 품질에 대한 국립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l'origine et de la qualité, 이전의 INAO(the Institut National des Appellations d'Origine, 전국원산지명칭협회)가 생산지별로 허가한 포도만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르도에서 시라(Syrah)로 와인을 만들면 아무리 잘 만들고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최고 등급인 AOP(Appellation d’Origine Protegee, 예전의 AOC) 등급을 받을 수 없죠. 한 단계 아래인 IGP(Indication Geographique Protegee, 예전의 Vin de Pays) 등급이 됩니다.
보르도에서 AOC 와인에 사용할 수 있도록 공인된 포도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 레드 와인용 포도
①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 보르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레드 와인용 포도입니다. 보르도 좌안의 메독과 그라브, 페싹-레오냥 등지에서 와인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죠.
②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 보르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래드 와인용 포도로 좌안보다 우안 와인에서 사용 비율이 높습니다.
③ 메를로(Merlot) : 보르도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레드 와인용 포도입니다. 보르도 우안의 쌩떼밀리옹과 뽀므롤 등지에선 와인을 만들 때 메를로를 많이 넣습니다.
④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 최고급 와인에 이국적인 향신료 향과 색상, 탄닌을 더하려고 사용합니다. 하지만 날씨가 아주 더워야 제대로 익고 숙성도 느려서 일반 보르도 레드 와인에 사용하는 일은 드뭅니다.
⑤ 말벡(Malbec) : 한때 보르도에서 많이 재배했지만,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에 밀려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꿀뤼르(Coullure) 현상이 자주 일어나 재배 면적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⑥ 까르메네르(Carménère) : 19세기 말에 유럽에 들이닥친 해충인 필록세라(phylloxera)와 까다로운 재배법 때문에 보르도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재배를 하는 곳이 약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보르도 그랑 크뤼 5등급인 샤토 클레르 밀롱(Château Clerc Milon)으로 1% 가량의 까르메네르가 들어갑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까르메네르 와인은 거의 칠레산입니다.
○ 화이트 와인용 포도
① 쎄미용(Sémillon)
②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③ 무스까델(Muscadelle) : 모스까토(Moscato)와 비슷한 향이 나지만, 다른 포도입니다.
그런데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보르도 지역의 연중 기온이 올라가면서 2019년 7월에 일곱 가지 포도가 새로 공인되었습니다. 새로 공인된 포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 공인된 레드 와인용 포도
① 마쓰롱(Marselan) : 까베르네 소비뇽과 그르나슈(Grenache)를 교배해서 만들었습니다. 남부 프랑스의 마르세이유(Marseillan) 부근에서 폴 트루엘(Paul Truel)이 1961년에 처음 기르기 시작한 포도로 포도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딴 것입니다.
색이 진하고 품질 좋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더위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그르나슈의 장점을 가진 포도로 와인은 대개 미디엄 바디입니다. 젠시스 로빈슨은 마쓰롱에 대해 "깊은 색과 강한 향을 가진 와인을 만들 수 있고 유연한 탄닌과 숙성 잠재력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Languedoc) 지역에서 많이 재배하며 캘리포니아의 노던 코스트(Northern Coast)에서도 일부 재배합니다.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② 뚜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 포르투갈의 대표 포도 중 하나입니다. 가장 뛰어난 포르투갈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죠. 수확량이 적고 포도알도 작지만, 강화 와인인 포트(Port)를 만들 때 많이 사용하며 도오루(Douro)와 다옹(Dão) 지역에선 고급 레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점점 재배지가 늘고 있습니다. 뚜리가 나시오날 포도는 탄닌이 많아서 와인의 구조를 튼튼하게 해주며, 검은 과일의 풍미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③ 까스떼(Castets) : 남부 프랑스의 아베롱(Aveyron)에서 재배해 오던 포도입니다. 남서부 프랑스에서도 일부 재배하고 있죠. 품종의 다양성이 줄어들어 이제는 거의 멸종한 품종이라고 합니다.
④ 아리나르노아(Arinarnoa) : 1956년에 확인된 품종으로 따나(Tannat)와 까베르네 소비뇽의 교배종입니다. 포도알은 중간 크기이지만, 포도송이는 큽니다. 당도가 좋아 알코올이 잘 나오고 산도도 좋습니다. 와인은 색이 짙고 탄닌도 많으며, 복합적인 향이 지속됩니다.
○ 새로 공인된 화이트 와인용 포도
① 알바리뇨(Alvarinho) : 포르투갈에서는 알바링뉴라고 부르며 스페인 서북부의 갈리시아(Galicia) 지역에서 많이 재배하는 포도입니다. 12세기에 수도승들이 갈리시아 지역에 가져온 것으로 추측되며, 알자스 리슬링(Riesling) 포도의 클론(clone)이라고 추정됩니다. 알바리뇨란 이름은 라틴어로 흰색을 뜻하는 "albus"가 변형된 albar, albo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알바리뇨 포도는 살구와 복숭아 향이 특징이며, 비오니에(Viognier)와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쁘띠 망상(Petit Manseng)과 향이 매우 비슷합니다. 와인은 매우 가볍고 산도는 높습니다. 두꺼운 껍질과 많은 씨는 쓴맛을 남길 수 있죠.
② 쁘띠 망상(Petit Manseng) : 남서부 프랑스에서 많이 재배하는 포도로 고품질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포도송이가 작고 포도알은 더욱더 작아서 보통 1헥타르당 15헥토리터 밖에 수확하지 못합니다. 보르도 AOC의 기본 포도 수확량이 헥타르당 55헥토리터임을 참작할 때 매우 적은 양이죠. 그러나 작은 포도알에 농축된 당분과 매우 높은 산도를 갖고 있어서 향긋하고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죠. 디저트 와인인 레이트 하베스트 와인을 만들기에도 좋은 포도입니다.
③ 릴리오일라(Liliorila) : 프랑스 원산의 포도로 바로끄(Baroque)와 샤르도네(Chardonnay)의 교배종입니다. 포도송이와 포도알이 작아서 수확량도 적지만, 일정한 편입니다. 와인은 무게가 있고 향도 강렬하지만, 산미가 약합니다. 회색 곰팡이균(grey rot, Botrytis cinerea)이 잘 달라붙어서 귀부 와인을 만들기 좋은 품종입니다.
이제 보르도 AOC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품종은 흑포도 10종에 청포도 6종이 되었군요. 공부할 거리가 더 늘어났습니다. 애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