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지중해 일대] 뮈스까/머스캣 - 모든 유럽종 포도의 어머니? (재업)

까브드맹 2023. 12. 21. 20:46

뮈스까 포도의 모습

뮈스까(Muscat), 영어식으론 머스캣, 또는 모스카토(Moscato)라고 부르는 포도는 수 세기 동안 세계 각지에서 와인과 건포도 생산뿐만 아니라 생식용으로 재배해 왔던 200종이 넘는 유럽종(Vitis vinifera) 포도를 일컫는 명칭입니다.

1. 뮈스까/머스캣의 특성

흔히 청포도로 알려졌지만, 연한 노란색의 뮈스까 오토넬(Muscat Ottonel)부터 진한 노란색의 모스카토 지알로(Moscato Giallo), 분홍색인 모스카토 로사 델 트렌티노(Moscato rosa del Trentino)까지 껍질의 색이 다양하며, 심지어 검은색에 가까운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Muscat of Hamburg)도 있습니다. 뮈스까 품종들의 공통점은 포도와 와인에서 달콤한 꽃향기와 특유의 "포도" 향을 발산한다는 겁니다.

뮈스까 품종의 다양성은 이 포도가 아마도 인류가 가장 오래전에 재배한 포도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죠. 대부분의 유럽종 포도가 뮈스까의 후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2. 뮈스까/머스캣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모습

뮈스까의 기원에 대해 최초의 재배 시기가 B.C 3,000년~1,000년 사이의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B.C 800년~A.D 600년 사이에 그리스와 로마인이 뮈스까 포도를 각지로 전파했다고 믿죠. 비록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오랫동안 포도를 재배했고, 콜루멜라(Columella)와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같은 로마 학자들이 아나텔리콘 모스카톤(Anathelicon Moschaton)과 아피아네(Apianae)처럼 '뮈스까'스러운 포도에 대해 "매우 달고 꿀벌이 많이 달라붙는다"라고 적었지만, 이 포도들이 뮈스까의 일종이라는 확실한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영국 프란체스코회의 학자인 바르톨로메우스 앵글리쿠스(Bartholomeus Anglicus)가 1230년부터 1240년까지 라틴어로 저술한 <사물의 성질에 관하여(De proprietatibus rerum)>라는 백과사전은 'Muscat'라는 명칭이 확실하게 나오는 첫 번째 기록물입니다. 이 책에는 뮈스까 와인에 관한 글귀가 나오며, 1372년에 프랑스어로 옮겼을 때 "뮈스까 포도에서 추출한 와인(vin extrait de raisins muscats)"으로 번역되는 내용이었죠.

뮈스까 포도의 기원을 콕 집어서 말할 수 없기에 Muscat라는 이름에 대한 학설도 수없이 많습니다. 가장 유력한 학설은 페르시아어의 muchk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유사한 어원으로 그리스의 moskos가 있고, 라틴어의 muscus와 프랑스어의 musc가 있죠. 이탈리아에서는 파리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mosca가 어원일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뮈스까 포도의 달콤한 향과 높은 당도가 초파리 같은 벌레를 꼬이게 하기 때문이죠.

뮈스까가 아라비아의 오만(Oman)에서 유래했고, 이름은 걸프만의 해안 도시인 마스쾃(Muscat)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뮈스까의 이름과 얽힌 또 다른 도시로 그리스 아테네의 남서쪽에 있는 모스카토(Μοσχάτο)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Μοσχάτο는 뮈스까 포도와 동음이의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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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뮈스까/머스캣에 속한 품종

수많은 뮈스까 포도 중에서 유명한 품종이 네 가지 있습니다.

1) 뮈스까 오토넬

알자스(Alsace)와 중앙 유럽에서 많이 재배합니다. 알자스에선 드라이하고 매혹적인 향을 가진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고 오스트리아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선 스위트 와인으로 양조합니다.

2)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Muscat of Alexandria)

포도 향이 단순하고 풍미의 복합성도 떨어져서 중저가 와인의 원료로 많이 사용됩니다. 프랑스의 값싼 강화 와인인 뱅 두 나투렐(Vins Doux Naturels)과 스페인의 모스까텔 데 발렌시아(Moscatels de Valencia) 등의 원료로 쓰이며 캘리포니아와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선 싸구려 드라이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어지죠. 일반 테이블 와인이나 건포도로 제조되기도 합니다.

3)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Muscat blanc à Petits Grains)

가장 고급 품종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향을 풍깁니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포도와 복숭아, 장미, 감귤 향 등이 나오며,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색이 짙어지면서 건포도와 과일 케이크, 커피 향도 올라옵니다. 물론 뮈스까 와인 특유의 청포도 향은 계속 유지되죠. 이탈리아의 아스티(Asti)와 고급 뱅 두 나투렐, 호주의 강화 와인인 루더글렌(Rutherglen) 등을 만들 때 이 포도를 씁니다.

 

 

4)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

와인 생산에 사용하는 뮈스까 포도들은 대부분 청포도이거나 청포도에 가깝지만, 사실 뮈스까에 속하는 포도들의 껍질 색은 대부분 검습니다. 블랙 뮈스까로 알려진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 역시 껍질의 색이 검죠.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는 1858년에 영국의 레스트 파크(Wrest Park)에 있는 빅토리아 양식 온실에서 그레이 백작가(the Earl de Grey)의 수석 정원사인 슈워드 스노우(Seward Snow)가 개발한 품종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스키아바 그로사(Schiava Grossa)라고 불러온 블랙 함부르그(Black Hamburg)와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 포도를 이종교배해서 이 포도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2003년 DNA 분석으로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는 실제로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와 스키아바 그로사의 이종 교배 품종이란 것이 밝혀졌고, 이탈리아 중부의 말바지아 델 라찌오(Malvasia del Lazio) 포도와 부모 품종이 같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는 주로 식용 포도로 소비되지만, 주목할 만한 예외 지역 두 곳이 있습니다. 한 곳은 102헥타르의 머스캣 오브 함부르그 포도밭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곳에선 주로 디저트 와인으로 양조되죠. 또 한 곳은 중국입니다. 중국에선 다양한 와인 생산지의 기후에 잘 적응하는 포도를 만들려고 종종 비티스 아무렌시스(Vitis Amurensis) 품종과 교배한 하이브리드 품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랭의 변종으로 보이는 뮈스까 로제 아 쁘띠 그랭(Muscat Rose a Petit Grains)와 뮈스까 루즈 아 쁘띠 그랭(Muscat Rouge a Petit Grains), 포르투갈에서 많이 재배하는 모스까텔 드 세투발(Moscatel de Setubal)과 모스까텔 드 파바이오스(Moscatel de Favaios), 유럽에서 식용 포도로 많이 먹는 블랙 뮈스까(Black Muscat), 오렌지 향이 나는 오렌지 뮈스까(Orange Muscat), 세르비아에서 디저트 와인으로 만드는 뮈스까 크로칸트(Muscat Crocant), 체코 공화국에서 널리 재배하는 모라비안 뮈스까(Moravian Muscat) 등이 있습니다.

 

 

4. 뮈스까/머스캣으로 만드는 술

뮈스까 포도로 아래와 같은 종류의 술을 만듭니다.

1) 테이블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

칠레에서 뮈스까는 식사와 함께 마시는 와인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포도 중 하나이지만, 캘리포니아와 이탈리아에선 많이 쓰지 않습니다. 다만 아스티(Asti)처럼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 양조에 많이 사용하죠. 모스카토로 만드는 세미 스파클링 와인인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에서 재배하는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으로 만듭니다. 리투아니아(Lithuania)에서는 아리타(Alita)라고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곤 합니다.

뮈스까로 만드는 일반 와인은 숙성력이 떨어져서 오래 보관할 수 없습니다. 구매 후 바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2) 디저트 와인과 강화 와인(Fortified wine)

뮈스까는 여러 와인 생산국에서 스위트 와인을 만들 때도 사용합니다. 뮈스까로 만드는 강화 와인이 있고, 뮈스까를 늦게 수확해서 만드는 레이트 하베스트(Late harvest) 와인이나 노블 롯(Noble rot) 와인도 일부 있죠.

뮈스까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도 많이 재배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포도와 와인은 모스카텔(Moscatel), 또는 뮈스카텔(Muscatel)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나라에선 뮈스까로 스위트 와인이나 단맛이 강한 강화 와인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죠. 포르투갈의 뮈스까 와인 중에선 세투발 반도에서 만드는 강화 와인인 모스카텔 디 세투발(Moscatel de Setubal)과 도우루(Douro)에서 생산하는 모스카텔 디 파바이오스(Moscatel de Favaios)가 유명합니다. 대서양의 마데이라(Madeira)섬에선 지난 한 세기 동안 뮈스까의 재배량이 점점 줄고 있지만, 여전히 뮈스까가 들어간 마데이라 와인을 만듭니다.

스페인의 말라가(Malaga)와 헤레즈(Jerez)에서도 뮈스까로 달콤한 강화 와인을 생산하며, 때때로 독특한 숙성 장치인 솔레라(Solera) 시스템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스페인 와인법에 따라 뮈스까 포도는 팔로미노(Palomino),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포도와 함께 셰리 양조에 사용할 수 있는 포도로 인정받습니다.

 

 

캘리포니아 동부의 산 후아킨 밸리(San Joaquin Valley)에서도 성공적으로 뮈스까를 재배합니다. 이곳에선 오렌지 뮈스까와 블랙 뮈스까로 고급 디저트 와인을 만들죠.

프랑스에선 뱅 두 나투렐 와인 양조에 뮈스까를 쓰며 지역에 따라 뮈스까 드 봄므 드 베니스(Muscat de Beaumes-de-Venise), 뮈스까 드 리브잘트(Muscat de Rivesaltes), 뮈스까 드 프롱티냥(Muscat de Frontignan), 뮈스까 드 뤼넬(Muscat de Lunel), 뮈스까 드 미르발(Muscat de Mireval), 뮈스까 드 생 장 미네르부아(Muscat de St-Jean Minervois) 등을 생산합니다.

호주의 루더글렌(Rutherglen)에서도 뮈스까로 스위트 강화 와인을 생산합니다. 스페인처럼 솔레라 시스템으로 오랫동안 숙성한 제품도 있죠.

3) 브랜디와 리큐르(Brandies & Liqueurs)

페루와 칠레에선 브랜디의 일종인 피스코(Pisco)를 만들 때 뮈스까 와인을 베이스 와인으로 사용하며, 그리스에서도 메탁사(Metaxa)라는 브랜디를 만들 때 씁니다. 뮈스까 와인과 벌꿀 술(Mead)을 섞어서 만든 무스카도어(Muscadore)라는 리큐르도 있습니다.

5. 무스카델, 뮈스카델, 뮈스카데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재배되다 보니 뮈스까는 이름이 비슷한 다른 포도와 혼동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무스카델(Muscadel)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뮈스까의 일종인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뮈스카델(Muscadelle)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재배하는 청포도로 스위트 와인인 소테른과 드라이한 보르도 화이트 와인인 섹(Sec)의 양조에 사용하죠.

뮈스카데(Muscadet)는 루아르 밸리(Val de Loire)의 낭트(Nantes)시 주변의 뻬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지역에서 생산하는 가벼운 드라이 화이트 와인입니다. 사용하는 품종은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이죠. 뮈스카데라는 이름은 '머스크와 같은 풍미를 가진 와인(vin qui a un goût musqué)'이란 뜻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뮈스카데 와인에서 머스크 향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믈롱 드 부르고뉴 포도를 뮈스카데라고도 부릅니다.

6. 뮈스까/머스캣 와인의 향

뮈스까/머스캣 와인의 대표 향 중 하나인 포도 향

뮈스까 와인은 재배지가 넓은 만큼 향도 다양합니다. 가장 흔한 뮈스까 화이트 와인은 포도 재배지가 서늘한 곳이라면 청포도 형과 함께 레몬과 모과, 서양배, 오렌지, 만다린 등의 향이 나옵니다. 포도 재배지가 따뜻한 곳이라면 포도와 백도, 천도, 멜론, 파인애플 등의 향을 풍기죠. 레이트 하베스트 같은 디저트 와인에선 건포도와 프룬(prune), 말린 살구 들의 말린 과일 향과 바닐라 향이 나오죠. 오렌지 꽃과 허니서클 꽃 향을 풍기는 와인도 있습니다.

7. 뮈스까/머스캣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단맛이 강한 뮈스까 와인은 달콤한 음식과 잘 어울립니다. 사과파이와 일종의 푸딩인 플란(Flan), 신선한 과일, 타르트 타탱(Tarte Tatin), 호두 파이나 피칸 파이 같은 견과류 파이, 호박파이 등이 잘 맞습니다. 과일과 삶은 채소도 함께 먹기 좋습니다. 단맛이 아주 강한 레이트 하베스트나 스위트 강화 와인은 짠맛과 풍미가 강한 고르곤졸라 같은 블루치즈와 멋진 궁합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