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울라노(Friulano)는 소비뇽 베르(Sauvignon Vert), 또는 소비뇨나세(Sauvignonasse)라고도 하는 유럽종 청포도로 이탈리아 북부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Friuli–Venezia Giulia)주와 슬로베니아(Slovenia), 칠레에서 많이 재배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소비뇽 베르로 알려진 포도는 보르도가 원산지인 뮈스카델(Muscadelle)로 프리울라노와 다른 포도입니다.
1. 프리울라노의 특성
프리울라노는 노균병(downy mildew)과 가루곰팡이(oidium)에 민감하고 꽃눈이 늦게 달립니다. 수확량이 많지만, 고급 와인을 만들려면 포도송이를 솎아줘야 하죠. 와인 품질은 포도 수확 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너무 일찍 수확하면 와인 맛이 밋밋해지고 품종의 특성이 부족해지죠. 알코올을 14.5%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고 그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와인도 드물지 않습니다.
2. 프리울라노의 역사
원산지는 이탈리아 베네토(Veneto)라고 생각됩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에서는 1600년대부터 재배해 온 것으로 보이며,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라고도 불렀죠. 그러나 1632년에 베네치아의 오로라 포르멘티니(Aurora Formentini)가 헝가리의 마튜야니 공작(Count Batthujany)과 결혼하면서 프리울라노 삽목을 헝가리로 가져온 적은 있지만, 헝가리의 유명한 디저트 와인인 토카이(Tokaji)에 사용되는 포도들과 프리울라노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토카이는 푸르민트(Furmint)를 중심으로 하스레벨루(Hárslevelű)와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랑(Muscat Blanc a Petits Grains)인 사르거무슈코타이(Sárgamuskotály) 등의 포도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혹자는 초기의 토카이 프리울라노 와인을 푸르민트로 만들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프리울라노일지도 모르는 "새로운 토카이"에 대한 1932년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이 포도는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EU 사법재판소는 EU와 헝가리가 맺은 1993년 협정에 따라 2007년 4월 1일부터 포도 이름에 'Tocai'를 붙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헝가리에서 자국의 특급 스위트 와인인 토카이와 향긋하지만 드라이한 프리울라노 와인이 혼동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죠. 헝가리의 이의를 받아들인 EU는 토카이란 명칭을 보호하면서 와인을 더 잘 구별할 수 있도록 토카이와 연관된 듯하거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이름을 못 쓰게 한 것입니다. 이후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의 와인 생산자들은 이 포도를 단지 "Friulano"로 부르기로 했고 라벨에도 그렇게 표시합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와 가까운 베네토(Veneto)주의 동부에선 프리울라노를 리존(Lison)이라고 부르며, 베네토주의 다른 지역에선 따이(Tai)라고 합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에서 많이 재배하는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는 프랑스 알자스의 토카이 달자스(Tokay d'Alsace)와 같은 포도이지만, 프리울라노와 피노 그리지오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프리울라노가 베네토(Veneto)에서 두루 재배하는 토카이 이탈리코(Tocai Italico) 포도와 관련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학자들은 두 포도가 다른 품종이라고 말합니다.
3. 프리울라노 포도의 재배지
주요 산지는 이탈리아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와 슬로베니아의 고리슈카 브르다(Goriška Brda)로 두 지역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포도 중 하나입니다. 칠레에서도 많이 재배하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프리울라노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소량 재배할 뿐이죠.
1)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프리울라노 포도밭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가 56%, 베네토주가 37%를 차지하며, 전체 포도 수확량의 20% 이상이 프리울-베네치자 줄리아주의 프리울리 콜리 오리엔탈리(Friuli Colli Orientali) DOC, 콜리오 고리찌아노/콜리오(Collio Goriziano/Collio) DOC, 프리울리 그라베(Friuli Grave) DOC, 프리울리 이손초/이손초 델 프리울리(Friuli Isonzo/Isonzo del Friuli) DOC에서 나옵니다.
그밖에 프리울라노 와인의 주요 생산지로는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의
리존(Lison) DOCG와 로자쪼(Rosazzo) DOCG, 프리울리/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 Friuli Venezia Giulia) DOC, 프리울리 아니아(Friuli Annia) DOC, 프리울리 아뀔레이아(Friuli Aquileia) DOC, 프리울리 라티쟈나(Friuli Latisana) DOC, 리존-프라마조레(Lison-Pramaggiore) DOC
베네토주의
바뇰리 디 소프라/바뇰리(Bagnoli di Sopra/Bagnoli) DOC, 브레간체(Breganze) DOC, 콜리 베리치(Colli Berici) DOC, 콜리 유가네이(Colli Euganei) DOC, 코르티 베네데티네 델 파도바노(Corti Benedettine del Padovano) DOC, 쿠스토자(Custoza) DOC, 멜라라(Merlara) DOC, 피아베(Piave) DOC, 리비에라 델 브렌타(Riviera del Brenta) DOC, 산 마르티노 델라 바딸리아(San Martino della Battaglia) DOC, 베네치아(Venezia) DOC
가 있습니다.
2) 슬로베니아
고리슈카 브르다와 비파바 계곡(Vipaba Valley)에선 이 포도는 '토카이(Tokaj)'로 불러왔습니다. EU가 토카이란 이름을 금지한 후 슬로베니아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 이름을 처음엔 소비뇨나세, 또는 젤레니 소비뇽(Zeleni Sauvignon (Green Sauvignon))으로 바꿔서 불렀고, 2013년에 공식적으로 '자콧(Jakot)'으로 정했습니다.
3) 칠레
칠레의 프리울라노 재배량도 상당합니다. 프리울라노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전해졌고, 19세기엔 보르도에서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함께 재배되었습니다. 그런데 칠레로 프리울라노를 가져가면서 소비뇽 블랑으로 잘못 알려졌죠. 아마 꺾꽂이용 삽목을 보낼 때 소비뇽 블랑으로 잘못 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두 포도의 잎과 포도송이 모양이 매우 비슷해서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웠기 때문이죠. 게다가 보트리티스(Botrytis)에 대한 민감성도 비슷했고요. 하지만 와인을 만들어서 비교해 보면 두 포도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소비뇽 블랑은 향과 산도가 매우 강하고 활기차지만, 프리울라노는 좀 더 부드럽고 향과 풍미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1990년대에 학자들은 칠레의 소비뇽 블랑이 사실은 프리울라노라는 걸 밝혀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칠레에선 진짜 소비뇽 블랑의 재배가 늘어나고, 프리울라노 포도밭은 줄어들었죠. 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칠레 소비뇽 블랑 와인 중에선 아직도 프리울라노로 만든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칠레에서 발견된 소비뇽 블랑의 클론 품종인 소비뇽 그리(Sauvignon gris)와 달리 소비뇽 베르로 알려진 프리울라노와 소비뇽 블랑은 관련이 없습니다.
4. 프리울라노 와인의 맛과 향
프리울라노 와인의 생산지에 따라 스타일이 다릅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주와 고리슈카 브르다에서는 적당한 산도의 풀 바디 와인으로 흰 꽃향기와 섬세한 과일, 향신료, 아몬드, 미네랄 풍미가 있습니다. 칠레에서는 초반엔 녹색 사과 향기가 나지만 숙성하면서 점차 향이 바래고 미디엄 바디로 되어갑니다.
5. 프리울라노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레몬 버터를 발라서 프라이팬에 구운 채소와 모차렐라를 얹은 프로슈토(prosciutto), 초밥처럼 신맛이 나는 음식, 가벼운 훈제 요리, 생선구이, 조개구이, 그릴에 구운 해산물, 닭과 칠면조 구이, 돼지고기, 채소 샐러드, 가벼운 풍미의 카레, 멕시코와 타이 요리 등이 잘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