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이탈리아] 람부르스코 - 오랫동안 이탈리아인의 사랑을 받아온 포도 (재업)

까브드맹 2023. 12. 24. 12:00

수확기의 람부르스코 포도와 잎의 모습

람부르스코(Lambrusco)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주에서 주로 재배하는 포도 이름이면서 이 포도로 만드는 와인 이름이기도 합니다. 람부르스코로 만드는 레드 와인은 생생한 포도 향을 풍기고 자잘하고 섬세한 붉은 거품이 나오며, 다른 국가에선 이런 스타일의 와인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볼로냐 요리의 느끼한 맛을 한 모금에 가시게 해주고 식욕을 돋워주는 람부르스코 와인은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 인기가 높고 지역 내의 다른 와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 람부르스코의 특성

단위 당 수확량이 많아서 로마 시대에도 평가가 매우 좋았습니다. 로마의 집정관이며 장군이었던 대 카토(Cato the Elder)가 쓴 ⟨농업론(De agri cultura)⟩에는 "1에이커(약 4,047제곱미터)의 땅에서 수확한 람부르스코 포도의 2/3만으로도 암포라(Amphora) 항아리 300개를 충분히 채울 만큼 많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람부르스코는 DNA 구조가 불안정해서 돌연변이인 클론(Clone) 품종이 60종이 넘습니다. 클론 중에선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Lambrusco Grasparossa), 람부르스코 마에스트리(Lambrusco Maestri), 람부르스코 마라니(Lambrusco Marani), 람부르스코 몬스테리코(Lambrusco Monstericco), 람부르스코 살라미노(Lambrusco Salamino), 람부르스코 소르바라(Lambrusco Sorbara), 람부르스토 비아다네제(Lambrusco Viadanese)가 대표적인 품종이죠.

람부르스코는 곰팡이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포도송이가 땅에서 높게 열리도록 재배합니다. 전통적으로 포플러 나무를 버팀목으로 써서 포도 덩굴이 버팀목을 타고 높이 올라가도록 하죠.

람부르스코 와인은 보통 람부르스코 포도만 사용하지만, 색깔을 좋게 하려고 안첼로타(Ancellotta) 포도를, 바디와 구조를 위해 마르제미노(Marzemino)와 말보 젠띨레(Malbo Gentile),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의 포도를 최대 15%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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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람부르스코의 역사

가장 오래된 양조용 포도 중 하나인 람부르스코를 로마인들은 라브루스카(labrusca)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가장자리와 국경을 뜻하는 라틴어 labrum과 야생식물을 뜻하는 ruscum의 합성어로 추정됩니다. 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자유롭게 성장하는 이 포도의 야생성에 주목한 것이죠.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람부르스코는 야생 포도와 계통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도 현대인처럼 람브루스코 와인을 살짝 거품이 있는 형태로 마시기도 했습니다. 완전히 발효하지 않은 람부르스코 와인을 와인 보관용 항아리인 암포라에 담아 단단히 밀봉해서 서늘한 지하 저장고에 보관한 후 필요할 때 따뜻한 장소로 내놓아서 재발효가 일어나도록 했죠. 며칠이 지나 밀봉한 암포라 안에서 발효가 이뤄지면 와인에는 빠져나가지 못한 미세한 이산화탄소가 남게 됩니다. 로마인들은 세미 스파클링 정도의 람부르스코 와인을 성찬과 함께 즐겼을 겁니다.

람부르스코를 많이 재배하는 모데나(Modena) 일대에서 발견된 수많은 고고학적 유적은 그곳에서 람부르스코를 오래전부터 재배했던 걸 보여줍니다. 중세에 에밀리아 지역의 제왕이었던 마틸데 디 카노사(Matilde di Canossa) 여공작은 와인의 경제적 효과를 잘 알고 있어서 포도나무 재배를 장려했고, 모데나는 람부르스코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죠. 1850년의 문서엔 람부르스코 와인이 모데나에서 벗어나 멀리 프랑스로 수출된 사실이 적혀있습니다. 또한 17세기부터 람부르스코의 다양한 변종을 기록한 문서가 많이 나옵니다.

1900년대에 이탈리아에선 농장 노동자들의 영양을 위해 매일 와인이 한 병씩 배급되었고, 이를 위해 신선하고 가벼운 와인을 대량 생산해야 했습니다. 수확량이 많은 람부르스코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품종이었죠. 농장주는 람부르스코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 압착할 때 나오는 질 좋은 와인과 두 번째 압착할 때 나오는 평범한 와인을 나눈 다음 나중에 나온 평범한 와인에 물을 타서 노동자에게 배급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와인은 당연히 알코올 도수가 낮고 묽었지만, 엄청나게 많이 생산할 수 있었죠.

람부르스코 와인의 색과 거품

2차 세계 대전 이후 람부르스코 와인이 미국에 수출되었을 때, 탄산 가스가 약하게 나오고 맛이 달면서 알코올 도수는 낮은 람부르스코 와인은 마치 콜라처럼 마실 수 있어서 단맛 나는 와인을 좋아하는 미국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람부르스코 와인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와인이었고, 1985년에는 무려 1,300만 상자가 팔렸습니다. 에밀리아-로마냐의 협동조합인 리유니트(Riunite)는 1984년에 1,120만 상자를 수출했고, 리유니트 와인의 독점 수입 판매상인 존 F 마리아니(John F Mariani)는 이렇게 번 돈으로 까스텔로 반피(Castello Banfi)를 설립했습니다.

3. 람부르스코 포도 재배지

1)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는 에밀리아-로마냐와 롬바르디아(Lombardia), 트렌티노-알토 아디제(Trentino-Alto Adige), 뿔리아(Puglia)주에서 람부르스코를 재배합니다. 재배량은 에밀리아-로마냐가 71%로 단연 높고, 뿔리아가 20% 정도입니다.

①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 디 까스텔베트로(Lambrusco Grasparossa di Castelvetro) DOC

모데나 마을 남쪽의 가장 작은 생산지로 마을 이름을 딴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의 고향입니다. 람부르스코 중에서 탄닌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그라스파로싸로 만든 와인은 보랏빛이 도는 붉은색을 띠며, 달지 않고 묵직해서 입에 가득한 듯한 질감이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와인 라벨에 생산지 명칭을 넣으려면 그라스파로싸를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② 람부르스코 디 소르바라(Lambrusco di Sorbara) DOC

모데나 북쪽의 소르바라 마을 인근에 있는 생산지로 소르바라 클론 종의 원산지입니다. 소르바라는 가장 향기로운 람부르스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품종으로 여겨집니다. 또 다른 클론 품종인 살라미노 포도와 약간 비슷하지만, 좀 더 색이 짙고 무게감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르바라 와인의 색은 깊은 루비색에서 자주색까지 다양합니다.람부르스코 디 소르바라에선 소르바라와 살라미노 포도만 써서 와인을 만들어야 하며, 소르바라를 60%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람부르스코 디 소르바라 와인의 품질이 뛰어난 이유 중 하나는 포도를 기를 때 일부러 꽃을 떨궈 수확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포도 풍미를 집약시키기 때문입니다. 소르바라로 만든 람부르스코 와인은 신맛이 강합니다.

 

 

③ 람부르스코 살라미노 디 산타 크로체(Lambrusco Salamino di Santa Croce) DOC

레지아노(Reggiano) DOC의 하위 생산지로 소르바라 마을에서 서쪽으로 11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람부르스코 살라미노를 90% 이상 넣어서 양조해야 하며, 와인은 탄산가스가 약하게 들어간 프리잔떼(Frizzante) 스타일입니다. 와인색은 옅으며 맛은 약간 달거나 드라이합니다. 람부르스코 살라미노라는 이름은 포도송이가 살라미 소시지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④ 레지아노(Reggiano) DOC

가장 많은 마을이 포함된 람부르스코 생산지로 수출용 람부르스코 와인은 대부분 이곳에서 만듭니다. 마에스트리(Maestri), 마라니(Marani), 몬테리코(Montericco), 살라미노의 4개 클론 포도를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안체로타(Ancellotta) 품종도 15%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 람부르스코 레지아노의 람부르스코 와인 중 단 것은 전형적인 프리잔떼 스타일로 바디도 가볍지만, 달지 않고 드라이한 것은 바디가 좀 더 묵직하며 색상도 어둡습니다.

⑤ 콜리 디 파르마(Colli di Parma) DOC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으며 람부르스코 와인은 라벨에 품종명을 표시하려면 람부르스코를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⑥ 콜리 디 스칸디아노 에 카노싸(Colli di Scandiano e Canossa) DOC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생산지로 람부르스코 와인은 람부르스코 바르기(Lambrusco Barghi), 람부르스코 마에스트리, 람부르스코 마라니, 람부르스코 살라미노를 단독으로, 또는 섞어서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⑦ 모데나(Modena) DOC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생산지로 람부르스코 와인은 람부르스코를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⑧ 람부르스코 만토바노(Lambrusco Mantovano) DOC

롬바르디아주에 있는 람부르스코 와인 생산지입니다. 보통 달지 않게 람부르스코 와인을 만들지만, 약간 단 맛이 도는 것도 있습니다.

 

 

⑨ 카스텔러(Casteller) DOC

이탈리아 북부의 트렌티노-알토 아디제주에 있으며 레드 와인을 양조할 때 람부르스코 아 폴리아 프라스타리아타(Lambrusco a Foglia Frastagliata) 포도를 최대 50%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

⑩ 트렌티노(Trentino) DOC

트렌티노-알토 아디제주에 있으며 로제 와인 양조에 람부르스코 아 폴리아 프라스타리아타를 사용합니다.

⑪ 발다디제/에치텔러(Valdadige/Etschtaler) DOC

트렌티노-알토 아디제주의 와인 생산지로 로제 와인과 레드 와인 양조에 람부르스코 아 폴리아 프라스타리아타를 사용합니다.

⑫ 발다디제 테라데이포르티/테라데이포르티(Valdadige Terradeiforti/Terradeiforti) DOC

트렌티노-알토 아디제주의 와인 생산지로 이곳에선 에나티오(Enantio)라고 부르는 람부르스코 아 폴리아 프라스타리아타로 레드 와인을 만듭니다. 에나티오 와인은 에나티오를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2) 기타 국가

호주에서 달고 마시기 쉬운 알코올 도수 10% 정도의 람부르스코 와인을 소량 생산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람부르스코를 재배하죠.

 

 

4. 람부르스코 와인의 맛과 생산 방식

람부르스코 와인의 본고장인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선 베리(berry)류의 향을 풍기며 드라이하고 산도 높은 람부르스코 와인을 향토 음식과 함께 즐겨 마십니다. 그렇지만 수출하는 람부르스코 와인은 살짝 달거나 아주 달죠. 이런 람부르스코 와인은 에밀리아-로마냐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람부르스코 와인의 특성은 부족하지만, 해외에선 매우 주목받는 스타일입니다.

샴페인과 같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드물게 있지만, 람부르스코 와인은 대부분 압력 탱크를 이용한 샤르마(Charmat) 방식으로 만듭니다. 국제적으로 높은 수요에 부응하려고 와인을 더 많이 생산하는 방법이 도입된 것이죠. 수출용 와인은 잔당을 남기려고 발효 도중에 인위적으로 발효를 멈춥니다. 그래서 알코올 도수는 7~9% 사이가 되고, 발효되지 못한 당분과 거품이 약간 들어가게 되죠. 마개도 코르크보다 스크류 캡을 많이 사용합니다.

60종이 넘는 클론이 있을 만큼 변이가 잘 일어나는 람부르스코이지만, 청포도로 바뀐 사례는 없습니다. 판매되는 람부르스코 비앙코는 '흑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으로 발효하기 전에 프레스로 눌러서 빼낸 과즙만 사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국내에는 다양한 람부르스코 와인이 수입되어 있습니다. 그중엔 달지 않은 것도 있지만,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역시 탄산이 약간 들어가고 맛이 단 와인들이죠. 이런 스타일의 람부르스코 와인은 와인을 처음 마시는 사람도 쉽게 마실 수 있고,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5. 람부르스코 와인의 향

람부르스코 와인의 대표 향인 베리류 과일

람부르스코 와인은 생산자에 따라 향이 다양합니다. 레드 체리와 붉은 사과, 블랙베리, 블루베리 같은 과일과 제비꽃과 장미꽃, 루바브(rhubarb) 같은 채소, 크림 등의 향이 나오죠. 때로는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 향과 흰 꽃, 딸기와 산딸기 향을 풍길 때도 있습니다.

6. 람부르스코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람부르스코 와인은 다양한 요리와 어울립니다. 차거나 따끈한 고기 요리, 각종 샐러드, 오븐에서 구운 파스타, 신선하고 가볍거나 혹은 숙성된 치즈, 생선구이, 수프와 함께 마실 식전주로 이상적이죠.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로 만든 와인은 강한 탄닌 덕분에 육류와 숙성된 치즈, 파스타 요리에 잘 어울리지만, 람부르스코 소르바라로 만든 와인은 생선과 차가운 육류, 신선한 치즈와 함께 먹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