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지역 특성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와인 생산지입니다. 우수한 화이트 와인의 생산지로 1970년대 초반부터 세련된 화이트 와인으로 명성을 떨쳐 왔죠. 강한 향과 깨끗하고 날카로운 맛을 지닌 와인을 생산하며, 틀에 박힌 오크 처리는 하지 않습니다.
한때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 아래 있던 적도 있었기에 이곳의 와인은 오스트리아와 동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포도 품종과 와인 생산자 이름이 유고슬라비아어와 오스트리아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11개의 DOC와 3개의 DOCG가 있으며, IGT 지역은 세 군데입니다. 생산 와인의 62%가량이 DOC 와인으로 품질이 전반적으로 뛰어납니다. 베네토(Veneto), 트렌티노-알토 아디제(Trentino-Alto Adige)와 함께 토스카나(Toscana)나 피에몬테(Piemonte)에 버금가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산지입니다.
2.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역사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와인 역사는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으로부터 베네치아의 무역 센터까지 이어진 지중해 향신료 무역 루트에서 중요한 거점이었던 프리울리(Friuli)와 베네치아 줄리아(Venezia Giulia)의 역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곳을 거쳐 간 여행자들이 마케도니아(Macedonia)와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포도 묘목을 가져와 심었고, 합스부르크(Hapsburgs) 가문이 통치했을 때에는 프랑스 품종이 도입되었습니다. 동서의 교역로라는 이점 덕분에 필록세라가 창궐하기 전까지 이곳에서는 350종의 다양한 포도를 재배했죠.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항구로 사용되면서 독일 와인 문화가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필록세라의 창궐 후에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와인 산업은 침체했고, 1970년대까지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피노 그리지오 와인이 국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와인 산업은 극적으로 부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협동조합이나 네고시앙에 통째로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오 스키오페토(Mario Schiopetto)가 자신의 포도원에서 생산한 와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로 다른 포도원의 주인들도 소규모 와이너리를 설립해서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와인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3.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포도 품종
30종 이상의 포도를 재배하며, 토착 품종으로는 토카이 프리울라노(Tocai Friulano)가 유명합니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풀 바디하고 꽃향기가 나지만 다소 중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숙성하면서 견과류와 회향 내음이 나타나죠. 토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헝가리의 토카이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소비뇨나세(Sauvignonasse), 또는 소비뇽 베르(Sauvignon Vert)라고 부릅니다. 칠레에서는 이 포도를 쇼비뇽 블랑으로 착각하고 많이 재배했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죠. 칠레 소비뇽 블랑 와인이 예전보다 좋아진 이유에는 양조법의 발달도 있지만, 소비뇽 블랑을 제대로 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칠레에서는 별 볼 일 없었지만, 프리울라노는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습니다. 2006년에 EU에서 포도 이름에 토카이란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기에 지금은 프리울라노라고만 부릅니다.
토착 적포도로는 과일 풍미가 나지만, 매우 강한 탄닌을 지녀서 "혀 자르개(tonguecutter)"란 뜻을 가진 타쩰렝게(Tazzelenghe), 강한 탄닌과 향신료, 후추 풍미가 나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스키오페티노(Schioppettino),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고 허브 풍미가 있는 풀 바디 와인을 만드는 레포스코 달 페둔콜로 로쏘(Refosco dal Peduncolo Rosso)가 있습니다.
다른 토착 품종으로는 리볼라 지알라(Ribolla Gialla), 베르두쪼(Verduzzo), 삐꼴릿(Picolit), 말바지아 이스트리아나(Malvasia Istriana) 등이 있습니다.
글로벌 품종으로는 메를로(Merlot), 까르메네르(Carmenere),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피노 비앙코(Pinot Bianco),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리슬링(Riesling), 샤르도네(Chardonnay) 등을 재배합니다.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에서는 오랫동안 "까베르네"라고 불렀던 품종을 까베르네 프랑으로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까르메네르라고 밝혀졌죠.
4.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지리 및 기후
북쪽으로는 알프스산맥이 오스트리아와 경계를 나누며, 동쪽으로는 슬로베니아와 접하고 있습니다. 서쪽에는 베네토 지역이 있고, 남쪽으로는 아드리아해(Adriatic Sea)가 있죠. 북부는 산지가 매우 많지만 아드리아해 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평평한 지형과 평원이 펼쳐집니다. 포도밭은 알프스와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육풍과 해풍으로 여러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기후는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쌀쌀해서 포도 열매의 당도와 산도가 균형을 갖추도록 해주며, 성장기에는 천천히 오랫동안 여물도록 해주죠. 여름철 평균 기온은 22.8℃ 정도이며, 강수량은 연간 1,530㎜ 정도입니다. 수확은 보통 9월에 이뤄집니다.
토양은 언덕 지대는 풍부한 이회토가 섞인 석회암과 사암이 이뤄져 있고, 계곡에는 진흙과 모래, 자갈이 깔렸습니다. 프리울리의 포도밭과 와이너리 이름에는 종종 'ronco_복수형은 ronchi'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계단식 언덕을 뜻하는 프리울리 사투리입니다.
5.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최고의 포도밭은 알프스산맥 기슭의 남쪽을 향한 경사면에 있습니다. 풍부한 일조량과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의 혜택을 받는 곳이죠. 프리울리 지역의 수확량은 1에이커당 평균 3.5t으로 이탈리아에서 제일 적습니다. 이렇게 적은 것은 프리울리 와인이 양보다 질을 추구하기 때문이며, 이곳의 화이트 와인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이유이기도 합니다.
1960년대에 프리울리의 와인 생산자들은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포도 껍질을 빠르게 제거하고, 주스를 빼내면서 산화를 막는 조치를 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기술을 개척했습니다. 이 기술은 이탈리아에서 '메토도 프리울라노(metodo friulano)' 또는 프리울리 방식(Friuli method)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프리울리 지역이지만, 와인 생산량의 40%는 주로 메를로로 만드는 레드 와인입니다. DOC 규정상 하나의 품종을 100%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어야 하기에 단일 품종 와인이 대부분이지만, 블렌딩 와인도 생산합니다. 와인 생산자들은 오크를 쓰지 않고 포도의 과일 향과 산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와인을 만들며, 화이트 와인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합니다. 그래서 부르고뉴나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보다 알자스나 루아르 밸리 와인과 스타일이 비슷합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청포도로 와인을 만들면서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발효하는 오렌지 와인(Orange Wine)이 유행하면서 프리울리에서도 앰버 와인(Amber Wine)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이런 스타일의 와인은 슬로베니아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조지아 등지에서 수백 년 전부터 생산했던 것입니다.
6.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의 주요 생산지와 대표 와인
1) 프리울리 그라베(Friuli Grave) DOC
① 가장 넓은 지역으로 다른 곳보다 지형이 평평하며 토양에 자갈이 많습니다. 레포스코 와인이 평이 좋은데, 산미가 있고 붉은 과일 향이 나며, 초기엔 탄닌이 좀 거칠지만 숙성하면서 부드러운 자두 맛과 쓴 초콜릿의 풍미가 두드러집니다.
②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화이트 와인은 언덕에 있는 포도밭에서 생산합니다. 단일 품종으로 만들지만, 고급 화이트 와인 중에는 여러 품종을 섞는 것도 있죠. 최근에 오크 숙성을 조금 하는 와인이 늘고 있습니다.
③ 레드 와인은 보르도 품종을 섞으며, 가볍고 과일 향이 나는 스타일로 만듭니다.
2) 프리울리 콜리오 고리찌아노(Friuli Collio Goriziano) DOC
① 가장 동쪽에 있으며 콜리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드리아해의 온화한 기후에 영향을 받는 경사가 심한 언덕의 포도밭에서 개성이 강한 최고급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② 토착 품종과 대중적인 국제 품종 모두 화이트 와인 양조에 사용합니다.
3)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Colli Orientali del Friuli) DOC
① 동쪽 언덕이라는 뜻으로 콜리오와 비교해보면 대륙성 기후가 뚜렷합니다. 기온은 포도 재배의 한계점에 가까울 만큼 서늘하며, 계단식 언덕인 론키(ronchi) 지형이 많아 포도 재배에 아주 좋습니다.
② 소비뇽 블랑, 피노 그리지오, 피노 비앙코, 베르두쪼 등을 주로 재배하지만, 까르메네르와 메를로, 레포스코 같은 적포도도 재배량의 3분의 1 이상입니다.
③ 라만돌로(Ramandolo) DOCG에서 베르두쪼 포도로 만드는 베르두쪼 디 라만돌로(Verduzzo di Ramandolo)는 드라이하거나 약간 단맛이 나는 와인입니다.
④ 삐꼴릿 포도로 알코올 도수가 15%를 넘는 고급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데, 1800년경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 중 하나였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생산량은 매우 적습니다.
4) 프리울리 이손초(Friuli Isonzo) DOC
① 피노 비앙코와 샤르도네, 말바지아 이스트리아나, 쇼비뇽 블랑으로 만드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 유명합니다.
② 게부르츠트라미너, 까베르네 프랑, 모스까토, 피노 그리지오, 피노 네로, 레포스코, 스키오페티노, 프리울라노, 베르두쪼 같은 포도로 일반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합니다.
③ 벤데미아 타르디바(Vendemmia Tardiva)는 샤르도네와 피노 비앙코, 프리울라노, 베르두쪼 포도를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섞어서 만드는 레이트 하베스트(Late Harvest) 와인입니다.
5) 프리울리 아퀼레이아(Friuli Aquileia) DOC
① 메를로를 주로 재배하지만, 레포스코로 가볍고 숙성력이 좋은 와인도 만듭니다.
6) 기타 DOC
① 카르소(Carso) DOC
②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 치알라(Colli Orientali del Friuli Cialla) DOC
③ 콜리 오리엔탈리 델 프리울리 로자쪼(Colli Orientali del Friuli Rosazzo) DOC
④ 프리울리 아니아(Friuli Annia) DOC
⑤ 프리울리 라티자나(Friuli Latisana) DOC
⑥ 리존 프라마찌오레(Lison Pramaggiore) DOC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_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_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3. 김의겸 저, 소믈리에 실무, 서울 : 백산출판사, 2007
4. 영문 위키피디아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항목
5.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