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밀리아-로마냐의 지역 특성
에밀리아-로마냐는 이탈리아반도 북부에 있으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때 별개의 지역이었습니다. 서쪽에 있는 아펜니노(Appennino) 산맥의 영향을 받은 에밀리아의 구불구불한 언덕부터 모데나(Modena)와 볼로냐(Bologna) 동쪽의 로마냐(Romagna) 평야에 이르기까지 뚜렷하게 다른 기후와 토양이 있는 곳입니다.
에밀리아-로마냐의 와인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마디로 특징짓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와인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죠.
2. 에밀리아-로마냐의 역사
기원전 7세기부터 에트루리아(the Etruscan) 민족이 포도 농사를 지었고, 로마 민족이 이어받았습니다. 로마 시대에 이미 에밀리아의 대표 포도인 람부르스코(Lambrusco)를 재배했고, 대 카토(Cato the Elder)는 <농업론(De agricultura)>에서 "1에이커의 땅에서 수확한 람부르스코 포도의 2/3만 갖고도 암포라(Amphora) 항아리 300개를 충분히 채울 만큼 많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여러 민족이 이 땅을 지배했지만, 와인 산업은 교회와 수도원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기독교 국가 사이에 무역이 번성했고, 지역의 수도원 덕분에 문화와 종교가 번성했죠. 1088년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세워지면서 무역이 활성화되고 지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은 황제와 교황의 권력 다툼으로 어지러워졌고, 이곳은 페라라(Ferrara)의 에스테(Este) 가문, 리미니(Rimini)의 말라테스타(Malatesta) 가문, 로마 교황청, 파르마와 피아첸짜(Piacenza)의 파네세(Farnese) 가문, 모데나(Modena)와 레지오(Reggio) 공국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카노사(Canossa)의 마틸데(Matilde) 여 후작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으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죠.
통일된 거대 시장과 유통망이 없었기에 와인 산업은 주민들이 마실 와인을 생산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다만 17세기부터 람부르스코의 다양한 변종을 묘사하는 문서들이 많이 나옵니다.
유럽의 포도밭을 초토화하며 퍼져나가던 필록세라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어느 지역에서 진출을 멈췄습니다. 필록세라가 퍼지지 못한 포르타나(Fortana) 포도밭의 포도나무는 오늘날에도 뿌리 부분이 유럽종 포도나무입니다.
1900년대 초에 다른 이탈리아 지역처럼 소규모 와인 생산자와 협동조합이 많이 설립되었고, 품질보다 생산량을 중시하며 와인을 생산합니다. 필록세라로 초토화된 유럽에 많은 와인을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죠.
3. 에밀리아-로마냐의 포도 품종
가장 많이 알려진 에밀리아 와인은 람부르스코 포도로 만드는 람부르스코입니다. 현지에서는 향토 음식과 함께 드라이한 람부르스코를 즐겨 마시지만, 수출하는 람부르스코 와인은 살짝 달거나 단 맛이 있죠. 이런 람부르스코는 에밀리아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람부르스코 와인으로서의 개성이 부족합니다.
로마냐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주로 산지오베제(Sangiovese)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입니다. 전통적인 와인은 비교적 가볍지만, 현대적인 스타일은 깊이와 풍미가 더 좋고 숙성 잠재력이 좋죠.
로마냐 지역의 화이트 와인용 포도로는 이몰라(Imola)와 체세나(Cesena), 그리고 역사적인 생산지인 리미니(Rimini) 주변의 언덕에서 많이 자라는 알바나(Albana)와 트레비아노(Trebbiano)가 있습니다. 트레비아노는 로마냐 지역이 원산지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로마냐 DOC의 트레비아노 와인은 다른 지방의 것보다 풍미가 더 중성적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향과 맛이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죠. 알바나 디 로마냐(Albana di Romagna)는 이곳의 특급 와인으로 이탈리아 최초의 화이트 DOCG 와인입니다. 달지 않은 세코(secco), 살짝 단맛이 있는 아마빌(amabile), 단맛 나는 돌체(dolce) 스타일로 생산하며, 흥미롭게도 포도를 말려서 만드는 파씨토(passito) 스타일로도 생산합니다. 로마냐 DOC에서는 알바나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도 나옵니다.
청포도인 말바지아(Malvasia)와 오르투르고(Ortrugo)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며, 바르베라(Barbera)와 보나르다(Bonarda)로는 과일 풍미가 많은 레드 와인을 만듭니다. 부채 변제자(debt-payer)라는 뜻의 파가데비트(Pagadebit)는 큰 잠재력과 다양성을 가진 활기찬 청포도로 많은 생산자가 지역 특산인 이 품종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마냐 DOC의 하위 생산지인 까니나(Cagnina)에서는 테라노(Terrano) 포도로 마시기 편하고 과일 향이 나면서 살짝 단 맛이 나는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외부에서 도입한 품종으로 샤르도네(Chardonnay),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피노 계열의 포도가 있습니다. 모두 현대적인 스타일로 양조하죠. 보스코 엘리체오(Bosco Eliceo) DOC에서는 지역 품종인 포르타나(Fortana) 포도뿐만 아니라 국제 품종인 소비뇽 블랑과 메를로(Merlot)로 기분 좋은 드라이 레드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로마냐의 다양한 지역에서 자라는 이탈리아 토착 품종의 잠재력을 끌어낸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4. 에밀리아-로마냐의 지리와 기후
이탈리아반도 북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포(Po)강 남쪽에 있는 에밀리아-로마냐는 남서쪽의 아펜니노 산맥과 동쪽의 아드리아해(Adriatic Sea)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포강 유역은 광대하고 기름진 평야 지대로 포도보다 밀 농사에 더 적합하지만, 아펜니노 산맥의 북쪽 경사면과 구릉 지대는 포도 재배에 좋습니다. 또한, 에밀리아-로마냐는 포도 농사뿐만 아니라 와인 연구 지역으로도 유명합니다.
이곳의 중심도시는 볼로냐(Bologna) 입니다. 리용(Lyon)이 프랑스 최고의 미식 도시라면 볼로냐는 이탈리아 최고의 미식 도시라 할 수 있죠.
모데나(Modena)시는 볼로냐 북서쪽에 있으며 람부르스코 와인의 중심지입니다. 모데나 인근의 파르마(Parma)는 와인뿐만 아니라 파마산 치즈(Parmasan Cheese)로도 유명하죠. 파마산 치즈는 레드 와인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따뜻하고 무더운 여름과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와 추위가 빈번한 겨울이 특징인 지중해성 기후지대입니다. 해안 지역과 산악 지역은 기후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드리아해 연안 지역의 기후는 따스하고 부드럽지만, 산악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고 폭설도 자주 발생하죠.
5. 에밀리아-로마냐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람부르스코는 잔당을 남기기 위해 인공적으로 발효를 멈춥니다. 알코올 도수는 7~9% 사이이며 거품이 약간 있죠. 코르크 마개보다는 스크류 캡을 많이 사용합니다. 화이트 람부르스코 역시 같은 적포도 품종으로 만드는데 발효하기 전에 압착한 후 껍질을 바로 제거합니다. 포도의 산도를 높이기 위해 격자 시렁(trellis)을 써서 포도나무가 높게 자라도록 하죠.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 와인과 에밀리아-로마냐 와인을 차별화하려고 지역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포도인 산지오베제와 알바나의 우수한 클론 품종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클론을 선별하는 작업은 와인 품질과 직결되므로 매우 신중하게 이뤄집니다.
에밀리아-로마냐는 와인 생산량이 많지만, DOC 와인은 겨우 15% 정도로 평균 품질은 썩 좋은 편이 아닙니다.
6. 에밀리아-로마냐의 주요 와인 생산지
1) DOCG : 2개
① 알바나 디 로마냐(Albana di Romagna)
② 콜리 볼로네시 클라시코 피뇰레토(Colli Bolognesi Classico Pignoletto)
2) DOC : 18개
①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 디 까스텔베트로(Lambrusco Grasparossa di Castelvetro) : 모데나 마을 남쪽의 가장 작은 생산지로 마을 이름을 딴 람부르스코 그라스파로싸의 고향입니다. 그라스파로싸는 람부르스코 중에서 탄닌이 가장 많습니다. 퍼플빛이 도는 붉은색을 띠는 이곳 와인은 달지 않고 묵직하며 입안에 가득한 듯한 질감이 특징입니다. 와인 레이블에 생산지 이름을 넣기 위해선 그라스파로싸를 85%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② 람부르스코 디 소르바라(Lambrusco di Sorbara) : 모데나 북쪽의 소르바라 마을 인근 지역으로 소르바라 클론 종의 원산지입니다. 소르바라는 가장 향기로운 람부르스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품종으로 여겨집니다. 또 다른 클론 품종인 살라미노 포도와 약간 비슷하지만, 색이 좀 더 짙고 무게감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소르바라로 만든 와인은 깊은 루비 빛에서 자줏빛 색조까지 다양한 색상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소르바라와 살라미노만 써서 와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소르바라를 최소 60% 이상 사용해야 합니다. 소르바라로 만든 람부르스코 와인이 뛰어난 품질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포도를 재배할 때 일부러 꽃을 떨궈 수확량을 조절함으로써 포도의 풍미를 집약시키기 때문입니다. 소르바라로 만든 람부르스코 와인은 신맛이 강합니다.
③ 람부르스코 살라미노 디 산타 크로체(Lambrusco Salamino di Santa Croce) : 레지아노(Reggiano) DOC의 하위 지역으로 소르바라 마을 서쪽 11km 지점에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람부르스코 살라미노를 최소 90% 이상 넣어서 와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만든 람부르스코 와인은 탄산가스가 가볍게 들어있는 프리잔떼(Frizzante) 스타일이 되죠. 색은 옅으며 맛은 약간 달거나 드라이합니다. 참고로 람부르스코 살라미노라는 이름은 포도송이 모양이 살라미 소시지하고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입니다.
④ 레지아노(Reggiano) : 가장 많은 마을이 속한 람부르스코 생산지이며 수출용 람부르스코 와인의 대부분을 여기에서 만듭니다. 마에스트리, 마라니, 몬스테리코, 살라미노의 4개 클론 포도를 모두 쓸 수 있고, 안체로타(Ancellotta) 품종도 최고 15%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 람부르스코 레지아노의 람부르스코 와인 중 단맛이 나는 것은 전형적인 프리잔테 스타일로 무게감도 가볍지만, 달지 않고 드라이한 것은 무게감이 있으면서 색상도 더 어둡습니다.
⑤ 콜리 볼로네시(Colli Bolognesi) : 까베르네, 메를로, 소비뇽 블랑으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합니다.
⑥ 보스코 엘리체오(Bosco Eliceo)
⑦ 까니나 디 로마냐(Cagnina di Romagna)
⑧ 콜리 볼로네시 클라시코 피뇰레토(Colli Bolognesi Classico Pignoletto)
⑨ 콜리 디 파엔짜(Colli di Faenza)
⑩ 콜리 디 이몰라(Colli di Imola)
⑪ 콜리 디 파르마(Colli di Parma)
⑫ 콜리 디 리미니(Colli di Rimini)
⑬ 콜리 디 스칸디아노 에 디 카노싸(Colli di Scandiano e di Canossa)
⑭ 콜리 피아첸티니(Colli Piacentini)
⑮ 콜리 로마냐 첸트랄레(Colli Romagna Centrale)
⑯ 구뚜르니오(Gutturnio)
⑰ 모데나(Modena)
⑱ 오르투르고(Ortrugo)
⑲ 파가데비트 디 로마냐(Pagadebit di Romagna)
⑳ 레노(Reno)
㉑ 로마냐 알바나 스푸만테(Romagna Albana Spumante)
㉒ 산지오베제 디 로마냐(Sangiovese di Romagna)
㉓ 트레비아노 디 로마냐(Trebbiano di Romagna)
3) IGT : 9개
① 비앙코 디 까스텔프랑코 에밀리아(Bianco di Castelfranco Emilia)
② 에밀리아 오르 델레미아(Emilia or dell'Emilia)
③ 포르리(Forlì)
④ 포르타나 델 타로(Fortana del Taro)
⑤ 라벤나(Ravenna)
⑥ 루비꼬네(Rubicone)
⑦ 비앙코 델 실라로(Sillaro or Bianco del Sillaro)
⑧ 떼레 디 벨레이아(Terre di Veleja)
⑨ 발 티도네(Val Tidone)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_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_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3. 김의겸 저, 소믈리에 실무, 서울 : 백산출판사, 2007
4. 메이드 인 이태리 닷컴 에밀리아-로마냐 항목
5. 디 와인 테이스트 닷컴 에밀리아-로마냐 항목
6. 영문 위키피디아 에밀리아-로마냐 항목
7.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