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프랑스] 믈롱 드 부르고뉴 - 해산물 요리의 절친한 친구 (재업)

까브드맹 2023. 12. 11. 20:29

믈롱 드 부르고뉴 포도와 포도잎의 모습

뮈스카데(Muscadet)는 프랑스 루아르 밸리(Val de Loire) 지역의 가장 서쪽에 있는 낭트(Nantes)시 인근에서 주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입니다. 와인 이름이 뮈스카데인 것은 만들 때 사용하는 포도 이름이 뮈스카데라서 그런 것이지만, 이 포도는 믈롱 드 부르고뉴(Melon de Bourgogne)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1. 믈롱 드 부르고뉴의 특성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은 특별히 구분될 만한 개성이 없는 편입니다. 드라이하고 때때로 미네랄 때문에 짠맛이 나기도 하죠. 산도는 높지만 둥글고 부드러워서 활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구조가 견고해서 와인은 힘이 있습니다. 이런 특성이 고급 해산물 요리와 잘 맞아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알던 시골 와인(?)이었던 뮈스카데는 1970년대부터 인기를 끌며 생산 면적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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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믈롱 드 부르고뉴의 역사

믈롱 드 부르고뉴, 혹은 믈롱(Melon)이라고 부르는 포도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부르고뉴(Bourgogne)에서 가져온 품종입니다. 원래 이 지역에서 재배하던 포도도 있었을 텐데, 구태여 이 품종을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낭트에서는 레드 와인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1709년 겨울에 낭트에 매우 심한 한파가 들이닥쳤죠. 한파로 인해 포도나무가 거의 다 얼어 죽었고, 농부들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품종을 들여와야 했습니다. 이때 소개된 품종이 믈롱 드 부르고뉴입니다.

겨울에 몹시 추운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믈롱 드 부르고뉴는 한파와 서리에 굉장히 강했습니다. 추위에 혼쭐이 난 낭트 일대의 와인 생산자들은 이 포도를 심었고, 곧 널리 퍼졌죠. 이후 낭트 지역에서는 믈롱 드 부르고뉴만 사용해서 만드는 가벼운 드라이 화이트 와인인 뮈스카데를 주로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르고뉴에선 이 포도를 볼 수 없습니다. 샤르도네(Chardonnay)와 알리고떼(Aligoté)에게 밀려나 재배 면적이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재배하는 곳이 없어진 거죠.

부르고뉴가 원산지인 믈롱 드 부르고뉴는 원래 어떤 포도였을까요? 자료를 찾아보면 서로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휴 존슨(Hugh Johnson)과 젠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지은 <와인 아틀라스(The World Atlas of Wine)> 6판 번역본의 118쪽을 보면 믈롱 드 부르고뉴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샤르도네의 사촌 격인 품종으로 뮈스까(Muscat)와 관계없는 포도라고만 나옵니다.

 

 

반면에 비티스 인터내셔날 버라이어티 카탈로그(Vitis International Variety Catalogue)의 <믈롱> 항목을 보면 피노(Pinot) 계열의 포도와 구애 블랑(Gouais Blanc)이라고도 부르는 바이서 하이니쉬(Weißer Heunisch)의 교배를 통해 탄생한 품종이라고 나와 있죠. 유전자 검사를 통해 두 포도의 교배종인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3. 북미의 믈롱 드 부르고뉴 재배지

미국의 오리건(Oregon)주에서 소량 생산하며, 여기에선 그냥 멜론(Melon)이라고 부르죠.

페레니얼 빈트너스의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 라벨

더 북쪽인 워싱턴주의 베인브릿지 아일랜드(Bainbridge Island)에 있는 페레니얼 빈트너스(Perennial Vintners)에서도 이 포도를 재배합니다. 시애틀(Seattle)로부터 불과 6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베인브릿지 아일랜드는 프랑스의 낭트처럼 추운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곳으로 두 지역의 날씨는 아주 비슷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도 낭트의 뮈스카데 와인과 스타일이 거의 같을 것으로 생각되죠. 미국산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에는 라벨에 품종명으로 ‘Muscadet’를 쓸 수 없고, 다만 'Melon de Bourgogne', 또는 'Melon'이라고 표시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Ontario)주에 속한 프린스 에드워드 카운티(Prince Edward County)는 부르고뉴와 떼루아가 비슷하고, 이곳의 몇몇 와이너리에선 믈롱 드 부르고뉴를 재배하죠. 만약 북미에서 믈롱 드 부르고뉴가 널리 재배된다면 국내에서도 프랑스산 뮈스카데가 아닌 미국산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을 맛볼 수 있게 될 겁니다.

 

 

4.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의 향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은 레몬 향과 사과와 배 같은 흰색 과일 향, 오렌지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향을 풍깁니다. 블랙커런트 싹 같은 풋풋한 식물성 향과 아카시아 같은 흰 꽃 향도 나오죠.

와인과 이스트 잔해를 함께 숙성하는 쉬르 리의 모습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은 날카로운 산미를 부드럽게 하려고 쉬르 리(Sur Lie)라는 양조법을 씁니다. 알코올 발효 후에 가라앉은 이스트 잔해인 리(Lie, 영어로는 Lee)를 걸러내지 않고 와인과 함께 숙성하는 방법이죠. 와인이 약 6개월가량 리와 접촉하면 산미가 부드러워지고 풍부한 바디와 복합적인 맛을 갖게 됩니다. 또한 구수한 듯 단내 나는 이스트 향이 배게 되죠.

5.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믈롱 드 부르고뉴 와인은 서양풍으로 조리한 해산물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숭어, 바닷가재, 새우 요리와 잘 맞고, “the perfect oyster wine”이라 불릴 만큼 생굴과 멋진 궁합을 이루죠. 생선회나 초밥과 먹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