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크로아티아] 비오니에 - 멸종 일보 전에 부활한 포도 (재업)

까브드맹 2023. 12. 9. 20:59

비오니에 포도와 잎의 모양

비오니에(Viognier)는 꽁드리유(Condrieu) AOC를 비롯한 프랑스 북부 론(Northern Rhone) 일대에서 많이 재배하는 포도입니다. 비엔(Vienne) 시 남쪽 약 11km 지점에 있는 꽁드리유 AOC는 오로지 비오니에 와인만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죠. 꽁드리유 와인은 살구와 복숭아, 말린 과일, 흰 꽃 향이 특징이며 아니스(Anise)와 멜론 풍미가 있는 와인도 있습니다.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비오니에는 한때 프랑스 여러 곳에서 재배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북부 론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포도가 되었죠. 심지어 1965년엔 단 3.24헥타르의 포도밭에서 1,900ℓ의 와인만 생산할 정도로 재배량이 극도로 줄어버렸죠. 이렇게 재배량이 줄어든 것은 비오니에 재배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1. 비오니에의 특성

잎에 퍼진 가루 곰팡이의 모습

비오니에는 가루 곰팡이(powdery mildew)에 매우 약합니다. 수확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동이 크죠. 게다가 포도가 딱 알맞게 익었을 때 수확해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너무 일찍 포도를 따면 맛과 향이 부족하고, 너무 늦게 따면 기름진 맛이 강하면서 향기도 부족한 와인이 되고 말죠. 그래서 경험이 부족한 와이너리에선 종종 비오니에의 참모습을 살리지 못한 와인이 생산되곤 합니다.

비오니에 와인은 포도나무 나이에 따라 품질이 매우 달라집니다. 심은 지 최소 15~20년 후에야 포도의 참모습이 나타나죠. 론 지역의 비오니에는 수령(樹齡)이 최소 70년 이상이지만, 최근 재배하기 시작한 다른 곳의 비오니에는 아직 수령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론의 비오니에 와인과 랑그독(Languedoc)을 비롯한 신세계의 비오니에 와인은 맛과 향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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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오니에의 역사

비오니에의 원산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고대 달마티아(Dalmatia) 지역이 원산지이고, 로마인이 론 계곡에 가져온 것으로 추측하죠. 달마티아는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자다르(Zadarska) 주와 시베니크크닌(Šibensko-kninska) 주, 스플리트달마티아(Splitsko-dalmatinska) 주,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Dubrovačko-neretvanska) 주를 합친 지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서기 281년 로마 제국의 프로부스(Probus) 황제가 론 지역에 비오니에를 심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비오니에와 시라 나무를 실은 화물선이 론강을 따라 보졸레(Beaujolais) 지방으로 항해하다가 꽁드리유에 이르렀을 때 도적 떼가 화물을 탈취했고, 그 후 꽁드리유 일대에 비오니에가 널리 퍼졌다고도 합니다.

비오니에란 이름의 유래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원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제국 시대에 비엔 시엔 로마군의 전진기지가 있었고, 로마군이 비엔 시의 이름을 따서 이 포도를 부르면서 비오니에란 이름이 생겼다는 겁니다. 또 다른 설은 ‘지옥의 계곡 길’이란 뜻인 Via Gehennae(비아 제엔나이)란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이름이 붙은 것은 비오니에 재배가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U.C 데이비스 대학은 2004년 DNA 조사를 통해서 비오니에가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프레이사(Freisa) 포도와 유전학적으로 매우 가깝고, 네비올로(Nebbiolo) 포도와 사촌 관계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3. 비오니에 재배지

한때 멸종 직전까지 몰렸지만, 와인의 인기와 가격이 올라가면서 재배지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북부 론의 비오니에 재배 면적은 3.24헥타르에서 약 300헥타르로 많이 늘어났고, 다른 와인 생산국에서도 비오니에 재배지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비오니에 포도의 재배지 지도

1) 프랑스

북부 론의 꽁드리유 AOC와 샤토 그리예(Château Grillet) AOC에선 오로지 비오니에로 만든 화이트 와인만 지역 명칭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론의 다른 마을에선 비오니에에 루산느(Roussanne)와 마르산느(Marsanne)를 섞어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죠. 북부 론의 꼬뜨 로띠(Côte-Rôtie) AOC에선 법적으로 시라(Syrah)에 비오니에를 20%까지 넣어서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Languedoc)에서도 비오니에 재배가 활발합니다. 많은 프랑스산 비오니에 와인이 이곳에서 생산되죠. 다만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품종이라서 비오니에 와인은 과거의 뱅 드 빼이(Vin de Pays) 등급인 IGP(Indication Géographique Protégée) 등급에 속합니다.

 

 

2) 신세계

북미에선 1980년대 이후에 재배가 급증했습니다. 주요 재배지는 캘리포니아의 센트럴 코스트이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오니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북미의 비오니에 와인은 다른 생산국의 와인보다 눈에 띄게 알코올 도수가 높습니다.

남미에선 역시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재배가 늘고 있습니다. 호주에선 얄룸바(Yalumba) 와이너리가 비오니에를 많이 재배합니다. 이 와이너리에선 꼬뜨 로띠처럼 쉬라즈와 비오니에를 섞은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4. 비오니에 와인의 향

비오니에 와인의 대표 향 중 하나인 살구

꽃과 정유(terpenes, 精油) 향이 나오고 살구, 복숭아, 서양배 같은 과일 향을 풍깁니다. 오렌지 꽃봉오리나 인동 덩굴(Honeysuckle), 바닐라, 헤이즐넛 향이 올라오는 것도 있습니다.

다른 인기 있는 청포도는 산도가 높지만, 비오니에는 산도가 낮은 편입니다. 게다가 와인을 만들 때 산도를 낮추고 부드러운 맛과 복합적인 향을 내기 위해 젖산 발효와 오크 숙성을 하죠. 그래서 비오니에 와인은 기름진(Oily)한 맛이 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세계의 비오니에 와인 중에선 신선한 맛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비오니에 와인은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려고 이스트 잔해인 리(lees)를 정기적으로 휘저어 주는 바토나쥬(batonnage)라는 양조법을 사용하죠.

상쾌한 맛보다 깊은 향을 즐기는 비오니에 와인은 오크 숙성한 샤르도네 와인처럼 12~14℃ 정도의 온도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5. 비오니에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풍성한 꽃과 과일 향이 나오는 비오니에 와인은 향신료를 많이 쓴 요리와 잘 맞습니다. 부에야베스(Bouillabaisse)처럼 향신료를 넣은 생선 요리, 달(Dahl) 같은 인도식 콩 요리, 돼지고기, 닭고기, 스팀에 찐 흰살생선 요리, 파히타(Fajitas) 같은 멕시코 요리 등이 잘 어울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