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와인 생산지인 보졸레(Beaujolais)는 행정구역으로는 론(Rhone) 지역에 속하지만, 와인과 관련해선 부르고뉴(Bourgogne)와 더 밀접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가메(Gamay) 포도로 만든 햇와인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졸레 누보 와인이죠. 가메로 만드는 보졸레 와인은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1. 보졸레
가장 흔하게 마실 수 있는 보졸레 와인으로 법정 최소 알코올 도수는 10%입니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달콤한 레드 체리와 딸기향이 나면서 가벼운 와인이라 마시기 편합니다.
2. 보졸레 쉬뻬리에르(Beaujolais Superieur)
알코올 도수가 최저 10.5%로 일반 보졸레보다 약간 높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조금 높을 뿐 맛과 향은 보졸레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3. 보졸레 빌라쥬(Beaujolais Villages)
보졸레의 북쪽 지역에 있는 마을들에서 나오는 와인으로 알코올 도수가 최소 10.5%이어야 합니다. 일반 보졸레 와인보다 더 고급입니다.
위의 3종 와인 중에서 보졸레와 보졸레 슈페리어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나 보졸레 프리뫼르(Beaujolais Primeur)로 만들어서 판매합니다. 보졸레 빌라쥬는 누보나 프리뫼르 형태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냥 보졸레 빌라쥬로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합니다. 원래 보졸레 누보는 1960년대까지 보졸레 프리뫼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보졸레 지방에서만 마셨던 햇와인입니다. 하지만 보졸레 누보가 보졸레 외부로 널리 유통되자 INAO(Institut National des Appellations d'Origine)가 법률적으로 규제해서 보졸레 누보와 보졸레 프리뫼르로 나뉘었죠.
보졸레 누보와 보졸레 프리뫼르는 '으깨기-발효-압착-숙성'이라는 일반적인 레드 와인 양조법을 사용하지 않고 탄산침용발효법(carbonic maceration)으로 만듭니다. 탄산침용발효법은 밀폐된 발효조 안에 으깨지 않은 포도를 넣고 탄산가스를 주입하는 방법입니다. 발효조 안에서 탄산가스가 포도 껍질 안으로 스며들면서 세포 단위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방법이죠. 이렇게 만들면 아름다운 색이 나면서 포도 본래의 신선한 맛과 향을 가진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와인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탄닌과 사과산이 거의 추출되지 않아서 와인의 장기보관이 어렵죠. 그래서 보졸레 누보와 보졸레 프리뫼르는 다른 와인과 달리 유통기간이 짧습니다.
법으로 보졸레 누보(Nouveau)는 출시 후에 다음 해 수확 직전인 8월 31일까지만 유통할 수 있으며 그 후엔 출하할 수 없습니다. 프리뫼르(Primeur)는 출시 후 2개월 이내, 즉 이듬해 1월 중순까지 중간 도매상에게 판매할 수 있으며 그 이후엔 출하할 수 없죠. 국내에서는 보졸레 누보와 프리뫼르를 혼동해서 보졸레 누보를 2개월 안에 소비해야 하는 와인으로 잘못 아는 일도 많습니다. 보졸레 누보는 매년 다양한 브랜드가 수입되지만, 보졸레 프리뫼르는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마 유통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렇겠죠. 보졸레 빌라쥬 누보가 아닌 일반 보졸레 빌라쥬 와인은 만들 때 전통 방식으로 양조해서 사과산과 탄닌이 충분히 추출되므로 1년 이상 장기 보관할 수 있습니다.
4. 크뤼 뒤 보졸레, 보졸레 크뤼(Crus du Beaujolais, Beaujolais Crus)
보졸레 북서쪽의 기복이 심한 화강암 언덕에 있는 10개의 마을(Commune)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보졸레 와인으로 레이블에 마을 이름을 쓸 수 있습니다. 크뤼 와인은 마을마다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어서 비교 시음하면 차이점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북쪽 마을부터 크뤼 와인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쌩 따무르(Saint-Amour) : 부드러운 탄닌을 가진 무게 있는 와인으로 블랙 체리, 산딸기 향과 함께 매콤한 연기 향이 느껴집니다.
• 줄리에나(Julienas) : 높은 알코올을 가진 무게 있는 와인으로 상큼한 과일 향과 활력 넘치는 감칠맛이 있습니다.
• 쉐나(Chenas) : 강한 탄닌이 응축된 진한 색의 와인으로 검은 과일과 바닐라, 육계피 향이 어우러집니다.
• 물랭 아 방(Moulin-A-Vent) : 진한 루비색을 띤 무게 있는 와인으로 검은 과일과 바닐라, 육계피 향이 어우러집니다.
• 쉬루블(Chirouble) : 가벼운 와인으로 딸기와 블랙 체리 같은 베리류의 과일 향과 육계피 같은 향신료 향이 있습니다.
• 프뢰리(Fleurie) : 블랙 체리와 자두 같은 검은 과일 향이 풍부하며 제비꽃 같은 꽃 향이 함께 나오는 우아한 풍미를 지녔습니다.
• 모르공(Morgon) : 농익은 블랙 체리 향과 초콜릿 향, 연기 냄새가 두드러지는 짙은 루비색의 와인으로 탄닌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 레니에(Regnie) : 무게가 가볍고 높은 산도가 있으며 산딸기와 꽃의 진한 향이 특징입니다.
• 꼬뜨 드 브루이(Cote de Brouilly) : 블랙 체리와 자두 같은 검은 과일 향이 강하며 여운이 인상적입니다.
• 브루이(Brouilly) : 블랙 체리 같은 검은 과일 향과 매콤한 향신료 향이 나지만 전체적으로 단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