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호랑이를 낳고 개가 개를 낳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근본에 따라 합당한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속담이죠.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부모가 훌륭하면 자식이 뛰어나기 마련입니다.
와인업계에는 대대로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많지만,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본(Côte de Beaune)의 와인 생산자였던 뱅상 지라르뎅(Vincent Girardin)과 그의 아들 삐에르 지라르뎅(Pierre Girardin)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1. 뱅상 지라르뎅
1980년에 불과 19세의 나이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던 뱅상 지라르뎅은 물려받은 포도밭 2헥타르로 시작했으나 뛰어난 양조 기술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거둔 와인 생산자입니다.
"뱅상은 특출난 재능의 소유자이고 부르고뉴 최고 생산자 중 하나이다"(로버트 파커)
"그의 와인은 떫지 않고 완벽한 구조감에 깊고 강렬하며, 탄닌과 잘 익은 과일의 균형감을 보여준다.”(버그하운드)
굴지의 와인 평론가들이 이렇게 그의 와인을 격찬했죠. 뱅상의 화이트 와인인 바따르-몽라쉐(Bâtard-Montrachet) 1997과 꼭똥-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2000은 와인 스펙테이터 96점을 받았고, 레드 와인인 샹베르땅 클로 드 베즈 비에이 비뉴 (Chambertin-Clos de Bèze Vieilles Vignes) 2002은 와인 스펙테이터 98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두며 뱅상 지라르뎅은 2헥타르로 출발한 그의 도멘(Domaine)을 부르고뉴 전역의 포도밭 22헥타르에서 그랑 크뤼 와인 10종과 프르미에 크뤼 와인 43종을 생산하는 메종(Maison)으로 성장시켰습니다.
2. 삐에르 지라르뎅
안타깝게도 뱅상 지라르뎅은 2011년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은퇴하게 됩니다. 메종 뱅상 지라르뎅은 2012년에 오랜 동료였던 쟝-삐에르 니에(Jean-Pierre Nié)에게 넘겼죠. 그러나 뫼르소(Meursault)에 있는 4.5 헥타르의 가장 좋은 포도밭은 팔지 않았고, 2017년에 아들인 삐에르 지라르뎅이 성년이 되자 물려줍니다.
아버지로부터 뫼르소의 포도밭을 물려받은 삐에르는 곧 놀랄만한 성과를 거둡니다. 2017과 2018의 2개 빈티지를 생산했을 뿐인데 유명한 네고시앙인 부샤 페레 에 피스(Bouchard Pere & Fils)와 샤사뉴-몽라셰(Chassagne-Montrachet)의 뛰어난 와인 생산자인 도멘 마크 콜랭(Domaine Marc Colin)의 와인보다 더 비싸게 팔릴 만큼 와인의 맛과 향이 뛰어났던 거죠.
심지어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와인 생산자인 도멘 데 꽁트 라퐁(Domaine des Comtes Lafon)을 추격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결코 우연이나 특별한 재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2016년에 와인 생산자가 되기로 결심한 삐에르는 아버지인 뱅상으로부터 본격적인 와인 양조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는 포도밭과 양조장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방법과 방향에 대해 듣고, 관찰하고, 질문했죠. 이 기간에 연구와 성찰을 거듭하며 부자는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축적된 노력이 그의 재능과 뛰어난 떼루아와 결합하면서 위대한 와인들을 탄생시킨 것이죠.
3. PVG의 와인 철학과 양조 방식
만들고 싶은 와인 스타일이 확고한 삐에르는 아버지의 와인과 다른 자기만의 와인을 추구합니다. 끌리마(climat, 포도밭)의 특성에 호기심을 가진 삐에르는 리우딧(lieu-dits, 특정 밭)을 평가하기로 결심했죠. 삐에르는 떼루아의 뉘앙스가 부르고뉴 와인의 뿌리이며, 그러한 독창성은 부르고뉴 땅속의 석회암이 만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의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는 모두 유기농(Organic)으로 재배하며, 자연 효모(Indigenous yeast)만 사용해서 발효됩니다.
레드 와인은 지역과 포도밭의 떼루아를 강조하면서 비단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추구합니다. 끌리마에 따라 포도송이의 줄기를 20~100%까지 다양하게 사용하며, 6일간 냉장 침용(cold maceration)한 후 알코올 발효하죠. 껍질과 씨에서 탄닌과 색소를 추출할 때 강한 힘을 가하지 않고, 주스를 뽑을 때도 섬세하게 힘을 주면서 부드럽고 길게 짜냅니다.
발효 후 오크 숙성 기간은 약 14~16개월이며 새 오크 비율은 매년 다릅니다. 숙성이 끝나면 정제와 여과를 하지 않고 바로 병에 넣은 다음 곰팡내의 주요인인 TCA(2,4,6-trichloroanisole) 검사를 끝낸 코르크로 막고 왁스로 밀봉합니다.
화이트 와인은 새 오크통의 강한 영향을 줄이려고 프랑수아 프레레(Francois Freres)로부터 특별 주문한 456ℓ 오크통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228ℓ들이 부르고뉴 오크통과 비교하면 2배 크기이죠. 오크통에서 약 1년간 숙성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6개월간 추가 숙성한 후 병에 담습니다. 이렇게 만든 화이트 와인은 공통으로 맑고 명확한 스타일을 갖게 되죠.
뛰어난 양조 실력과 아버지의 영향력 덕분에 삐에르는 꼬뜨 드 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의 포도 재배자들과 계약을 맺고 품질 높은 포도를 공급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포도들을 사용해서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꼭똥(Corton), 그리오 샹베르땅(Griottes Chambertin), 마찌 샹베르땅(Mazis Chambertin), 꼭똥 샤를마뉴(Corton Charlemagne), 몽라셰(Montrachet) 같은 그랑 크뤼 와인부터 부르고뉴 레지오날(Bourgogne Régionales,)과 빌라쥬(Villages)까지 다양한 와인을 만들고 있죠. 덕분에 끌리마의 떼루아를 드러내겠다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