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특유의 신맛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없는 이탈리아 와인. 그나마 레드 와인은 찾는 분이 있지만,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은 참 암울합니다.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분도 샤르도네나 쇼비뇽 블랑 와인을 찾지 고유 품종을 사용하는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에는 선뜻 손을 대지 않죠. 그래서 소아베(Soave)나 오르비에토(Orvieto) 같은 훌륭한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이 마트나 와인 샵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모습은 그리 보기 드문 것이 아닙니다.
그나마 소아베와 오르비에토는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들이 찾기도 하지만,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혹은 피노 그리(Pinot Gris)라 부르는 포도로 만든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은 찾는 분이 더 적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피노 그리지오 와인은 바롤로(Barolo), 끼안티(Chianti)와 함께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3대 이탈리아 와인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와인이죠.
2. 피노 그리지오
피노 그리지오는 프랑스 알자스(Alsace)와 사부아(Savoie), 루아르(Loire)에서 재배하며 또케 달자스(Tokay d'Alsac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약간 붉은빛이 도는 회색 포도로 알자스에서는 리슬링(Riesling),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뮈스카(Muscat)와 함께 그랑 크뤼 와인을 만들 수 있는 4대 품종 중의 하나이죠. 피노 그리지오는 알자스의 포도 재배량의 5%를 차지합니다. 독일에선 1711년에 루랜드(Ruland)라는 상인이 프랑스에서 피노 그리지오 묘목을 가져오면서 피노 그리지오를 루랜더(Rulander)라 부릅니다. 바덴(Baden)을 비롯한 독일의 남부 지역에서 고급 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죠.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피노 그리지오를 많이 재배합니다. 진한 향과 색을 얻으려고 때때로 껍질을 함께 발효하므로 와인의 향이 힘차고 진하죠. 최근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피노 그리지오 와인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와인에 관한 일반인의 고정 관념인 "와인은 레드여야 하고 프랑스와 칠레가 짱이며 기왕이면 달아야 한다."라는 생각과 홍보 부족으로 피노 그리지오 와인이 별로 인기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채식과 해산물을 많이 다루는 한식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며,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은 더더욱 잘 맞는데도 말입니다. 아마 유럽같이 와인을 반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식후에 따로 마시는 술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음주 습관이 샤르도네나 쇼비뇽 블랑처럼 개성이 강하지 못한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을 멀리하는 이유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피노 그리지오 와인이 국내에서는 대접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와인 시장이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 부침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언젠가는 피노 그리지오 와인이 제 대접을 받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디 레오나르도 피노 그리지오 2008은 이탈리아의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Friuli-Venezia Giulia) 주에서 재배한 피노 그리지오 100%로 만드는 IGT 등급 와인입니다.
색은 맑고 약간 갈색 기운이 도는 담황색입니다. 향은 잔 안에서 넉넉히 차오릅니다. 복숭아, 멜론, 잘 익은 노란 사과 향, 흰 꽃 같은 향을 느낄 수 있죠.
질감은 부드럽고 진합니다. 다른 이탈리아 토착 품종 화이트 와인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더 있습니다. 맛은 드라이하며 산도는 중간 정도입니다. 사과와 시트러스, 레몬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며 뒷맛에 씁쓸함이 남습니다. 여운의 길이는 중간 정도이며 특별한 인상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맛과 향을 지녔지만, 완성도는 조금 떨어집니다.
크림소스를 얹은 농어와 연어 스테이크, 생선찜, 생선구이, 새우와 게찜, 랍스터 요리 등과 같은 해산물 요리와 잘 맞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D+로 맛과 향이 부족한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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