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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와인 생산지

[이탈리아] 토스카나 > 끼안티(Chi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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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e/Fiasco_di_chianti_monteriggioni.jpg)

1. 개요

우리나라의 도자기 술병과 모양이 비슷한 특이한 와인 병이 있습니다. 피아스코(Fiasco)라는 둥근 와인 병으로 땅바닥에 놓았을 때 쓰러지지 않고 충격으로부터 보호받도록 아랫부분을 밀짚으로 둘러싸고 있죠. 이 피아스코 병에 담긴 와인으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 끼안티(Chianti)입니다.

끼안티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입니다.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다 보면 꼭 한 번은 경험하게 되고 종류도 가격도 다양해서 고르는 재미가 있는 와인이죠. 검붉은 과일 풍미와 함께 신맛이 강해서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립니다. 하지만 신선하고 산뜻하면서 체리와 자두 같은 과일 향이 풍부하고 시간이 지나면 흙 내음의 풍미가 나오는 끼안티 와인은 높은 산도가 음식의 소화를 도와주므로 기름진 음식에 잘 어울립니다. 얇은 도우에 주로 치즈로 토핑한 이탈리아식 피자와 다양한 파스타를 먹을 때 이것보다 좋은 와인을 찾기 힘들 만큼 궁합이 잘 맞죠.

2. 역사

끼안티 와인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13세기에 이탈리아 중부의 프라토(Prato)시에서 활동했던 상인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Francesco di Marco Datini)는 "플로렌스(Florence) 주변의 끼안티 산맥(Chianti Mountains)에서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가 번창하고 있다"라며 끼안티 와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끼안티 와인은 요즘의 레드 와인과 다르게 가벼운 화이트 와인이라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의 조각상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e/Monumento_a_Francesco_di_Marco_Datini_6.jpg/768px-Monumento_a_Francesco_di_Marco_Datini_6.jpg)

그 후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a) 사이에 있는 라다(Radda), 가이올레(Gaiole), 까스텔리나(Castellina) 지역의 상인들은 <레가 델 끼안티(Lega del Chianti)>라는 조합을 결성해서 끼안티 와인을 생산하고 판매했습니다.

(코시모 디 메디치 3세의 초상화.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7/Volterrano%2C_Cosimo_III_de%27_Medici_in_grand_ducal_robes_%28Warsaw_Royal_Castle%29.jpg)

1716년에 토스카나 대공(Grand Duke of Tuscany)인 코시모 드 메디치 3세(Cosimo III de'Medici)가 레가 델 끼안티를 구성하는 세 마을에 그레베(Greve) 마을과 그 북쪽의 언덕을 추가해서 이곳을 포도밭을 끼안티의 경계로 정하고, 이 마을의 와인 생산자들을 공식적인 끼안티 와인 생산자로 인정한다는 칙령을 발포했습니다. 훗날 1930년대에 이탈리아 정부가 영역을 확대할 때까지 칙령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지금도 위의 네 마을은 끼안티 끌라시코(Chianti Classico)라고 부르는 끼안티 핵심지역 일부를 이룹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화이트 와인이었던 끼안티 와인은 어느 사이엔가 레드 와인으로 바뀌었고, 18세기에 이르자 끼안티 와인은 당연히 레드 와인인 것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그런데 당시의 끼안티 와인이 오늘날처럼 레드 와인이었어도 어떤 포도를 사용해야 하는지, 또 어떤 비율로 혼합해야 하는지 명확한 규칙도 규정도 없었기에 지금도 맛과 향에 관해선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까나이올로(Canaiolo) 포도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니 산지오베제(Sangiovese)를 많이 사용하는 요즘의 끼안티 와인과 맛과 향이 다를 거라고 짐작할 뿐이죠 

1872년에 끼안티 와인 역사에 신기원이 될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한때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던 바론 베티노 리카솔리(Baron Bettino Ricasoli) 경이 오랫동안 토스카나 와인을 연구한 끝에 두 가지 스타일의 끼안티 와인을 개발한 것이죠. 끼안티 끌라시코의 브롤리오 성(Castello di Brolio)과 포도원을 상속받은 베티노 리카솔리(Bettino Ricasoli)는 포도원을 발전시키기로 마음먹고 포도 품종과 재배법을 공부하려고 독일과 프랑스를 여행했습니다. 그는 토스카나로 돌아오면서 몇몇 품종을 들여왔고 그의 포도밭에서 시험 재배했죠. 하지만 다양한 실험 끝에 최고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로 토스카나의 지역 품종인 산지오베제와 까나이올로(Canaiolo), 말바지아(Malvasia)를 선정합니다.

(콧수염이 멋진 이분이 베티노 리카솔리, 즉 바론 리카솔리로 현대 끼안티 와인의 아버지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8/Ritratto_di_Bettino_Ricasoli.jpg)

이 세 품종을 바탕으로 리카솔리는 1872년에 까나이올로를 많이 사용했던 기존의 끼안티와 다르게 산지오베제(Sangiovese) 포도를 주로 사용하는 새로운 끼안티 와인을 개발합니다. 그의 레시피는 산지오베제 70%에 까나이올로를 15% 섞고 당시에 흔한 청포도였던 말바지아(Malvasia)를 10% 넣은 다음 나머지 5%는 지역의 토착 적포도를 넣도록 한 것이었죠. 이러한 공식은 큰 호응을 얻었고,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바론 리카솔리경의 방법을 따라 합니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1967년에 리카솔리의 혼합 공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죠.


3. 와인 생산과 규정

1967년에 이탈리아 정부는 와인의 색을 맑게 하려고 말바지아를 섞는 리카솔리의 혼합 공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말바지아 말고도 트레비아노를 섞을 수 있게 했고, 혼합 비율도 10%에서 최대 30%로 늘립니다. 그런데 탐욕에 눈이 먼 생산자들이 청포도를 최대 30%까지 섞을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악용합니다. 당시엔 적포도보다 청포도가 수확량이 더 많고 가격이 쌌기 때문에 와인 품질을 고려하지 않고 청포도를 최대한 많이 넣어서 양은 늘리고 가격은 낮추는 방향으로 와인을 만들었죠. 그 결과 끼안티 와인의 명성은 급속도로 추락하면서 시칠리아의 벌크 와인과 함께 "이탈리아 와인은 싸구려 와인"이란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줍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식 있는 생산자들은 규정을 무시하고 와인을 만들던가 규정 내에서 가능한 최고의 품질을 가진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끼안티 와인 생산자들이 청포도의 함량을 줄여가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정부도 잘못된 규정에 대해 반성하고 관련 법규를 계속 개정하면서 생산자들의 노력을 뒷받침합니다. 마침내 이탈리아 정부는 1995년에 100% 산지오베제로 만드는 끼안티 와인의 생산을 허가합니다. 

1996년 이후로 끼안티 와인에 사용할 수 있는 포도와 혼합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산지오베제 75~100% + 까나이올로 최대 10% + 까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시라처럼 인정된 적포도 최대 20% + 트레비아노 혹은 말바지아

다만 끼안티 끌라시코는 2006년 이후 말바지아와 트레비아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끼안티 와인의 숙성 기간은 끼안티의 세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끼안티 끌라시코는 최소 10개월 이상 숙성해야 하고, 이때 7개월은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하죠. 레이블에 리세르바(Riserva)라고 적힌 끼안티는 최소 24개월 동안 숙성해야 합니다. 리세르바 표시가 있는 와인은 좀 더 고급스러운 맛과 향이 나죠. 

끼안티 와인의 최고봉인 끼안티 끌라시코 그란 셀레지오네(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등급은 최소 30개월 이상 숙성해야 하며 독점 포도원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끼안티 수페리오레(Chianti Superiore)란 표시는 단위당 수확량을 낮추고 좀 더 무르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최소 알코올 도수가 12% 이상인 만든 와인에 붙일 수 있습니다. 다만 끌라시코 지역의 와인 레이블에는 수페리오레라는 명칭을 표시할 수 없습니다. 최소 알코올 도수가 똑같이 12%이기 때문이죠. 일반 끼안티 와인의 최소 알코올 도수는 11.5%입니다.

14세기에 피렌체의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 양조법을 이것저것 실험하면서 고베르노(governo)라는 양조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고베르노는 시렁에 얹어서 11~12월까지 말린 포도에서 얻은 포도 주스를 먼저 발효한 와인에 넣어서 2차 발효하는 방법이죠. 이렇게 하면 와인이 부드러워지고 날카로운 산미가 줄어들며, 알코올 도수가 약간 올라가면서 발효가 안정적으로 진행됩니다. 와인의 바디가 좀 더 묵직해지는 효과도 있죠. 고베르노는 온도 조절이 가능한 발효조가 발명되기 전까지 끼안티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984년에 끼안티 전 지역이 이탈리아 와인의 최고 등급인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모든 끼안티 와인이 DOCG에 걸맞는 품질을 갖고 있진 못합니다. 그래서 끼안티 끌라시코 같은 핵심 지역의 와인은 몰라도 일반적인 끼안티 와인은 생산자에 따라 맛과 향의 차이가 크고 가격 차이도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4. 생산 지역

(끼안티 지역의 지도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d/Sottozone_chianti.jpg)

앞서 말했듯 끼안티라 부르는 지역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1716년에 공표된 토스카나 대공(Grand Duke of Tuscany)의 칙령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때 가이올레(Gaiole), 까스텔리나(Castellina), 라다(Radda) 세 마을 근처의 와인 생산지를 이른바 레가 델 끼안티(Lega del Chianti)라고 불렀고, 나중엔 프로빈치아 델 끼안티(Provincia del Chianti)라고 명명합니다. 1932년에 끼안티 지역은 완전히 재정비되어서 아래의 7개 하위 지역으로 세분됩니다.

① 끌라시코(Classico)

② 루피나(Rufina)

③ 콜리 세네시(Colli Senesi)

④ 콜리 아레티니(Colli Aretini)

⑤ 콜리 피오렌티니(Colli Fiorentini)

⑥ 콜리네 피자네(Colline Pisane) 

⑦ 몬탈바노(Montalbano)

이중 콜리 피오렌티니 지역은 1996년에 몬테스페르토리(Montespertoli)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끼안티 끌라시코는 토스카나 대공이 칙령에서 언급한 원래의 끼안티 지역과 함께 주변 일부 지역이 1932년에 추가되었습니다. 가장 큰 하위 지역으로 생산한 와인의 레이블에는 끼안티 끌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표시를 할 수 있죠. 끼안티 끌라시코 와인 중에는 병목에 검은 수탉이 그려진 딱지(seal)가 붙은 것이 있습니다. 이 딱지는 와인 생산자들의 협회인 끼안티 끌라시코 협회(Chianti Classico Consortium)에 소속된 와인 생산자가 만든 와인에만 부착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italyxp.com/sites/default/files/styles/colorbox_gallery_xp/public/mediaitalyxp/florence-wine-and-olive-oil-tasting-class-01.jpg?width=820&height=620&iframe=true)

나머지 6개의 지역 중에서 끼안티 루피나(Chianti Ruffina)와 끼안티 콜리 세네시(Chianti Colli Senesi)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와인을 생산하지만, 끼안티 콜리 피오렌티니(Chianti Colli Fiorentini), 끼안티 콜리네 피사네(Chianti Colli Pisane), 끼안티 콜리 아레티니(Chianti Colli Aretini), 끼안티 몬탈바노(Chianti Montalbano)의 와인은 질이 조금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수입된 끼안티 와인은 대부분 루피나와 콜리 세네시에서 만든 것이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5. 피아스코

전통적으로 끼안티 와인은 플라스크를 뜻하는 둥근 형태의 피아스코(Fiasco) 병에 담겨서 판매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기에 이미 피아스코 병을 사용했고 보카치오(Boccaccio)도 레드 와인을 담기 위한 용기로 피아스코를 언급했죠. 당시 피아스코 병의 크기는 오늘날보다 훨씬 커서 5.7ℓ와 2.28ℓ, 1.4ℓ짜리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피아스코를 언제부터 밀짚으로 감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4세기에 토마소 다 모데나(Tomaso da Modena)가 그린 그림에서 줄로 감싼 피아스코 병을 볼 수 있고, 유황을 넣은 물에 데친 다음 햇볕에 말린 풀로 감싼 15세기의 피아스코 파편이 남아있다고 하니 아마 14~15세기에 이미 줄이나 마른 풀로 피아스코를 감쌌던 것 같습니다.

(1625-1630년에 그려진 피아스코 그림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2.bp.blogspot.com/_Rzfn6AF_zdQ/TLVT6CC2LuI/AAAAAAAAAH8/BFyQxNlIyvI/s1600/la-fiasca-fiorita-capolavoro-della-mostra-di-forli.jpg)

20세기 초반에 이탈리아에서는 입으로 불어서 피아스코를 만드는 1,000명의 장인과 밀짚 바구니를 만드는 30,000명의 직인이 일했습니다. 그러나 보르도에서 사용하는 어깨 있는 와인 병이 유행하면서 와인 생산자들은 피아스코의 사용량을 점차 줄여나갔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전통 용기를 보존하려고 1965년에 와인법으로 와인 생산자가 DOC 등급 와인을 위한 피아스코를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소수의 와인 생산자가 피아스코에 담긴 끼안티 와인을 판매하죠.

독특한 모양의 피아스코병 덕분에 잘 알려진 끼안티 와인이지만, 정작 요즘은 피아스코 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끼안티 와인은 매우 적습니다. 보관이나 운송 문제 때문에 대부분 일반적인 형태의 와인병에 담아서 판매하죠. 하지만 병 모양을 떠나서 끼안티 와인은 자체적인 명성만으로도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와인입니다.

6. 맛과 향

끼안티는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소비자에게 가장 무난한 와인으로 사랑받습니다. 미디엄 바디(medium-body)의 무게감을 지녔지만, 탄닌이 적당히 있고 힘이 넘치며 순한 맛을 보여주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석류의 붉은빛(garnet red)과 미디엄 바디의 질감, 조화로운 산도(balanced acidity), 적절한 탄닌(moderately tannin)을 가졌습니다. 높은 산도는 음식의 소화를 도와줘서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리며 이탈리아 전통 음식과 잘 맞아 피자나 파스타를 먹을 때 이것보다 좋은 와인을 찾기 힘들죠. 신선하고 산뜻한 맛에 체리와 자두 같은 과일 향이 풍부한 끼안티 와인은 저렴한 제품부터 최상급의 리제르바(Riservas)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모두 편안하고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까탈스럽지 않은 와인' 이것이 끼안티 와인의 특성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현재 180종 이상의 끼안티 와인이 수입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는 이름난 생산자의 것도 있지만, 작은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서 소량만 수입된 것도 있죠. 값도 천차만별이어서 1만 원대의 저렴한 것부터 30만 원이 넘는 비싼 것까지 있으며 품질도 가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합니다. 대부분 가격에 따라 품질이 올라가지만, 때때로 저렴하면서 맛도 꽤 좋은 끼안티 와인도 있으니 잘 골라보시면 의외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_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_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3. 와인21 닷컴

4. 영문 위키피디아 끼안티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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