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로즈-에르미따지의 지리와 역사
크로즈-에르미따지는 북부 론(Northern Rhone)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지입니다. 북부 론의 포도밭 면적이 총 2,400헥타르인데 이중에 크로즈-에르미따지의 포도밭이 1,238헥타르이어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죠.
1937년에 AOC로 지정되었고, 1952년에 영역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1846년에 일부 시음 위원들이 에르미따지와 크로즈-에르미따지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크로즈-에르미따지 와인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겁니다.
지도에서 보이듯 크로즈-에르미따지는 론 강을 사이에 두고 쌩-조제프(Saint-Joseph) 맞은 편에 있는 에르미따지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에르미따지 포도밭이 높은 경사면에 있는 반면에 크로즈-에르미따지 포도밭은 비교적 낮은 평지에 자리잡은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면적일 때 에르미따지의 포도밭은 크로즈-에르미따지의 포도밭보다 햇볕을 더 많이 받고 이것이 두 지역의 와인에 차이를 낳습니다. 우리나라의 여름과 겨울이 태양의 고도차에 따라 기온이 달라지듯 두 지역의 포도밭 경사도는 포도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치죠. 물론 포도밭의 경사 외에도 와인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은 에르미짜지와 크로제-에르미따지의 관계를 부르고뉴의 르 샹베르땅(Le Chambertin)과 쥬브레 샹베르땅(Gevrey-Chambertin)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에르미따지와 견줄만한 품질을 가진 와인은 폴 자불레(Paul Jaboulet)의 도멘 드 탈라베르(Domaine de Thalabert)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크로즈-에르미따지는 에르미따지보다 품질이 떨어지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쌉니다. 그러나 에르미따지와 비교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지 절대적인 품질이 다른 지역의 와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죠. 게다가 최근에는 에르미따지 와인 정도는 아니지만 알랭 그레이요(Alain Graillot), 도멘 포숑(Domaine Pochon), 도멘 뒤 콜롱비에(Domaine du Colombier)처럼 10년 이상 장기 숙성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은 크로즈-에르미따지 와인의 앞날을 매우 기대하죠.
2. 크로즈-에르미따지의 포도 품종
북부 론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적포도는 시라(Syrah), 청포도는 마르산(Marsanne)과 루산(Roussanne)을 재배합니다.
레드 와인을 만들 땐 시라를 85% 이상 사용해야 하며, 나머지 15%는 마르산이나 루산을 넣을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마르산과 루산을 비율을 자유롭게 해서 만들 수 있죠.
3. 크로즈-에르미따지 와인
크로즈-에르미따지의 레드 와인은 북부 론 와인 중에선 비교적 가벼우며 숙성을 많이 안해도 마시기 좋습니다. 물론 일부 고급 와인은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으며 숙성하면서 점점 맛과 향이 좋아지죠.
레드 와인의 생산량이 많지만, 크로제-에르미따지에서는 화이트 와인도 생산합니다. 최고급 화이트 와인인 샹트-알루트(Chante-Aloutte)는 황금빛의 와인으로 드라이하고 섬세한 풍미도 가득 찬 와인이며 숙성하면 견과류 향을 풍깁니다. 최소 10년은 숙성해야 하지만, 숙성이 덜 된 상태에서 마셔도 좋습니다.
또 다른 화이트 와인으로는 쥐라(Jura) 지역에서도 만드는 뱅 드 빠이유(Vin de Paille)가 있습니다. 건초 멍석 위에서 말린 청포도로 만들며 맛은 아주 달고 수명이 놀랄 만큼 길죠.
크로즈-에르미따지에선 협동조합이 발달해서 많은 와인이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것입니다. 까브 드 땡(Cave de Tain) 같은 협동 조합은 크로즈-에르미따지 전체 포도밭의 절반 정도를 관리할 정도죠. 일반 와인 생산자로는 도멘 폴 자불레 에네(Domaine Paul Jaboulet Aine)가 있습니다. 나머지 포도밭의 많은 부분을 갖고 있으며, 주변 농부들로부터 포도를 구매해서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