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 와인, 또는 건포도 와인은 말려서 당분이 농축된 포도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수분을 제거하고 당분이 농축된 포도즙을 쓴다는 점에선 아이스 와인(Ice wine)과 비슷하지만 따뜻한 지역에서 만들기 좋은 방식입니다.
1. 스트로 와인이란?
스트로 와인은 전통적으로 밀짚으로 만든 깔개 위에 올려놓고 햇빛에 말린 포도로 만듭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덮개를 씌우거나, 지붕 위에서 말리거나, 밀짚 대신 현대적인 선반을 사용하기도 하죠. 수확하지 않고 포도나무에서 충분히 말린 후에 딴 포도로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달거나 매우 단 스트로 와인은 농축도나 당도가 쏘테른(Sauternes)과 비슷하며 보관 기간이 매우 깁니다. 포도를 말리면서 부피가 줄어들고 생산 방식이 노동집약적이어서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죠. 현재 가장 큰 생산지는 이탈리아 북부와 그리스, 프랑스의 알프스 지역이며 다른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도 시험 삼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 스트로 와인의 역사
스트로 와인을 만드는 법은 로마 시대 이전에 개발되었습니다. 기원전 800년경에 그리스 시인인 헤시오도스(Hesiodos)가 말린 포도로 만드는 키프로스 만나(Cypriot Manna)라는 와인에 대해 기록을 남겼을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죠.
1세기경 로마의 콜루멜라(Columella)와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지중해 지역의 다양한 스트로 와인을 책에 기록했습니다. 플리니우스는 건포도 와인 항목에서 꿀 와인을 뜻하는 그리스 용어를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햇빛에 말리기 위해 포도나무에 포도를 남겨둔다... 그 와인은 햇볕에 말린 포도로 만들며, 밤의 이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땅에서 7피트 높이의 밀폐된 선반에 7일간 놓아둔다. 8일째에 포도를 발로 으깬다. 이 방법으로 절묘한 향과 풍미가 나오는 술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메리티테스(melitites)라고 알려진 술도 스위트 와인의 하나이다."
콜루멜라는 고대 카르타고에서 만들었던 파쑴(Passum)이란 건포도 와인에 관해 토론했는데, 스트로 와인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의 와인 용어인 파씨토(Passito)는 Passum이란 고대의 명사를 반영한 것입니다. 스트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프랑스 단어인 파쎄리아쥬(passerillage)도 마찬가지이죠. 파쑴과 가장 관련 깊은 것은 아마도 시칠리아 해협의 섬인 판텔레리아(Pantelleria)에서 생산하며, 고대 뮈스까(Muscat) 품종의 하나인 지비보(Zibibbo)로 만드는 모스까토 파씨토 디 판테레리아(Moscato Passito di Pantelleria)일 겁니다.
중세시대의 키프로스 와인인 코맨다리아(Commandaria)를 만들 때도 비슷한 방법이 사용되었고, 이 와인은 지금도 생산됩니다.
3. 세계 각국의 스트로 와인
1) 프랑스
스트로 와인을 뜻하는 프랑스의 와인 용어는 뱅 드 빠이에(Vin de Paille)이며, 역시 밀짚 위에서 말린 포도로 만드는 와인을 뜻합니다. 꼬뜨 뒤 쥐라(Cotes du Jura)에서 청포도인 샤르도네(Chardonnay)와 사바냉(Savagnin), 적포도인 뿔사르(Poulsard)를 섞어서 만드는 와인이 가장 대표적이며, 북부 론의 에르미따지(Hermitage)에서는 청포도인 마르산(Marsanne)으로, 알자스에서는 리슬링(Riesling)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꼬레즈(Correze)에선 이러한 와인을 뱅 빠이에(Vin Paille)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실내에 깔린 밀짚 위에서 3개월간 말린 건포도로 뱅 드 빠이에를 만들며 와인에선 복숭아와 살구 향이 납니다. 와인의 잔당 함량은 10~20% 정도이며, 거위 간 요리인 푸아 그라(foie gras)와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
2)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주에선 서까래에 매달아서 말린 포도로 빈 산토(Vin Santo)란 스위트 와인을 만듭니다. 빈 산토는 카라텔리(caratelli)라고 부르는 시가 형태의 작은 통에서 발효한 후 카라텔리에 담긴 그대로 와이너리의 지붕에서 10년간 숙성해서 만듭니다.
피에몬테(Piemonte)주에선 에르발루체 디 카루소(Erbaluce di Caluso) 포도를 말려서 만드는 스트로 와인인 파씨토 디 카루소(Passito di Caluso)가 있습니다. 포도를 4개월간 밀짚 매트 위에서 말려서 양조한 다음 적어도 4년간 숙성해서 만듭니다.
베네토(Veneto)주의 대표적인 스트로 와인인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Amarone della Valpolicella)에 관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세요.
3) 그리스/키프러스
키프러스에서 만드는 코맨다리아는 햇볕에 말린 청포도인 시니스테리(Xynisteri)와 흑포도인 마브로(Mavro)를 사용합니다.
펠로폰네스 반도의 남동쪽에 있는 모넴바시아(Monemvasia)에서는 모넴바시아-말바시아(Monemvasia-Malvasia)라는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말바시아라는 포도 이름이 붙었지만 키도니스타(Kidonitsa)와 아씨르티코(Assyrtiko), 모넴바시아, 아스프루디(Asproudi) 같은 그리스 포도를 주로 사용합니다.
산토리니에서는 주로 아씨르티코를 사용하고 아이다니(Aidani)와 아씨리(Athiri) 포도를 소량 넣어서 만드는 스토로 와인인 빈산토(Vinsanto)가 유명합니다.
사모스(Samos) 섬에선 햇볕에 말린 뮈스까 블랑 아 쁘띠 그랭(Muscat Blanc à Petits Grains) 포도로 스트로 와인을 만듭니다. 가장 유명한 제품은 에오스 협동조합(EOSS cooperative)이 만드는 넥타르(Nectar)입니다.
파로스(Paros), 에비아(Evvia), 티노스(Tinos), 이카리아(Ikaria), 크레테(Crete) 섬에선 리아스토스(Liastos)란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4) 스페인
가장 유명한 스트로 와인은 페드로 시메네즈(Pedro Ximénez) 포도로 만드는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입니다.
까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on)의 페드로 베르나르고(Pedro Bernardo) 마을에선 우바 리게루엘로(Uva Ligeruela) 포도로 리게루엘로(Ligeruelo)라는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스페인 서북부의 갈리시아(Galicia)에 있는 리베이로(Ribeiro) DO에서도 비노 토스타도(Viño Tostado)라는 스트로 와인이 나옵니다.
5)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의 프라디카츠바인(Prädikatswein) 등급에는 밀짚으로 짠 가마니 위에서 3개월간 말린 포도로 만드는 스트로바인(Strohwein)이 있습니다. 쉬프바인(Schilfwein)이라고도 합니다.
6) 크로아티아
달마티아(Dalmatia)의 남쪽 지역에서 생산하는 프로섹(Prošek)이란 스트로 와인이 있습니다.
7) 체코 공화국
말린 청포도로 만드는 슬라모베 비노(Slámové víno)라는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8) 슬로바키아
체코 공화국처럼 슬라모베 비노라는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9) 미국
미국에선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령 시대에 집에서 만드는 건포도 와인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건포도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이 직접 와인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상세한 제조 지침을 담은 경고장(!)을 발행해서 금주법을 우회하면서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버지니아와 텍사스 주의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루산느(Roussanne)와 비오니에(Viognier),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모스까토 오토넬(Moscato Ottonel) 등등 지역에 맞는 다양한 포도로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10) 호주
바로싸 밸리(Barossa Valley)의 터키 플랫 빈야즈(Turkey Flat Vineyards)에서 2002년부터 마르산 포도로 스트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11)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7년부터 슈냉 블랑(Chenin blanc) 포도로 만드는 스트로 와인이 나오고 있습니다.
12) 덴마크
양조용 포도를 재배할 수 없을 만큼 기후가 서늘한 덴마크이지만, 베스터 울스레브 뱅가드(Vester Ulslev Vingaard)라는 와이너리가 말린 레온 미요(Léon Millot)와 까베르네 칸토르(Cabernet Cantor) 포도로 2007년부터 스트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4.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