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9세기 (1801년 ~ 1900년)

Bar10The 2019. 5. 31. 19:56

필스너 우르켈의 심벌
(필스너 우르켈의 심벌. 이미치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24736216@N07/5587127810)

● 19세기(1801년~1900년)

1) 정치, 경제 상황

19세기 초 러시아는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그 공적으로 유럽 각국으로부터 폴란드 영유권을 인정받았습니다.

19세기 유럽에 산업 혁명의 바람이 불었지만, 아일랜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사를 짓는 농업국가였습니다.

19세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둘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옆에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까지 지배하려 했습니다. 영국은 초강대국으로 세계에 군림하며 다른 나라와 동맹하지 않고도 초연했습니다.

19세기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도 아시아∙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영국에 뒤지지 않고 많은 식민지를 소유했습니다.

19세기 유럽 각국에 산업혁명의 기운이 확산되면서 근대 공업화가 진행되었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러한 근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중동의 이란, 중앙아시아, 만주, 극동 방면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아시아계 주민들을 지배함으로써 동세기 말에 인구가 1억 명이 넘었습니다.

영국은 경제 패권을 신흥국인 독일과 미국에 뺏깁니다. 영국은 출생률 저하로 고민했습니다.

19세기말 독일은 금융 분야에서 독점이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이후 과학 발전이 더해져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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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업과 식품 분야의 발전

19세기 후반에 인도네시아인들은 담배와 정향을 혼합해 '크레텍'이라는 정향 담배를 세계 최초로 생산했습니다.

바퀴(wheel) : 19세기 들어 공기압으로 팽창시킨 고무타이어가 등장했습니다.

메뉴(menu) :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손님을 위한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고추(Chili pepper) : 고추의 매운맛이 서민들 밥상에 정착하게 된 것은 불과 19세기 초반이었습니다.

란제리(lingerie) : 19세기 전반에 영어로 들어가면서도 프랑스식 발음을 존중해 '렝저리', 또는 '란제리'라고 했습니다.

패션(fashion) : 패션의 역사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직 포목상이었던 워스는 자신이 만든 의상에 상표를 꿰매 넣은 첫 번째 디자이너입니다.

키스(Kiss) : '키스 더 더스트(kiss the dust)'는 '죽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국수(Noodle) : 국수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된 것은 19세기에 이주한 화교들이 제면 기술을 전하면서부터입니다.

대구(Pacific cod, ma-dara) : 19세기 영국의 과학자들은 바다에는 엄청나게 많은 대구가 수백만 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대구를 아무리 많이 잡아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자(Pizza) : 19세기에 나폴리를 중심으로 피자가 발전한 것은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역할이 컸습니다. 19세기 나폴리 거리에는 피자 노점상이 흔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항구 도시의 서민 음식인 피자는 19세기 이후 이탈리아의 통일 과정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나폴리와 시칠리아 등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이들이 모여 살던 뉴욕과 보스턴 등 북동부 대도시들에 피자집이 생겨났습니다.

비스킷(biscuit) : 19세기 중반 통조림이 도입되기 전까지 세계 해군의 주요 식량이었습니다.

 

 

콩(soybean) : 미국에 대두가 전래된 것은 19세기 중반이며, 지금은 아메리카 대륙이 세계 대두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파스타(pasta) : 파스타가 해외로 널리 전파된 건 19세기말 고국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에 정착한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자들 덕분이었습니다.

카다멈(Cardamom) : 카다멈을 야생에서 채취한 역사는 수백 년에 이르지만 인간이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다미아나(Damiana) : 19세기 의사들은 이 식물을 최음제로 처방했습니다.

그린게이지 자두 : 19세기 식물학 문헌에 따르면 그린게이지라는 이름은 이 나무를 샤르트뢰즈 수도원에서 영국으로 가져온 게이지 가문 사람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콜라 너트(Kola Nut) : 19세기의 유럽인들은 콜라 너트를 강장제로 활용했습니다.

사사프라스(Sassafras) : 19세기에 인기를 끌었던 만병통치약인 '고드프리의 코디얼(Godfrey’s Cordial)'에는 당밀, 사사프라스 오일, 아편을 알코올로 우려낸 액체인 아편 정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담배(Tobacco) : 19세기에는 담배 리큐어라는 것을 벌레 잡는 약으로 널리 권장했습니다.

딸기(Strawberry) : 19세기 중반에 버지니아 원산 품종으로 역시 유럽에 전파되었던 F. 비르기니아나(F. virginiana)와 칠레산 딸기를 교배하여 오늘날의 딸기가 탄생했습니다.

바닐라(Vanilla) : 19세기 중반까지도 이 식물을 수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석류(Pomegranate) : 19세기 후반에 이르자 그레나딘이라는 용어가 기생충을 퇴치하기 위한 나무껍질 차가 아닌 탄산음료나 기타 음료의 맛을 내는 데 사용하는 다홍색의 달콤한 과일 시럽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3) 주류 분야의 발전

19세기가 되자 알코올 섭취 자체가 악이라는 해석이 확대되면서 금주는 서서히 정치적인 운동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앙고스투라(Angostura) : 앙고스투라 나무껍질을 사용한 치료제는 19세기 문헌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세기말에 새로운 상표법이 통과되면서 한 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앙고스투라 나무껍질로 비터즈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든 해당 제품을 앙고스투라 비터즈라고 부를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앙고스투라 비터즈의 제조업자들은 수십 년간 비터즈에 진짜 앙고스투라 나무의 껍질을 사용하는지 밝히기를 거부한 채 이 제품의 이름에 대한 권리를 웅호 하기 위하여 법정 싸움을 벌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벌어진 이 공방은 상표법이 아직은 생소한 개념이던 시대에 세계적인 법적 선례를 남겼습니다.

발효(fermentation) :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당분이 변하여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사이다(Cider) : 미국에서는 조니 애플시드(Johnny Appleseed)로 알려진 존 채프먼(John Chapman)이라는 사람이 19세기 초반 변경 지역에 사과 묘목장을 세우면서 유전자 주사위 던지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맥주(Beer) : 맥주 양조 기술은 19세기 산업 혁명 시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맥주 : 19세기 중반에 발효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스퇴르가 등장하여 맥주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맥주 : 미국에선 19세기 중엽에는 저장맥주(병맥주)를 만들었습니다.

맥주 : 19세기말 칭다오에 독일인이 공장을 건설하면서 중국에서 맥주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맥주 : 새로운 타입의 맥주가 19세기말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었으며, ‘필스너 우르겔(Pilsner Urguell)’의 상표가 그 원조입니다.

 

 

와인(Wine) : 19세기의 비양심적인 와인 상인들은 와인과 포트 와인(Port Wine)에 엘더베리 술을 섞어서 양을 늘려도 아무도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이 되도록 아무도 몰랐던 것은 튼튼한 미국산 포도나무가 마찬가지로 미국 토종이면서 진딧물과 비슷한 작은 해충인 포도나무뿌리진디(Daktulosphairavitifoliae)의 공격에 잘 견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강화 와인은 그 자체만으로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베르무트(Vermouth)는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며 브랜디(Brandy)오 드 비(Eau de Vie)로 알코올을 약간 강화하여 도수를 약 16% 정도로 맞춥니다. 레드 베르무트는 레드 와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에 캐러멜을 첨가하여 단맛과 진한 색을 낸 것입니다.

와인 : 프랑스의 뽀므롤(Pomerol)은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다지 와인의 명산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초 우연히 발견한 보트리티스 시레네아 곰팡이 덕분에 네덜란드 상인들은 더 이상 와인 속에 시럽이나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도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달콤한 와인들을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진딧물로 인해 프랑스 포도원의 3/4가 황폐화되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19세기 후반에 필록세라 때문에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바닥을 밑돌자 이제까지 천대받았던 맥주가 상류층에서도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도 품귀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스코틀랜드산 위스키가 브랜디 대용으로 세계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건너온 포도나무뿌리진디가 보르도 포도밭 전체를 감염시켜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지역도 크나큰 시련을 맛봤습니다.

와인 : 19세기경 마을에서 채석한 돌들을 사용해 시토성(Chateau de Citeaux)의 일부가 재건축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와인 : 루이 라투르(Louis Latour) 가문이 관리하는 도멘은 19세기 중엽에 그랑 크뤼 지역만 이미 50헥타르가 넘었습니다.

부르고뉴 지방의 화이트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으며, 루이 라투르 가문 역시 19세기말에 조상들이 알록스 꼭똥 언덕 위에 심은 품종이 오늘날 자손들의 손을 거쳐 위대한 와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와인 : 그리스(Greece)가 독립왕국이 되었으나 계속되는 전쟁에 휘말려 쇠퇴한 와인산업의 부흥에 힘쓸 수가 없었습니다.

와인 : 19세기 후반 칠레의 자본가들이 와인 양조장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유럽에서 가지고 들어온 포도 중에 카르메네르(Carmenère)라는 품종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럽은 필록세라 때문에 카르메네르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안데스 산맥과 아타카마 사막, 태평양, 남극에 둘러싸여 다른 나라와 떨어져 있던 칠레에는 해충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카르메네르를 절멸의 위기에서 구한 칠레의 대지는 어느 사이에 '포도 최후의 낙원'이라 불리어지게 되었습니다.

 

 

위스키(Whisky) : 19세기가 되자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는 whisky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아일랜드와 미국에서는 whiskey라는 표기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주류법에는 한 군데를 제외하고 모두 whisky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캐나다, 일본, 인도에서도 whisky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아이리쉬 위스키(Irish Whiskey) : 83세의 나이로 사망한 제임슨(Jameson)의 설립자 존 제임슨(John Jameson)은 19세기 초까지 상당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19세기의 스코틀랜드에는 130개소 이상의 스카치위스키 증류소가 있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존 로스(John Ross)와 그의 아들 앤드류(Andrew), 그 후에는 존 로스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발블레어(Balblair) 농장과 증류소를 19세기 마지막 해까지 운영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19세기말 스코틀랜드 최고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은 카듀(Cardhu)는 카듀 스카치위스키의 엄청난 수요에 따른 요구에 대한 부응이 어려워지자 다른 증류소들의 주정과 함께 카듀 몰트를 큰 통에 넣고 카듀 퓨어 몰트(Cardhu Pure Malt)라 명명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19세기에 에든버러(Edinburgh) 증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핸키 베니스터(Hankey Bannister)가 19세기부터 위스키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19세기 후반에는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의 명성이 바다 건너 유럽까지 퍼지게 되었고, 덴마크 왕과 러시아 황제가 참가한 파티에서도 "지금까지 맛본 것 중 최상의 몰트 위스키다."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조니 워커 블루 라벨(Johnnie Walker Blue Label)'은 19세기 초의 위스키 스타일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제품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조니 워커(Johnnie Walker)의 저장품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캐스크들의 일부를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올드 파(Old Parr)는 19세기말 알렉산더 맥도널드사와 그린리스 브라더스사가 합병하여 탄생한 회사입니다. 상표에 있는 초상화는 거장 루벤스의 작품입니다.

19세기 무렵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영국에 파견된 일본 관리가 메이지 천황에게 영국 최고의 위스키로 올드 파를 선물하면서 올드 파가 아시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카치위스키 : 울프번(Wolfburn) 증류소는 19세기 초 케이스네스(Caithness)에서 가장 큰 증류소였습니다.

캐나디안 위스키(Canadian Whisky) :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연속식 증류 장치가 도입되어 옥수수를 상당량 사용한 경쾌한 위스키가 등장했습니다.

캐나디안 위스키 : 캐나디안 클럽(Canadian Club)이 19세기부터 미국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진(Gin) : 19세기가 되자 영국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청량하고 드라이한 느낌을 주는 근사한 진의 초기 버전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런던 드라이(London Dry) 스타일의 진이 만들어집니다.

진은 19세기 초에 일본에도 전래되었습니다.

: 19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시골 지역에서도 손쉽게 댐즌 진(Damson Gin)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 19세기에 스내그 진(snag gin)이라고 불렀던 슬로 진(Sloe Gin)은 단순히 진에 설탕과 약간의 향신료, 가시가 잇는 슬로베리 관목에서 딴 작고 떫은 열매를 우려낸 음료에 불과했습니다.

보드카(Vodka) : 19세기 전반에 자작나무 숯으로 여과하는 방법이 발명되면서부터 무색투명한 증류주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메스칼(Mezcal) : 메스칼은 가끔 페요테 선인장(Lophophora williamsil)의 환각 성분인 메스칼린(mescaline)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들은 전혀 관련이 없으며, 19세기에 페요테가 '메스칼레 버튼(muscale buttons)'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생긴 오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테킬라(Tequila) : 19세기에는 단순하게 할리스코 주의 테킬라라는 도시 및 그 주변 지역에서 만든 메스칼을 테킬라라고 불렀습니다.

리큐르(Liqueur) : 19세기부터는 각 지방별로 여러 가지 리큐르가 나오게 되었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약용 술은 좀 더 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색깔과 향을 지닌 음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가 되자 몇몇 이탈리아의 양조장에서는 알커미스(Alkermes, Alchermes)라고 부르는 밝은 빨간색의 리큐르를 물약이 아닌 식후주로 제조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포도 베이스 브랜디에 과일 주스를 첨가해서 살구 브랜디와 복숭아 브랜디를 만들었습니다.

 

 

리큐르 : 19세기의 프랑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압생트(Absinthe)가 환각과 돌발 행동을 유발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리큐르 : 크렘 드 카시스(Crème de Cassis)가 19세기 후반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리큐르 : 프랑스의 제프렐사가 맨 먼저 크렘 드 망트(Crème de Menthe)를 내놓았는데, 여려 곳에서 유사품이 많이 나오자 19세기에 피폐르망(Pippermint)이라는 상표로 등록하였습니다.

비터스(Artisanal Bitters) : 19세기에 들어서며 세계적으로 칵테일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와 함께 비터스는 두 세기 후 '믹솔로지(mixology)'로 알려지게 되는 분야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칵테일(Cocktail) : 19세기 중엽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위스키와 브랜디, 진, 보드카, 럼 등 증류주의 국제적인 유통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타입의 음료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칵테일 : 마티니(Martini)의 비율은 19세기에 베르무트가 1대 1이었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큰 격차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엔 3:1, 5:1, 6:1, 7:1, 10:1로 진의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칵테일 : 생거리(Sangaree)는 처음에는 서인도 여러 섬들의 음용물이었다고 하는데, 19세기 초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칵테일 : 크론다이크 하이볼(Klondike Highball)의 크론다이크는 캐나다 북서부의 금 생산지로 19세기말에 골드 러시로 유명하게 된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