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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 추위를 쫓아주는 동토의 생명수 - 보드카의 역사와 제조법

까브드맹 2012. 7. 31. 06:00

(이미지 출처 : http://www.glamourmagazine.co.uk/love-sex-relationships/health-fitness/2010/12/christmas-calorie-counter#!image-number=11)

1. 보드카의 특성

보드카(Vodka)는 보리나 호밀 같은 곡물과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분을 함유한 식물 뿌리를 발효해서 만든 술을 연속 증류한 후에 숯으로 잡맛과 향을 걸러내서 만드는 무색, 무미, 무취의 술입니다. 물론 무미라고는 하지만, 알코올 때문에 쓴맛과 희미한 단맛이 나오긴 하죠.

제조 후에 거친 맛을 부드럽게 하려고 오크통 속에서 몇 년간 숙성하는 위스키나 브랜디와 달리 보드카는 숙성하지 않으므로 투명한 색을 띱니다. 또 연속증류 방식으로 순도 높은 알코올이 나오도록 증류하기 때문에 중성적인 맛과 향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숯으로 남아있는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므로 보드카는 재료로 사용한 물질의 특성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맛과 향이 거의 없는 술이기에 보드카는 칵테일 베이스로 많이 사용됩니다. 보드카를 베이스로 사용하는 칵테일 중에서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커피나 깔루아를 넣어서 만드는 블랙 러시안(Black Russian), 오렌지 주스를 섞는 스크루드라이버(Screwdriver), 토마토 주스와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해서 만들며 해장용으로도 많이 마시는 블러디 메리(Bloody Mary) 등이 있습니다.

(스크루드라이버. 중동 지방에서 몰래 술을 마시려고 개발한 칵테일로 공구인 스크루 드라이버로 저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theyounggentlemensguide.com/tag/screwdriver-cocktail/)

하지만 보드카가 특징이 전혀 없고 완전히 중성적인 술은 아닙니다. 실제론 보드카에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생산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죠. 특히 동부 유럽의 보드카와 서부 유럽의 보드카 중에서 고급 제품은 보드카에 사용하는 재료의 특징이 살아 있습니다. 따라서 종류마다 향이 조금 다르고, 질감과 느낌도 다양하죠. 어떤 것은 부드럽고 순하지만 어떤 것은 혀가 얼얼할 만큼 강하고 자극적인 맛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보드카의 이런 특징을 바이트(Bite)라고 부릅니다. 강한 맛이 나는 보드카 중에는 품질이 낮은 것이 많지만,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급 보드카 중에서도 강한 맛을 가진 것이 있죠.

2. 보드카의 어원과 역사

보드카는 원래 "지즈네냐 보다(Zhizenennia Voda)"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죠. 나중에 "지즈네냐"는 빠지고 그냥 "보다"로 통하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보드카로 바뀌게 된 겁니다. 보드카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9세기부터 보드카를 주조했고, 이웃한 폴란드에서는 8세기에 비슷한 증류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때의 보드카가 지금의 보드카와 이어지는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러시아와 폴란드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드카를 만들어서 마셔왔으니 기록상으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주라고 볼 수 있겠죠?

12세기 무렵에 러시아와 폴란드 일대에서 보드카를 널리 만들기 시작했고, 14세기경부터 아예 대중 음료(?)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보드카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신비의 약,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어서 여러 방면에서 활용 됐습니다. 아마 매우 춥고 긴 겨울이 있는 러시아에서 추위에 언 몸을 녹여주고, 무료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보드카는 단순한 술 이상이었을 겁니다. 이웃과 보드카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야말로 잠시나마 추위를 잊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겠죠. 그래서 보드카는 위로는 황제와 귀족부터, 아래로는 평민과 농노에 이르기까지 모든 러시아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술이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15세기경에 여러 종류의 보드카가 다양한 등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폴란드산 보드카는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선천적으로 많은 러시아인은 술을 마셔도 다른 나라 사람보다 건강 문제가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술에 강해도 알코올 도수가 50~60%를 넘는 보드카를 밤낮으로 마셔대면 탈이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죠. 국민들이 보드카를 너무 즐겨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많이 생겨나자, 러시아 제국 최후의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국민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보드카의 알코올 도수를 40%로 제한했습니다. 기준을 40%로 정한 것은 알코올 도수가 이 정도였을 때 몸에 가장 잘 흡수되며, 건강에 해도 적고, 술맛이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기준을 정한 사람은 당시 계량청 국장으로 재직했던 멘델레예프(Mendeleyev)입니다. 네, 주기율표를 만든 그 분 맞습니다. 

(러시아 최후의 짜르, 니콜라이 2세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sar_Nikolai_II_(2).jpg)

초기의 보드카는 지금과 풍미가 전혀 달라서 거칠고 알코올 도수만 높은 증류주였습니다. 그래서 거칠고 조잡한 향을 가리려고 과일과 향신료, 허브 등을 첨가했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자작나무 활성탄으로 주정을 수십번 여과해서 잡 성분을 제거하는 동시에 성분의 일부를 산화시키고, 마지막 단계에서 모래로 걸러 목탄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풍미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됩니다. 또한 19세기 초중반에 영국의 로버트 스타인(Robert Stein)이 연속 증류기를 개발하고, 아일랜드의 아니아스 코페이(Aeneas Coffey)가 이를 개량해 고순도의 알코올을 지닌 보드카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오늘날처럼 무색, 무미, 무취의 특징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니아스 코페이가 만든 연속 증류기의 구조. 이미지 출처 : http://syntheticenvironment.blogspot.kr/2007/06/top-5-spirit-stills.html)

1917년에 러시아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볼세비키 정부는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저지르는 사고를 막으려고 보드카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습니다. 이 금지 조치는 보드카를 원하는 국민들의 강경한 요구 때문에 오래가지 않아 해제되었지만, 이때 세계 도처로 망명한 러시아인에 의해 다른 나라로 보드카 제조법이 퍼지게 되었죠. 미국에서는 1933년에 금주법이 폐지되자마자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보드카를 제조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 동란이 끝날 즈음부터 위스키나 진에 못지않게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보드카 원조국인 러시아를 능가하는 세계 제일의 보드카 생산국입니다.

3. 보드카의 제조 방법

보드카 원료는 보리와 값이 싼 호밀, 감자, 옥수수, 사탕무(Beets) 등이며, 때로는 포도와 당밀(Sugarcane)을 쓸 때도 있습니다. 초창기 보드카는 값싼 감자를 많이 썼고, 곡물로 만들어도 제조법이 발달하지 못해서 맛이 거칠고 역한 냄새가 났죠. 현재 전 세계 각국에서 생산하는 보드카는 대부분 곡물로 만듭니다. 

위의 재료들을 발효해서 맥주와 비슷한 술을 만든 후 연속 증류기로 증류하면 알코올이 95% 이상 들어간 중성의 증류주가 나옵니다. 이때 원료 고유의 향은 대부분 사라지죠. 그다음에 증류수를 부어서 증류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춘 다음 숯이 든 여과기에 천천히 흘려 넣으면서 여과합니다. 여과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때에 따라선 20개가 넘는 여과기를 통과시키기도 하죠. 여과에 드는 시간은 최소 8시간 이상이며, 여과기에 들어가는 숯의 소재와 제조 방법, 건조 상태에 따라 보드카 품질이 많이 달라집니다. 현재는 비용 때문에 여과할 때 목탄만 쓰지 않고 모래 형태로 된 이산화규소(SiO2)를 쓰는 곳도 있습니다. 유명한 미국산 보드카인 스미르노프(Smimoff)는 목탄만 사용하지만, 러시아산 보드카인 스톨리치나야(Stolichinaya)는 여과기의 1/4은 모래를, 3/4은 목탄을 씁니다.

(대표적인 미국산 보드카인 스미르노프. 사진의 제품은 스미르노프 No. 21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smirnoff.com/en-us/main/drinks/cocktails/#product)

보드카는 대부분 여과기에서 나온 그대로 병에 넣지만, 때때로 시트러스나 바닐라, 오렌지, 크랜베리 등의 향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수입된 보드카 중에서 스웨덴산인 앱솔루트(Absolut)와 덴마크산인 단츠카(Danzka) 보드카 중에서 이러한 형태로 만든 것이 많죠.

<참고 자료>

1.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_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2. 김의겸 저, 소믈리에 실무, 서울 : 백산출판사, 2007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