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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쥬니퍼 베리의 깨끗한 향기와 맛 - 진(Gin)의 역사에 대하여

까브드맹 2011. 3. 11. 15:58

● 향긋한 새로운 술의 탄생

노간주나무의 열매인 주니퍼 베리(Juniper Berry)는 예로부터 의학적 효능을 가진 약재로 인식되었습니다. 11세기에 이탈리아의 수도사들은 주니퍼 베리로 풍미를 더한 조잡한 증류주를 만들었는데,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이 증류주를 치료제로 쓰기도 했죠. 비록 효능은 없었지만요.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증류 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식물을 향수와 향료, 약재로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주니퍼 베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650년에 네덜란드 홀랜드(Holland)주의 라이덴(Leyden, Leiden)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프란시스커스 드 보(Franciscus de la Boe, 1614~1672) 교수는 새로운 약을 발명합니다. 교수이면서 의사이기도 해서 "닥터 실비우스(Dr. Sylvius)"라고 불렸던 실비우스 교수는 주니퍼 베리의 효능에 주목했습니다. 당시에 주니퍼 베리는 이뇨 작용이 있어서 요통을 덜어주고 신장병을 치료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열매로 알려져 있었거든요. 실비우스 교수는 맛 좋고 값도 싼 만병통치약(!)을 만들려고 노력한 끝에 호밀에서 증류한 주정과 주니퍼 베리의 오일을 섞어서 약용 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니퍼 베리의 프랑스어인 "쥬니에브르(Genievre)"란 이름을 붙였죠. 마치 조선 시대에 소주에 각종 약재를 넣어서 약용 술을 만든 것과 같다고 할까요?. 실비우스 교수는 쥬니에브르를 이뇨, 해열, 건위에 효과 있는 약으로 환자에게 처방했고 라이덴 시내의 약국에서도 팔았습니다. 환자들은 매우 즐겁게(?) 이 약을 먹었는데, 문제는 병이 다 나은 후에도 이 약용 술을 계속 마셨다는 거죠. 그러자 곧 건강한 사람들도 덩달아 마시기 시작하면서 쥬니에브르는 순식간에 네덜란드 전체로 퍼져서 국민주가 되어버렸고, 홀랜드 사람들은 이 새로운 술을 쥬네브르(Genevre)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엔 증류법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고, 고품질 주정을 만들 수 있는 연속식 증류기(Column Still)도 발명되지 않았던 때라 증류주는 대부분 오늘날처럼 깔끔하지 않았고 풍미도 조잡했습니다. 그런데 쥬네브르는 주니퍼 베리의 향긋한 향기가 나는 새로운 술이었기에 큰 인기를 끈 거죠. 17세기 중엽에 이르면 홀랜드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소규모 증류소가 생겨나서 열심히 쥬네브르를 생산합니다. 663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만 400개의 쥬네브르 증류소가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서울에 막걸리 양조장이 400개라고 상상해 본다면 정말 엄청난 숫자인 거죠.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전 세계에 진출하면서 쥬네브르도 무역선(겸 해적선)에 실려서 함께 퍼져 나갔습니다. 19세기 초에 일본에도 전래하였다는데, 일본과 네덜란드의 무역상관인 데지마섬이 만들어진 게 1636년인 걸 생각해보면 의외로 늦은 편이죠. 자바와 수마트라의 네덜란드 식민지에도 당연히 전해졌습니다. 농장을 경영하던 네덜란드인들이 쥬네브르를 마시려고 일찍 일을 끝낸 후 클럽에서 한 잔씩 하는 것이 유행이었답니다.


● 영국의 진, 막장 of The 막장

쥬네브르는 바다 건너 영국에도 전해졌는데, 영국인들이 이 술을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큰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습니다. 영국에 쥬베브르가 알려진 계기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인 "8년 전쟁(The Eighty Years War)"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스페인에 맞서 네덜란드 연합공화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프로테스탄트 제후국들이 연합해서 싸운 전쟁입니다. 이때 참전한 영국 해군은 쥬네브르를 마시게 되었는데, 곧 전투 전에 쥬네브르 한 잔이 가져오는 조용하면서 훌륭한 효과를 알게 됩니다. 그 효과는 "적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었죠. 이로 인해 쥬네브르는 "Dutch Courage(네덜란드의 용기)"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갖게 됩니다.

술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주니퍼 베리의 향긋한 풍미가 있는 쥬네브르란 술을 알게 되었으니 국산화는 시간문제였습니다. 17세기 초반부터 영국에선 다양한 쥬네브르를 생산하죠. 쥬베브르란 이름이 "진(Gin)"이 된 것은 영국인들이 쥬네브르(Genevre)란 단어를 듣고 "스위스 제네바(Geneva)에서 왔구먼!"하고 잘못 이해해서 "젠(Gen)"이라고 줄여서 불렀고, 나중에 영국식 발음인 "진(Gin)"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랍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영국왕 '오렌지공' 윌리엄 3세)

진이란 이름으로 바뀌어서 영국에서 제조하기 시작한 쥬네브르가 영국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688년에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오렌지공 윌리엄(William of Orange)이 내린 아래의 칙령이었습니다.

"진은 면허가 없어도 만들 수 있게 하지만, 수입하는 증류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붙여라!"

영국의 주류 산업을 보호하고, 외국 술을 수입하려고 영국의 돈이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는 조치였겠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은 엄청났습니다. 칙령이 발포되자 맥주 양조에 쓸 수 없는 싸구려 곡물로 생산하는 진 시장이 순식간에 탄생했고, 매우 싼 값에 판매되었습니다. 이때 만든 진은 조잡한 품질에 테레빈유(Turpentine)와 비슷한 풍미가 나는 싸구려였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에 당시 빈민층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되죠. 어느 정도로 쌌냐 하면

"1페니면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죽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계속 진행되었으므로 17세기의 화폐 가치는 지금과 당연히 다릅니다. 19세기의 1페니는 현재의 1페니보다 대략 50배의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현재 1페니는 7.5원이므로 19세기의 1페니는 375원가량이 됩니다. 17세기와 19세기의 화폐 가치 차이가 10배 정도라고 보면 17세기의 1페니는 3,750원 정도가 되죠. 그러니 4천 원어치면 취하고 8천 원어치면 죽을 정도라는 얘기가 되겠군요. 통계에 따르면 1740년대에 남녀노소와 갓난아기까지(!) 다 합쳐서 런던 인구 1인당 마시는 진의 양은 1주일에 평균 2파인트(1.12 리터)였답니다.

이렇게 술값이 싼 데다 먹고 취하면 왕도 부럽지 않았으니 영국의 노동자들은 진을 "로얄 포버티(Royal Poverty)"라고 부르며 애음(愛飮)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영국 전역에 수 천 개의 진 판매소가 생겼고 18세기 전반이 되면 "진에 미쳐버린 시대(The Gin Craze)"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죠. 1740년에 진 증류소는 맥주 양조장의 6배로 늘어났고, 런던에 있는 15,000개의 술집 중 절반 이상이 진을 판매했습니다. 당시 맥주는 "불결한 물을 마시는 것보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 해서 건전한(?) 음료로 평가받았지만, 진은 온갖 사회적, 의학적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비난받았고, 옛날보다 사망률을 더 높이는 원인으로 지목당합니다.

(1751년에 윌리엄 호가쓰(William Hogarth)가 만든 "맥주 거리와 진 골목(Beer Street and Gin Lane)"이라는 판화엔 당시 영국 지배층의 진에 대한 인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온갖 사고 때문에 영국 정부는 진저리를 쳤는데 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나시카님의 포스트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국인들이 진에 취해서 건강을 해치는 걸 더는 놔둘 수 없었던 영국 정치가들은 마침내 진의 소비를 줄이기 위한 조처를 하는데, 그 방법은

"진에 붙는 세금을 올려서 소비를 줄이고 국민의 건강도 챙기자!"

는 것이었죠. 진의 무면허 생산을 없애는 게 아니라 세금을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736년에 진 법률(The Gin Act 1736)이 제정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진을 판매하는 소매상에 붙이는 세금을 4배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해 영국의 애주가들은 즉각 화끈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것은 "거리에서 폭동"이었죠. 

세금 때문에 가격이 올라서 예전만큼 진을 마실 수 없게 된 영국인들은 계속 폭동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서 진을 팔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에 가까웠던 고율의 세금은 점차 줄어들어서 1742년에 마침내 없어지고 맙니다. 폭동을 일으킬 만큼 영국인들이 가졌던 진에 대한 크고 아름다운 사랑은 마침내 영국 정부도 무릎 꿇게 만든 것이죠. 하지만 영국 정부 역시 그냥 물러나진 않았고, 1751년에 다시 진 법률(The Gin Act 1751)을 제정합니다.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1. 진 증류소는 반드시 허가받은 소매상에게만 진을 팔도록 한다. 

2. 진 판매소를 지방 치안판사의 관할 안에 두도록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치는 서서히 효과를 발휘해서 1765년경에는 진의 소비를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하죠. 역시 원칙적인 일 처리가 나중에는 더 효과를 보는 법입니다.

18세기까지 진은 단식 증류기(Pot Still)로 증류했고 오늘날의 런던 드라이 진보다 맛이 더 달았습니다. 이건 조잡한 맛과 풍미를 단맛으로 가리려는 것이었죠. 18세기 초반의 런던에서 암시장을 통해 유통된 진은 제대로 된 시설을 못 갖춘 곳에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곳이 1726년에만 1,500여 군데에 이르렀답니다. 이런 허접스러운 증류소에서 생산한 진은 종종 주니퍼 베리 대신 테레빈유나 황산(!)을 섞어서 만들곤 했죠. 1913년에 발간한 웹스터 사전에 특별한 언급 없이 실린 "일반 진(Common Gin)"이란 항목은 테레빈유를 섞어서 착향한 진을 뜻하는 것인데, 이런 형편없는 싸구려 진이 워낙 많이 퍼져 있다 보니 이것을 진의 표준적인 모습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죠.


● 네덜란드의 진, 영국과는 다르다! 영국과는!

진이 영국에서 이렇게 엉망이 되는 동안, 대륙의 진은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제네브르(Jenever), 혹은 쥬네브르(Genever)로 알려진 네덜란드 진(Dutch Gin)은 몰트(Malt)로 만드는 증류주로부터 발전해서 영국의 드라이 진과 확실히 다른 술로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제네브르는 최소한 발아한 대맥(Barely)을 써서 단식 증류기로 만들었고, 기타 곡물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나무통에서 숙성할 때도 있었죠. 그래서 으레 가벼운 맥아 향이 나거나 위스키와 비슷한 향이 나곤 했답니다.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스키담(Schiedam)시는 오랫동안 제네브르 생산지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 제네브르는 일반적으로 알코올 함량이 낮으며, 엄밀히 말하자면 런던 드라이 진 같은 중성주(Neutral Spirits)와는 명확히 다릅니다. "해리 존스의 새롭고 개선된 바텐더 설명서(Harry Johnson's New and Improved Bartender's Manual)"이란 책에는 "19세기에 가장 인기 있었던 술로 알려진 올드 스타일 제네브르(The 'oude' (old) style of Jenever)는 홀랜드 진(Holland Gin), 또는 제네바 진(Geneva Gin)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적혀있습니다.

● 진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

1. 1831년에 아일랜드에서 현대적인 다단식 증류기(Columc Still)가 발명되었고, 이 증류기는 중성주 제조에 매우 효과가 좋았습니다. 다단식 증류기가 발명되면서 가볍고 산뜻하며 부드러운 맛이 나는 진의 제조가 가능해졌고 19세기 후반에 "런던 드라이(London Dry)" 스타일의 진이 탄생합니다.

2. 열대 지역의 영국 식민지에서 진은 유일한 말라리아 치료제였던 키니네(quinine)의 씁쓸한 풍미를 감추려는 용도로 쓰이곤 했습니다. 키니네는 토닉 워터(Tonic Water) 같은 탄산수에 잘 녹았으므로 키니네를 진과 토닉 워터와 혼합한 음료가 생겼고, 이 음료는 오늘날 인기 있는 칵테일인 '진 앤 토닉(Gin and Tonic)', 줄여서 진 토닉의 기원이 되었죠. 오늘날의 토닉 워터에는 키니네가 들어있지 않지만, 키니네 향을 넣기 때문에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제조 방법이 간단한 진은 몰래 밀조하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금주법 시대엔 "눈먼 돼지(Blind Pig)" 혹은 "눈먼 호랑이(Blind Tiger)"라고 불렸던 주류 밀매점에서는 진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금주법이 철폐된 후에 진은 많은 칵테일의 기주(Base Spirit)로써 인기를 누렸고, 전통적인 혼성주의 베이스가 되는 술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4. "슬로 진(Sloe Gin)"은 원래 진에 산사나무의 열매인 슬로(Sloe)를 넣어서 만드는 술이지만, 오늘날엔 대부분 중성주에 향료를 섞어서 만듭니다. 비슷한 종류로 서양 자두(Damson) 같은 과일을 넣어서 만든 담슨 진(Damson gin)도 있죠.

(슬로 진. 우리나라에서 과일주를 만들 때 소주를 붓듯 과일에 진을 부어 만드는 것입니다)

5. 벨기에의 하셀트(Hasselt)에는 국립 진 박물관(The National Gin Museum)이 있으니 유럽 여행을 가시는 분들은 한 번 들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