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마리아쥬

[마리아쥬] 홍어찜에 잘 어울리는 와인은 무엇일까? 신당동 홍어찜 집에서 홍어찜과 와인의 매칭을 실험해보다.

까브드맹 2012. 10. 15. 06:00

홍어찜과 피노 쉐리

1. 홍어

우리나라 음식에서 가장 독특하면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 중 하나가 홍어입니다. 가오리과에 속한 홍어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먹었던 생선으로 그냥 먹지 않고 며칠 동안 실온에서 삭힌 후에 먹는 것으로 유명하죠. 삭힌다는 것은 좋은 균이 착상해서 발효작용을 함으로써 음식에 맛이 들도록 하는 걸 말합니다. 김치를 빨리 익게 하기 위해 따뜻한 상온에 몇 시간 동안 놔두는 것도 삭히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홍어는 삭으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그 이유는 홍어가 연골어류이기 때문입니다. 연골어류는 요소(尿素)를 통해 체내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때문에 몸 안에 요소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 요소는 삭는 동안 암모니아로 변합니다. 따라서 굉장히 독한, 재래식 화장실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나게 되죠. 하지만 암모니아가 소금과 마찬가지로 염기성이기 때문에 홍어는 삭는 과정에서 쉽게 부패하지 않고 않고 발효가 됩니다. 소금을 많이 넣고 만드는 젓갈이 썩지 않고 삭혀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죠. 만약 홍어를 삭히지 않고 바로 먹으면 요소가 암모니아로 아직 변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유의 고약한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홍어
바다에 납짝 엎드린 홍어. 이미지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파일:Okamejei_kenojei_by_OpenCage.jpg

그런데 썩지 않고 삭은 것이라고 하지만 홍어의 냄새는 매우 독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세계의 음식 중에서 냄새가 독하기로 따지면 스웨덴의 슈르스트뢰밍(Surströmming)에 이어 2위라고 하는군요. 참고로 슈르스트뢰밍의 냄새 수치는 8070Au, 삭힌 홍어회는 6230Au라고 합니다. 이렇게 강하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홍어를 먹기 꺼려하지만, 홍어에 맛들이면 이 냄새는 전혀 문제되지 않으며, 오히려 입맛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발효 음식에서 좋은 냄새가 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힌두교도 집에서 쇠고기국을 얻어먹길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청국장 뿐만 아니라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치즈도 마찬가지인데, 예컨데 고르곤졸라(gorgonzola) 같은 블루치즈류는 강렬한 맛 만큼이나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그래도 한 번 맛을 들이면 냄새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물론 블루치즈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그 독특한 고린내(?)가 무척 불쾌하게 느껴지겠지만요.

블루치즈와 빵
빵과 블루치즈. 치즈 안에 들어간 푸른 줄은 푸른곰팡이로 이 곰팡이의 작용에 의해 치즈의 맛이 더욱 깊어집니다.

아무튼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고약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긴 하지만, 홍어가 가진 강렬하고 독특한 맛과 향은 많은 미식가들의 발길을 끌고 있으며, 한 번 빠져들면 거의 중독 단계까지 가게 만들어 버리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 미식의 마지막 단계는 홍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홍어는 보통 홍어회, 홍어찜, 홍어무침, 홍어삼합 등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요리마다 삭힌 정도를 달리 하는 등 음식점마다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데, 무턱대고 오래 삭힌게 좋은 것이 아니라 식당의 노하우에 따라 맛있게 삭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반응형

 

2. 신당동 홍어찜, 회

식당은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지만 정말 맛있는 요리를 내놓는 집은 흔하지 않듯, 홍어 요리를 잘하는 집도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랫동안 다른 식당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집은 더욱 눈에 띄지 않죠. 그런 면에서 신당동 홍어찜, 회 혹은 김희임 홍어찜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은 식당은 무려 40년 이상이나 한 자리에서 홍어찜과 홍어회만 팔아왔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당역 11번 출구를 나와 인근 목재골목 안에 숨어있는(?) 신당동 홍어찜을 잘 찾아 들어가면 독특한 냄새가 먼저 반겨줍니다. 그 냄새는 삭힌 홍어와 이 집에서 직접 빚는 찹쌀 먹걸리에 쓰기 위해 익어가는 누룩에서 나는 냄새죠. 와인 매니아인 저야 홍어와 와인의 매칭을 알아보기 위해 이 집을 찾아왔지만, 단순히 홍어찜이나 회가 드시고 싶어서 오신 분이라면 이 집의 명주인 찹쌀 먹걸리를 꼭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찹쌀과 누룩, 물 만으로 만들어서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와 달리 단 맛이 거의 없는데다가, 부드럽고 깊은 맛을 지녀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는 비교도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막걸리는 단 맛으로 먹는거다!"라고 생각하시는 분께는 좀 익숙치 않은 맛이겠지만, 한 잔, 두 잔 드시다 보면 그 깊은 맛에 빠지게 될 겁니다. 또한 이 집에서 양조한 막걸리를 좀 더 발효해서 만드는 막걸리 식초 또한 별미인데, 홍어찜을 먹을 때 찍어먹는 양념장에 섞여 나오니 함께 맛보시기 바랍니다.

익기 전의 홍어찜
홍어찜을 주문하면 홍어가 양배추와 파 밑에 숨은 채 나옵니다. 어느 정도 쪄진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먹을 수 있습니다.
양배추를 걷어낸 홍어찜
양배추와 파를 걷어내면 홍어찜이 그 모습을 드러내죠.
촉촉하게 쪄진 홍어찜
촉촉하게 쪄진 홍어찜의 모습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이 집의 홍어찜과 홍어회의 맛에 대해서는 제가 이 집을 방문하기 훨씬 전에 수많은 음식 블로거들이 포스트를 작성해서 올려놨으니 그걸 보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저는 이 집의 홍어찜과 함께 맛봤던 와인에 대해서만 적을 예정입니다. 아래의 포스트는 이 집에 대한 내용을 충실하게 작성했다고 보는 글들입니다. 신당동 홍어찜, 회 집을 방문하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밥집] 만화같은.. 비현실적인... 신당동 할머니 홍어찜

 이 집엔 밥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밥집'에 포함시킨 이유는... 막걸리는 ...

blog.naver.com

3. 홍어와 와인 매칭

홍어에 어떤 와인을 마셔야 맛있을까? 라는 고민은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다양한 와인과 음식을 이리저리 짝지워보고 싶어하는 와인 매니아의 묘한 관심 때문에 생긴 고민인데, 마땅한 와인 매칭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블루치즈처럼 강렬하고 향이 강한 음식이므로 쏘떼른(Sauteren) 같은 스위트 화이트 와인과 매칭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어떤 분의 의견처럼 스파이스향이 강한 까르메네르(Carmenere)와인하고 마셔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사실 홍어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레드 와인은 탄닌 때문에 생선회나 찜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함께 먹으면 탄닌의 떫은 맛이 심해지고, 생선 또한 맛이 없어지거든요. 탄닌의 떫은 맛이 매우 적은 피노 누아 와인이 붉은 살의 참치회와 어울리긴 하지만, 같은 생선이라고 해도 참치와 삭힌 홍어는 거리가 꽤 멀지요. 그렇다고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면 홍어의 강렬한 풍미에 밀려버릴 것 같고, 묵직한 샤르도네 와인 역시 견뎌내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머리에 떠오른 것이 스페인의 쉐리 와인이었습니다. 일단 쉐리는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에 충분한 힘이 있는데다, 독특한 방식으로 오랫동안 숙성하면서 생긴 풍미가 홍어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쉐리는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쉐리 종류와 그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노(Fino) : 달지 않으면서 매우 맑고 우아하며 신선한 맛이 납니다. 약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몬티야도(Amontillado) : 피노를 일정 기간 숙성 및 산화시킨 것으로 호박색이며 약간 달고 진한 맛을 지녔습니다. 피노보다 알코올 도수가 2~3도 정도 높습니다.

만자니야(Manzanilla) : 피노와 비슷하지만 생산지인 산루카 데 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 지방이 해안지대이기 때문에 맛과 향이 조금 다릅니다. 바다의 영향 때문이지 바닷 냄새가 좀 더 진하게 납니다.

올로로소(Olorso) : 짙은 황색으로 견과류 풍미가 섞인 진한 맛이 납니다. 알코올 도수는 17~18 정도. 원래 올로로쏘는 달지 않지만 수출하는 것들은 달게 만듭니다.

그 외에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아모로소(Amoroso), 크림 쉐리(Cream Sherry) 등이 있습니다.

원래는 미네랄이나 소금기 같은 짠맛과 향이 더 섞여 있는 만자니야를 함께 먹어보려 했는데, 홍어찜을 먹으러 가는 시점에서 구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조금 파워는 떨어지지만 역시 짭쪼롬한 향과 맛을 지닌 피노 쉐리를 함께 마셔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팔로미노 포도와 피노 쉐리.
팔로미노 포도와 피노 쉐리. 이미지 출처 : http://www.corbisimages.com/Enlargement/AX036000.html

우선 홍어찜을 시키면서 막걸리를 한 주전자 주문했고, 김희임 할머님께 함께 가져온 술을 마셔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습니다. 할머님께서는 마셔도 상관은 없는데, 막걸리 한 주전자를 다 마시고 가져온 술까지 마시면 너무 과음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셨고, 종류가 다른 술을 함께 마시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처음 보는 손님의 건강까지 신경쓰시는 마음씀에 감동을 받았지만, 애초에 목적이 "홍어와 와인을 함께 마셔보자!"인 만큼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바로 함께 먹어 봤습니다.

음식과 술이 어울리냐 안 어울리냐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입에 넣고 씹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불쾌한 맛이 난다면 두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거나 더 좋은 맛이 난다면 어울리는 것이죠. 그리고 홍어찜과 피노 쉐리를 함께 먹으면서 서로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음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는데, 우선 홍어찜과 피노 쉐리의 힘이 비등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거슬리지 않아 입안에 불쾌감을 주지 않더군요. 거기에 피노의 짭쪼름한 맛과 향이 바다를 떠올리게 하면서 내가 지금 바닷생선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줬고, 홍어의 삭힌 내음은 피노의 맛과 향을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음식과 술이 서로 어울리며 맛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상대방을 깔아뭉개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함께 먹으면서 홍어는 홍어대로, 피노는 피노대로 충분히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답니다. 아마 만자니야라면 더 좋은 어울림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꼭 와인과 함께 먹으러 갈 일이 아니더라도 신당동 홍어찜, 회 집은 홍어찜과 자가 제조 막걸리만으로도 충분히 찾아가서 먹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집입니다. 원래 홍어는 겨울에 먹는 것이 제격이라고 하는데, 다가오는 겨울에 홍어 매니아와 홍어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꼭 한 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