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프랑스] 따뜻한 남쪽 땅에서 탄생한 새로운 스타일의 피노 누아 -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Pinot Noir 2009

까브드맹 2011. 3. 26. 12:01
바롱 필립 드 로칠드 피노 누아 2009

1. 피노 누아 와인

피노 누아(Pinot noir)는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로 프랑스 내륙의 부르고뉴에서 주로 재배합니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은 맑고 아름다운 루비색과 체리와 라즈베리, 크랜베리 같은 붉은 과일 향, 송로버섯과 낙엽, 오크 같은 식물성 향, 가죽과 고양이 오줌 같은 동물성 향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향을 나옵니다. 탄닌은 "실키(silky)"하다고 불릴 정도로 부드럽죠. 탄탄한 질감과 섬세하고 우아한 맛, 품격 있으며 그윽한 여운 등등 좋은 와인이 가져야 할 덕목을 두루 갖고 있죠. 물론 모든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상위 10% 정도의 그랑 크뤼 등급과 프리미에 크뤼 등급 와인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와인은 그냥 맛있는 정도지요.

이런 매력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피노 누아로 와인을 만들고 싶은 와인 생산자가 많으며 비단 부르고뉴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곳에서 피노 누아를 많이 재배합니다. 피노 누아가 까다로운 포도라서 재배를 못 할 뿐이지 재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피노 누아를 재배한다고 봐야 할 정도지요. 부르고뉴를 제외하고 피노 누아 재배지로 유명한 곳은 우선 미국의 오레곤(Oregon)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부르고뉴 못지않은 훌륭한 피노 누아 와인을 만들고 있죠. 뉴질랜드 남섬의 오타고(Otago)와 북섬의 마틴보로(Martinborough)에서도 피노 누아를 재배하며 품질 좋은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합니다. 호주와 칠레에서도 피노 누아 와인을 일부 생산하지만, 지명도는 아직 낮은 편입니다.

반응형

 

이렇게 세계 여러 지역에서 피노 누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지만, 아직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오레곤 피노 누아의 품질이 부르고뉴 피노 누아 못지않게 발전해서 각종 시음회와 와인 박람회에서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호적수로 나서지만, 애호가들의 선호도나 떼루아에 따른 와인의 다양성 같은 부분까지 고려해 보면 아직은 밀리는 것이 현실이죠. 품질이 문제가 아니라 와인을 둘러싼 전통과 이야깃거리 등 모든 요소를 따져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와인은 그저 와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부르고뉴 일부로 수 백 년에 걸쳐 이뤄진 역사이며 전설이죠. 이 부분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오레곤 피노 누아가 아무리 훌륭한 맛과 향을 갖추게 된다고 해도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능가할 날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르고뉴를 제외한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 중에도 피노 누아를 재배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은 세 군데입니다. 하나는 부르고뉴처럼 기후가 서늘한 루아르 밸리(Loire Valley)이며, 또 하나는 부르고뉴처럼 내륙에 있는 알자스(Alsace)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엉뚱하게도 남쪽의 해안 지역인 랑그독-루씨옹(Languedoc-Roussillon)이죠. 프랑스의 와인 산지 중에서 가장 남쪽인 랑그독-루씨옹은 기후가 꽤 따뜻해서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피노 누아를 재배하는 것이 뜻밖이긴 하지만, 높은 산지가 많아 고지대에 포도밭을 조성해서 피노 누아를 키우고 있죠.

 

 

생산하는 와인의 대부분이 뱅 드 빼이(Vin de Pays) 등급인 랑그독-루씨옹에서는 품종 제한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며 실험적인 와인도 많이 만듭니다. 랑그독-루씨옹의 피노 누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소량이긴 하지만 재배되고 있으며 그 시도는 성공적입니다. 전체 재배 면적은 아직 적어서 랑그독-루씨옹을 대표하는 포도로 언급되는 일은 없지만, 피노 누아로 만든 랑그독-루씨옹 와인이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으며 몇몇 와인은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들어온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홉노브 피노 누아(Hobnob Pinot Noir)를 들 수 있죠. 홉노브 피노 누아의 시음기는 하단의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피노 누아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도라서 기후가 다르고 토양도 다른 랑그독-루씨옹의 피노 누아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과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가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적인 면과 탄탄하고 파워풀한 남성적인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면, 랑그독의 피노 누아는 처음부터 여성적이든 남성적이든 한쪽 면이 두드러지는 단순한 것이 많습니다. 앞으로 랑그독-루씨옹에서 얼마나 많이 피노 누아를 재배하고 와인으로 생산할진 모르겠지만, 좀 더 맛이 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피노 누아를 찾는 소비자가 늘수록 이곳에서 만드는 피노 누아 와인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남부 프랑스(Sud de France)의 IGP Pay d'Oc(=Vin de Pays d'Oc) 등급 와인인 바롱 필립 드 로칠드 피노 누아는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의 중간적인 성격을 가졌습니다. 마치 피노 누아를 써서 보르도풍의 와인을 만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다르며 새로운 특징을 가진 와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네요.

색은 피노 누아답게 맑고 깨끗하며 영롱한 루비 빛입니다. 하지만 랑그독-루씨옹이 태양 빛이 더 강렬한 남쪽이라서 그런지 부르고뉴 피노 누아보다 색이 더 짙습니다. 처음엔 새콤하다 못해 시큼하기까지 한 향이 올라옵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보다 향이 섬세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피노 누아 와인답게 상당히 다양한 향을 나옵니다. 라즈베리, 체리, 약간의 블랙커런트 같은 과일 향, 장미 같은 꽃향기, 버섯과 삼나무 같은 식물성 향이 주로 나오며 가죽 같은 동물성 향도 조금 나옵니다. 초반에 거칠던 향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안정되면서 꽤 근사해지는데 딸기와 라즈베리,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과 삼나무와 바닐라 같은 그윽한 향이 부드럽게 어울리면서 피어오릅니다.

 

 

부르고뉴 와인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섬세하고 탄탄합니다. 탄닌은 보르도 와인 저가 와인처럼 강하기만 하고 잔뜩 메마른 것이 아니라 매끄러우면서 제법 힘이 있습니다. 전체적인 질감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부드러워지고 은근한 힘이 안으로 계속 유지됩니다. 부르고뉴와 미국, 뉴질랜드의 피노 누아 와인과 맛과 향이 다르며 개성이 있군요. 붉은 과일 풍미가 주로 나오지만, 검은 과일과 오크 같은 나무 풍미가 약간 섞여서 재미난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전체적인 풍미는 라이트 바디의 보르도 와인과 비슷합니다. 적당한 산미가 침샘을 자극해서 와인의 맛을 더해주며 자꾸 음식도 함께 먹고 싶게 만들죠. 여운은 가격에 어울리게 적당히 이어지며 깊이도 생각보다 깊습니다.

향, 질감, 맛, 여운의 네 요소가 균형을 이룹니다. 다만,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을 생각하면 좀 실망할 겁니다. 맛과 향이 매우 다르거든요. 까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대신 피노 누아를 사용해서 만든 보르도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매장에서 1만 원 후반 대라는 괜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데 와인 명가인 바롱 필립 로칠드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확실히 가격보다 훌륭합니다. 절대적인 품질도 제법 괜찮습니다.

레어로 구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와 깔끔한 튀김 요리, 닭고기 요리 등과 잘 어울립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11년 3월 18일 시음했습니다.

 

[프랑스] 또 다른 보졸레 크뤼? - HobNob Pinot Noir 2007

1. 지역에 따른 피노 누아 와인 개인적으로 피노 누아 와인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와 '다른 지역의 피노 누아'로 구분합니다. 부르고뉴 피노 누아가 맑고 깨끗하며 투명한 적색, 이른바 '버건디

aligalsa.tistory.com

※ 쿠팡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