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생산지

[프랑스] 프랑스 남서부(Sud-Ouest France) > 베르쥬락(Bergerac)

까브드맹 2019. 1. 30. 08:00

베르쥬락의 와인 생산지 지도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e/Appellations_bergerac_AOC_version3.png)

1. 보르도 클론(Bordeaux Clone)

프랑스 보르도의 동남쪽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와인 생산지인 남서부 프랑스(South West France)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의 와인과 생산지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보르도와 전혀 다른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의 특성도 다른 지역이며, 또 하나는 보르도에서 주로 재배하는 포도를 키우고 와인의 맛과 향도 거의 흡사한 지역이죠. 후자의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을 보르도 클론이라고 부릅니다.

보르도 클론 와인 생산지 중 많이 알려진 곳은 몽바지악(Monbazillac), 꼬뜨 드 뒤라(Cote de Duras), 뷔제(Buzet), 그리고 베르쥬락입니다. 이곳에서 재배하는 포도는 보르도의 주요 품종과 똑같습니다. 흑포도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청포도로 세미용(Sémillon)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를 주로 재배하죠. 와인은 레드와 화이트를 가리지 않고 보르도 와인과 거의 비슷합니다. 심지어 몽바지악에선 쏘테른(Sautern)처럼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가 생긴 청포도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기도 하죠.

보르도 클론 와인은 보르도 와인과 포도에서 맛과 향까지 거의 같지만, 해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명성은 많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생산지가 있을 정도라는군요. 하지만 그만큼 품질과 가격을 비교할 때 실속이 있습니다. 보르도 와인을 좋아하지만, 가격 때문에 고민이라면 보르도 클론 와인 구매를 고려해볼 만합니다.

 

 

2. 베르쥬락

베르쥬락은 93개의 마을로 구성된 도르도뉴(Dordogne) 주의 베르쥬락 마을 주변의 와인 생산지입니다. 와인 생산지의 경계는 베르쥬락 마을의 행정구역과 거의 일치하며, 동쪽으로 보르도 와인 생산지와 붙어있죠. 1,200명의 와인 생산자가 12,000헥타르의 포도밭을 경작하며, 레드 와인과 드라이 화이트 와인, 미디엄 스위트 화이트 와인, 스위트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을 생산하는 13개의 AOC가 있습니다. 생산 와인은 주로 프랑스에서 소비되며, 15%가량을 영국과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지로 수출합니다.

"Bergerac"이란 이름은 갈리아어인 "braca"에서 유래한 "Bragayrac"에서 온 것이며, 헐렁한 반바지인 브리치즈(breeches) 제작자를 뜻하는 단어랍니다.

 

 

3. 베르쥬락의 역사

보르도와 가까운 와인 생산지인 베르쥬락의 와인 역사는 로마인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시작했습니다.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빠르게 성장했고, 도르도뉴강(River, Dordogne)은 항해가 가능한 지역을 따라 와인 무역의 성장을 도와줬죠.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에도 이곳의 지배자가 된 서고트족(Visigoths)이 워낙 와인을 좋아했기에 베르쥬락의 와인 산업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라센(Saracen) 제국이 침공하고 뒤를 이어 바이킹이 여러 차례 약탈하면서 베르쥬락의 와인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모슬렘들이 포도밭을 갈아엎었고, 북방 침략자의 위협에 노출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신하면서 모든 무역이 중단되었죠.

13세기에 이르러서야 다시 포도 농사와 와인 생산이 이뤄졌고, 1254년에 영국의 헨리 3세가 부여한 특권에 따라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와인을 실으면서 베르쥬락 와인은 다시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3세가 준 특권으로 베르쥬락의 마을들은 집회와 특별세 면제, 방해받지 않고 보르도로 와인을 수송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죠. 14세기에 베르쥬락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와인 품질 기준을 엄격하게 정했습니다.

 

 

영국왕이 베르쥬락 와인에 특권을 줬지만, 보르도 지방은 가론(Garonne)강 하류이면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어귀라는 위치를 활용하고, 베르쥬락 와인보다 자신들의 와인을 먼저 가바레(gabarres)라 부르는 바지선에 싣고 수출하는 식으로 베르쥬락 와인을 견제했습니다. 그러나 기옌(Guyenne) 재판소는 1511년에 베르쥬락 와인이 자유롭게 대서양을 거쳐 수출할 수 있도록 승인했죠. 당시 신교도가 통치하던 베르쥬락 지역은 홀랜드(Holland)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여러 나라와 육로로 거래하기도 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베르쥬락이 속한 기옌 지방은 칼뱅주의가 번영했고, 종교전쟁이 터졌을 때 많은 신교도가 홀랜드 등지로 흩어졌습니다.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의 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베르쥬락 와인의 인기를 치솟게 했고, 베르쥬락 와인 생산자들은 전략을 바꿔서 시장에서 원하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달콤한 디저트 와인 생산에 집중합니다.

20세기에 보르도 와인 생산지의 경계가 그어질 때 프랑스 정부는 보르도 와인 생산지와 지롱드(Gironde)주의 경계가 일치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반적으로 보르도 와인으로 판매하던 베르쥬락 와인은 졸지에 새롭고 독립적인 정체성을 만들어야 했죠. 쌩-테밀리옹(Saint-Emilion) 지역이 있는 지롱드강 우안의 리부른(Libourne) 지역 상인들은 예로부터 베르쥬락 와인을 판매했지만, 자신들이 팔아온 와인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찾기보다 보르도 와인을 먼저 취급하기 시작했죠.

오랫동안 베르쥬락 와인은 보르도 와인보다 촌스럽다고 여겨졌지만, 현재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품질을 높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신세대 생산자들은 보르도의 뛰어나 와인과 견줄 만큼 구조가 좋고 풍미가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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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베르쥬락의 기후와 토양

베르쥬락 지역은 해양성 기후지대에 속합니다. 기후는 보르도가 있는 지롱드 연안보다 안 좋지만, 고도가 높고 포도가 자라기 좋은 석회질 지대가 많죠. 연간 강우일은 평균 116일이며 갠 날은 평균 196일, 갠 날 중 일조량이 강한 날이 73일이나 됩니다. 비는 포도나무가 새로 성장하는 동안 고루 내립니다.

습기 찬 4월의 날씨는 포도의 성장을 촉진하고 이른 봄의 서리 피해를 막아줍니다. 따뜻하고 비교적 건조한 여름 날씨는 포도송이가 자라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이루죠. 베르쥬락 지역의 일조시간은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으로 매월 200시간 이상이어서 포도가 무르익기에 아주 좋습니다. 9월과 10월은 빈티지 점수를 결정하는 중요한 달로 9월의 건조한 날씨는 포도 향을 농축하고, 10월의 적당한 습도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만들게 해주는 노블 롯(Noble Rot)의 발생을 촉진합니다. 11월과 12월의 비는 토양의 습기를 보충해줍니다.

베르쥬락 남동부의 퇴적암은 석회 자갈이 섞인 갈색 토양 지대를 만들며 토양의 두께는 다양합니다. 도르도뉴강 북쪽의 퇴적암은 자갈과 모래, 진흙이 섞여 있죠. 이 퇴적암은 갈색으로 변색한 산성 토양을 만들고, 겉흙 아래엔 광물을 축적해 "트란(tran)"이라 부르는 불침투성 하위층을 만듭니다. 남동쪽의 미세한 규산알루미늄 토양인 부울베느(boulbenes)는 모래로 이뤄졌고, 겉흙에서 진흙이 쓸려나가 영양소가 빈약하죠. 한때 바다였던 서쪽은 석회 자갈이 섞인 갈색토양지대입니다. 이곳의 흙은 지롱드강 우안에 있는 쌩-테밀리옹과 꼬드 드 까스띠용(Cotes de Castillon), 꼬뜨 드 프롱삭(Cotes de Franc)의 와인 생산지에서 볼 수 있는 흙과 성질이 같습니다.

도르도뉴강의 양쪽 강둑엔 신생대 제4기 동안 자갈이 섞인 충적토가 쌓였고, 이 흙은 산성이면서 비옥하지 않고, 물이 잘 빠지죠.

 

 

5. 베르쥬락의 포도 품종

레드 와인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를 섞어서 만들며 때때로 (Côt = Malbec)도 넣습니다. 드물긴 해도 페르 세르배두(Fer Servadou)나 메리이에(Mérille) 포도를 함께 쓸 때도 있죠. 

화이트 와인은 주로 쎄미용과 소비뇽 블랑, 소비뇽 그리(Sauvignon Gris), 뮈스까델(Muscadelle)을 사용합니다. 우니 블랑(Ugni Blanc)과 옹당(Ondenc), 슈냉 블랑(Chenin blanc)도 때때로 넣습니다. 이런 조합은 과일 향을 풍기는 힘차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 향이 풍부하고 맛이 강하며 조금 달거나 달콤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게 해주죠.

6. 베르쥬락의 주요 아펠라씨옹

베르쥬락 지역은 보르도 클론 생산지 중에서 면적이 꽤 넓습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둘 다 생산하지만, 국내에선 주로 레드 와인을 볼 수 있죠.

1) 베르쥬락(Bergerac) AOC

비교적 일찍 마실 수 있는 레드 와인과 드라이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생산합니다.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을 정해진 비율 없이 섞어서 만드는 베르쥬락 섹(Bergerac Sec)은 힘찬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죠.

2) 꼬뜨 드 베르쥬락(Côtes de Bergerac) AOC

와인 저장고에서 몇 년 동안 숙성한 후에 맛과 향이 최고조로 달하는 부드럽고 가벼운 고급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3) 몽트라벨(Montravel) AOC

레드 와인과 소비뇽 블랑 와인을 숙성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4) 오-몽트라벨(Haut-Montravel) AOC

세미용으로 스위트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5) 꼬뜨 드 몽트라벨(Côtes de Montravel) AOC

세미용으로 스위트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6) 몽바지악(Monbazillac) AOC

노블 롯에 걸린 포도로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화이트 디저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1993년부터 손으로 포도를 선별 수확하면서 평균 품질이 올라갔죠. 어린 와인은 쏘테른보다 생기가 넘치지만, 숙성한 와인은 호박색을 띠고 견과류 향이 나옵니다.

7) 뻬샤르망(Pécharmant) AOC

적당한 기간 보관할 수 있는 풀 바디 레드 와인을 생산합니다.

8) 로제트(Rosette) AOC

베르쥬락 지역에서 제일 작은 지역으로 단맛이 약간 감도는 섬세한 화이트 와인과 스위트 화이트 와인 생산을 생산합니다.

9) 소시냑(Saussignac) AOC

고집 센 양조자들이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화이트 디저트 와인 생산하지만, 생산량은 연간 수천 상자에 불과합니다.

 

 

7.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과 베르쥬락 와인

와인 시장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베르쥬락 와인이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프랑소아 미테랑(Franois Maurice Marie Mitterrand) 전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열렸던 프랑스 파리 엑스포에서 리셉션 와인으로 베르쥬락 화이트 와인이 나왔죠. 미테랑 대통령의 고향은 프랑스 서남부의 자낙(Jarnac)인데, 여기는 베르쥬락과 가까운 곳입니다. 그래서 미테랑 대통령은 베르쥬락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리셉션에서 베르쥬락 와인을 선정한 모양입니다.

베르쥬락 와인은 2000년 프랑스 서울 박람회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때 방한한 자크 시라크(Jacques Rene Chirac) 프랑스 대통령의 환영 연회에서 레드 와인인 이봉 모 세뇌르 베르쥬락(Yvon Mau Seigneurs de Bergerac)가 만찬주로 나왔죠. 이 와인은 퍼플과 루비의 중간 색을 띠며, 검은 과일 향과 비단처럼 부드러운 묵직한 탄닌 맛이 조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봉 모 세뇌르 베르쥬락(Yvon Mau Seigneurs de Bergerac) 와인
(이미지 출처 : http://www.yvon-mau.com/image/vintage/198/seigneurs-de-bergerac-rouge-bo uteille-fiche.png)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3. 영문 위키피디아 베르쥬락 와인 항목

4.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