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랑스 곳곳에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를 제외하곤 보기 힘든 품종, "흘러간 세기의 위대한 여행자(un grand voyageur des siecles passes, Les Mot de la vigne et du vin)”라 일컬어지는 포도. 그러나 신대륙에서 다시 찬란하게 부활한 품종. 바로 말벡입니다.
1. 말벡의 특성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지만 현재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진하고 선명한 색, 적당한 산도, 부드러운 과일 향으로 마시기 무난한 레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죠. 꼬(Cot), 또는 프레삭(Pressac)이라고도 부르며, 프랑스 서남부의 까오르(Cahors)에선 오쎄후아(Auxerrois)라는 별칭으로 부릅니다.
보르도에서 말벡은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에 밀려 점차 재배지가 줄고 있습니다. 루아르 밸리에서도 예전엔 말벡을 많이 길렀지만, 점차 쇠퇴해서 지금은 재배량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재배지가 얼마 남지 않아 가메(Gamay)와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으로 와인을 만들 때 약간 섞는 정도입니다. "흘러간 세기의 위대한 여행자"라는 묘사는 이런 말벡의 쇠퇴를 제대로 보여주는 표현이죠.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 Jr.는
“2015년경이면 말벡 품종으로 만든 아르헨티나 와인의 명성이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될 것이다. 포도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말벡은 아르헨티나에서 그 위대성을 입증받고 있다. 현재도 아르헨티나에선 값싸고 맛 좋은 말벡과 고지대 포도원에서 생산되는 복합적이고 강건한 말벡 등 두 종류 와인들이 나오고 있지만 2015년에는 말벡이 고급 포도 품종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다.”
라고 평가하며 말벡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파커의 예측대로 말벡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고, 아르헨티나 와인 산업은 말벡 와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산 말벡 와인은 일반 와인이든 고급 와인이든 와인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2. 말벡의 역사
말벡의 이름에 관한 가장 유명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는 프랑스로 말벡을 가져온 헝가리 농부의 이름을 따서 포도 이름이 정해졌다는 겁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와인 학자들은 말벡의 원래 이름이 꼬(Côt)이고, 부르고뉴 북쪽 지방에서 유래했다는 걸 많은 증거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말벡은 까오르에선 오쎄후아, 또는 꼬 누아(Côt Noir)라고 부르며, 다른 지역에선 프레삭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비슷하지만 말벡 아르장떼(Malbec argenté)는 말벡이 아니고,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아부리우(Abouriou) 포도입니다. 동의어의 유사성 때문에 말벡은 오쎼후아 블랑(Auxerrois blanc)과 혼동을 일으키지만 두 포도 역시 전혀 다른 품종입니다.
말벡 와인은 향이 진하고 섬세하며 부드럽고 빨리 숙성합니다. 그러나 곰팡이와 냉해에 약해서 재배하기 까다롭고 수명도 길지 못하죠. 와인이 빨리 숙성하는 만큼 장기 숙성도 어려운 편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생산량이 줄곧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1956년 보르도가 서리로 큰 피해를 보았을 때 말벡의 75%가 얼어 죽으면서 보르도에서 말벡은 주역의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까오르도 똑같이 피해를 당하여서 포도원이 황폐해졌지만, 말벡을 70% 이상 사용해야 하는 AOC 규정에 따라 포도 재배자들이 다시 말벡을 심었고, 말벡 중심의 특별한 맛과 향으로 인기를 유지하게 되었죠.
3. 말벡 포도 재배지
1) 프랑스
말벡은 까베르네 소비뇽처럼 탄닌이 강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다른 품종을 섞어서 말벡 와인을 만들죠. 주로 메를로를 혼합합니다.
말벡이 쇠퇴한 보르도와 달리 서남부의 까오르에선 말벡이 아직도 주역입니다. 2,000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재배한 말벡으로 검붉은 빛을 띠는 이른바 '검은 와인'을 만들죠. AOC 규정상 오쎼후아, 즉 말벡을 70% 이상 사용하고 메를로와 따나(Tannat)를 넣어서 와인을 만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100% 말벡으로 만든 와인도 나옵니다.
반대로 보르도의 메독(Médoc), 오-메독(Haut-Médoc), 쌩-테밀리옹(St-Émillion), 꼬뜨 드 부르(Cotes de Bourg), 블라예(Blaye) 등지에선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로 와인을 만들 때 말벡을 소량 섞습니다.
2) 아르헨티나
남미에서 말벡은 그 어느 곳보다 번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칠레(1,500헥타르)와 아르헨티나(10,000헥타르)죠. 안데스산맥 동쪽에 있는 무공해 청정지역인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주는 말벡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곳입니다. 산 중턱의 포도밭은 햇빛을 가득 받을 수 있고,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물이 만드는 멘도사강의 천연수를 컴퓨터로 조절되는 관개시설을 통해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멘도사의 말벡 와인은 전 세계에서 최고급 와인으로 인정받습니다.
3) 미국
금주령 이전에 말벡을 많이 재배했지만, 주로 벌크와인 양조에 사용했습니다. 금주령 이후엔 보르도 블렌딩 스타일 와인인 메리티지(Meritage)의 생산에 사용되면서 재배지가 늘었습니다.
4) 기타 국가
호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말벡을 재배하지만, 주목할 만한 와인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4. 말벡 와인의 향
와인 전문가들이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손꼽는 멘도사의 말벡 와인은 체리와 서양 자두, 블랙베리, 향신료, 커피, 초콜릿, 바닐라, 바이올렛 꽃 등의 향이 나옵니다. 농익은 포도로 만들면 건포도 향을 풍기기도 하죠. 까오르의 말벡 와인은 상대적으로 그을린 나무 향이 강합니다.
5. 말백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소고기 스테이크와 바비큐 같은 붉은 육류 요리와 돼지고기, 닭고기, 파스타, 반경성 치즈에 잘 어울립니다. 과일 풍미가 많은 남미의 말벡 와인은 조금 달게 느껴져서 불고기와 갈비처럼 단 양념이 가미된 한국 음식에 잘 맞고, 중국 요리도 잘 맞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