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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모냐? 도냐? 결론은 모! - Bodega y Cavas de Weinert Merlot 2000

까브드맹 2020. 3. 12. 11:58

Bodega y Cavas de Weinert Merlot 2000

보데가 이 까바스 데 웨이너트(Bodega y Cavas de Weinert)의 웨이너트 메를로(Weinert Merlot) 2000은 아르헨티나의 멘도사(Mendoza)주에 있는 루한 데 꾸요(Luján de Cuyo) 지역에서 재배한 메를로 포도로 재배한 레드 와인입니다.

1. 와인 생산자

아르헨티나에는 혼합 와인용 벌크와인만 판매하는 수백 개의 소규모 생산자들을 포함해서 모두 2천여 개에 달하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와인산업은 소수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페냐플로르(Penaflor) 그룹과 보데가스 에스메랄다(Bodegas Esmeralda)를 들 수 있습니다.

페냐플로르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와인기업 중 하나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는 보데가스 트라피체(Bodegas Trapiche)도 페냐플로르에 속한 여러 회사 중 하나입니다. 프리미엄 와인에 초점을 맞춘 보데가스 에스메랄다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혁신적인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카테나 자파타(Catena Zapata)의 모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와인은 늘 아르헨티나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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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탁월한 와인을 생산해온 곳을 고르라면 보데가 이 까바스 데 웨이너트가 빠질 수 없습니다. 보데가 이 까바스 데 웨이너트는 베르나르도 웨이너트(Bernardo C. Weinert)가 1975년에 ‘고품격 와인’을 내세우며 설립한 와이너리입니다. 베르나르도는 전통과 신기원이 교차하는 와이너리를 세우려고 당대 최고의 와인 양조가이며 농업 전문가인 라울 데 라 모타(Raul de la Mota)와 함께 와인 생산지에 관한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와인업계에서 현대적인 와인 양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울 데 라 모타는 아르헨티나에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양조학자라고 평가받는 인물이죠.

두 사람은 오랜 연구 끝에 결국 천혜의 환경 이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멘도사주의 루한 데 꾸요를 선택해서 포도원을 설립합니다. 얼마 안 있어 충적토와 모래, 자갈이 잘 어우러진 포도밭에서 프랑스 보르도에서 가져온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말벡(Malbec), 부르고뉴에서 가져온 샤르도네(Chardonnay)가 번성하며 자라게 되죠.

보데가 웨이너트가 설립된 1975년의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량은 지금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품질은 보잘것없었죠. 역사가 오래된 품종인 크리올라(Criolla)와 쎄레사(Cereza) 같은 포도로 내수용 테이블 와인과 포도 농축액을 생산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평범한 내수용 와인을 만들던 70년대의 다른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자와 다르게 보데가 웨이너트는 처음부터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엄격하게 제한했고, 손 수확과 인력을 통한 선별 과정을 도입했습니다. 이러면 와인 품질은 좋아지지만, 생산 가격은 올라가죠. 당시 아르헨티나 와인업계의 상황을 볼 때 이런 정책은 매우 선구적이며 도전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한 후 세상에 내어놓은 웨이너트 말벡 에스트랄라(Weinert Malbec Estrella) 1977이 말벡이 가진 온갖 특징을 유감없이 표현한 희대의 역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수많은 와인 애호가를 매료시켰고, 이후 보데가 웨이너트는 아르헨티나 멘도사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와인 전문서적에 소개됩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와인 역사상 최초로 100% 말벡 와인을 선보인 보데가 웨이너트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아르헨티나 와인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죠.

2. 와인 양조

보데가 웨이너트처럼 한결같이 함축적이고 복합적이며 맛과 향이 진한 와인을 생산하는 아르헨티나 와이너리는 찾기 힘듭니다. 섬세함을 자랑하는 유럽 와인에 남미 특유의 향긋함과 경쾌함을 가미한 웨이너트의 와인은 프랑스 뽀므롤(Pomerol)이나 생-떼밀리옹(St.-Emillion) 와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삼나무 향과 가죽 향을 풍기는 웨이너트의 와인들은 오래된 빈티지의 고급 보르도 와인으로 착각하기 쉬울 정도이죠. 웨이너트 메를로 2000 역시 그런 느낌을 주는 와인입니다.

루한 데 꾸요의 우가르테체(Ugarteche)와 룬눈타(Lunlunta), 드럼몬드(Drummond) 지구에서 자라는 최소 수령 15~25년의 메를로 포도로 만들었습니다. 손으로 수확해서 20㎏ 용량의 작은 바구니에 담아 양조장으로 옮긴 다음 줄기를 제거하고 콘크리트 발효조에 담아 7~9일 동안 껍질과 씨에서 색소와 탄닌을 뽑아내면서 알코올 발효했죠. 껍질과 씨를 제거한 후에도 알코올 발효를 5~10일가량 추가로 진행했습니다. 발효가 다 끝나면 2000~6000 파운드 크기의 오크통에 담아 최소 2년 6개월에서 3년 동안 숙성합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Bodega y Cavas de Weinert Merlot 2000의 색

20년이란 세월을 보여주는 듯 완연한 가넷 색입니다. 레드 커런트와 레드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이 가득한 가운데 연한 삼나무 향이 퍼집니다. 아주 좋은 가죽 향이 가득하고 가을이 생각나는 흙 향과 두엄 냄새가 올라옵니다. 나중엔 말린 과일 향도 느껴집니다. 오래된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향들입니다.

질감이 순면처럼 보풀보풀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오래되었어도 구조는 나쁘지 않습니다. 드라이하며 산도가 매우 강하고 풍성합니다. 시고 쓰며 과일의 단 풍미가 입안에 남습니다. 탄닌 느낌과 함께 삼나무와 살짝 그을린 나무 느낌도 있습니다. 병에서 오래 숙성된 와인의 맛과 향이 마치 가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나중엔 서양자두의 단맛이 나옵니다. 여운은 있으나 그리 길진 않군요. 역시 가격은 정직합니다. 느낌은 좋습니다.

 

 

긴 세월 동안 잘 익은 탄닌, 아직도 새콤하고 풍성한 산미, 강하지만 잘 익은 13.5%의 알코올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룹니다. 오랜 시간 잘 익은 와인이 풍기는 숙성 향도 뛰어납니다.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양 꼬치, 남미식 꼬치구이인 슈하스코(Churrasco), 고기 스튜, 그릴에 구운 채소 요리, 숙성 치즈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0년 3월 11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