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연대기

[술 연대기] 1201년 ~ 1400년

Bar10The 2019. 5. 6. 23:09

백년전쟁
(이미지출처.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d/Hundred_years_war_collage.jpg/600px-Hundred_years_war_collage.jpg)

1. 13세기(1201년~1300년)

밀가루 도입이 수월해지자 찌고 굽고 튀기는 조리 기술이 발전해서 13세기부터 일본의 면 문화는 우동과 소바의 양대 음식으로 발전했습니다.

13세기 초에 나타난 칭기즈칸은 가장 좁은 의미로 볼 때 순수한 몽골인 출신입니다. 칭기즈칸은 당시 제각기 흩어져 있던 몽골인 부족을 통합했고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13세기 몽골족이었던 칭기즈칸은 여러 민족으로 나뉘어 있던 몽골을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이어서 서아시아와 남러시아를 정복하며 세력을 넓혀 갔습니다. 칭기즈칸의 후손 역시 중국의 금과 송을 멸망시키며 아시아와 동유럽을 통합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13세기에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하면서 유럽에서 중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세력권을 형성했습니다.

13세기 러시아를 침공한 몽골인들은 당시에도 안장 밑에 고기를 넣고 다니며 말 위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13세기말 몽골의 전성기가 지나고 이슬람 세력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추(button) : 옷 한쪽 가장자리에 고리, 또는 구멍을 만들고 거기에 단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밀어 넣는 방식은 13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단추의 영어 단어 버튼(button)은 13세기에 프랑스어 부통(boutton)에서 나온 말입니다.

란제리(lingerie) : 13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아마를 본격적으로 재배했습니다.

일본에선 13세기 이래 누룩곰팡이를 판매하는 업종을 ‘모야시’라고 불렀습니다.

증류(Distillation) : 연금술사 빌라 노바(Amold de Villa Nova, 혹은 Arnnaud Villeneuve)와 그의 제자 레이몬드 룰리(Raymond Lully)에 의한 증류를 최초의 와인 증류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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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에 원나라가 고려와 강화 조약을 맺고 실질적으로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한반도에 진출한 후에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안동에 병참기지를 두었을 때, 몽고군을 통하여 알코올 증류를 이용한 소주 제조법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13세기에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 대학교 의학 교수였던 빌뇌브(Villeneuve) 교수가 자비르가 발견했던 알코올을 극적으로 다시 찾아냈습니다.

와인(Wine) : 13세기부터 북유럽의 상인들이 라로셀 항구에서 소금과 밀을 실어가면서 배에 공간이 있으면 지방의 화이트 와인을 실어가는 정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와인 :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 건축물의 더할 나위 없는 보물로 알려져 있는 노트르담 드 랭스 주교좌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에 샴페인의 역사를 말해주는 스테인글라스가 있다고 합니다. 이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글라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마르크 샤갈에 의해 제작된 “샤갈 블루”라 불리는 청색을 기조로 한 작품입니다.

브랜디(Brandy) : 13세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문헌에는 와인을 끓여서 일종의 증류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1208년. 와인 : 오랫동안 전쟁을 계속해오던 피렌체 군과 시에나 군은 하나의 안을 내어 전쟁의 해결을 꾀했습니다. 어느 날 양쪽 도시에서 닭 울음소리를 신호로 출발하여 양쪽의 기사가 만나는 곳을 경계선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렌체 군의 닭인 갈로 네로는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아침을 기다리지 않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피렌체 군은 키안티(Chianti)를 포함한 넓은 영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갈로 네로는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고, 검은 닭은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221년. 오리스(Orris) :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 이 해에 피렌체에 세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n Novella) 약국 겸 향수 제조점은 붓꽃의 뿌리줄기를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1224년~1308년. 한국 전통주 : 우리나라 문헌으로 술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 충렬왕 때 쓰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231년~1270년 : 몽골의 고려 침입. 고려 고종 18년에 몽고로부터 동락(유주류)이 유입되었습니다.

 

 

1241년 : 고려 고종 28년 강행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온 백주가 오늘날의 탁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국이상국집》 “발효된 밑술은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밑술을 압착하여 청주를 얻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63년.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달모어(Dalmore) : 이 해에 맥킨지(Mackenzie) 일족의 우두머리인 콜린 오브 킨테일(Colin of Kintail)은 사냥을 나선 스코틀랜드의 왕 알렉산더 3세에게 달려드는 수사슴(Stag)을 창으로 찔러 그의 생명을 구합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엘일린 도난(Eilean Donan) 영지와 루시오 난 유로(Luceo Non Uro)라는 칭호, 그리고 12개의 촉이 달린 사슴뿔을 맥킨지 일족의 문장으로 하사 받았습니다. 달모어 위스키에 새겨진 사슴 모습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266년. 진(Gin) : 네덜란드 인 야코브 판 마를란트(Jacob van Maerlant)가 《꽃의 자연적 특성(Der Naturen Bloeme)》을 펴내면서 주니퍼 풍미의 술과 관련된 약효에 대해 썼습니다. 원래 이 책은 벨기에인 토마스 판 칸팀프러(Thomas van Cantimpre)가 쓴 《자연 현상에 대한 고찰(Liber de Natura Rerum)》의 내용을 번역한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1270년대. 브랜디. 코냑 프라팡(Cognac Frapin) : 프라팡 집안은 이때부터 코냑 지방에 거주하면서 500년 동안 그랑드 샹파뉴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증류한 명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70년 : 고려 원종이 개경으로 환도하려고 하자 삼별초는 강화, 진도, 제주를 거쳐 대몽항쟁을 벌입니다.

1271년~1368년 :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기간은 100년이 채 안 됩니다

원의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이 지은 《포도주부(蒲桃酒賦)》에는 고려 포도주의 기록이 나옵니다.

《포도주부》의 서문에 의하면 “류광보에게서 들은 말인데 그의 고향인 안읍에는 포도가 생산되면서 포도주 빚는 방법을 잘 몰라서 일반 조주법에 따라 미주에 포도즙을 섞어서 빚으므로 맛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탁우년간(1213년~1217년)에 이웃 마을의 어느 농가에서 포도를 거두어 왔는데 때마침 유적이 닥쳐와서 산속으로 달아났다가 1개월쯤 지나서 돌아와 보니 포도즙이 소쿠리 밑에 있던 병에 떨어져 괴이게 되니 훌륭한 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집에서 얼마동안 비법으로 하고 있었으나 이것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과즙으로 빚는 일반 과실주입니다.

1273년 :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일본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1274년 : 여몽 연합군의 제1차 일본 정벌이 있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로부터 상존주(특급 청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전통주(증류식 소주) :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때에 고려에 진주한 몽고군은 그들의 본당이었던 개성과 전초기지였던 안동, 제주도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증류식 소주는 불사르다는 뜻의 소(燒)와 세 번 빚은 술을 뜻하는 주(酎)를 씁니다.

1276년. 스카치위스키 : 토마스 세비지경이 잉글랜드 군대의 침공에 맞서 싸울 때 자신의 군대에 uisce beahta를 마시게 한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스코틀랜드보다 아일랜드에서 먼저 위스키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1277년. 전통주(증류식 소주) : 고려 충렬왕 3년은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시기이고, 음용이 시작된 시기는 충숙왕대에서 충혜왕대 사이라고 봅니다.

1280년대. 증류 : 중반 볼로냐의 의사인 타데오 알테로티(Taddeo Alderotti)가 《의료조언(Consilia medicinalia)》이라는 책을 내면서 증류주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습니다. 알데로티는 ‘생명의 물(aqua vita)’이라고 부르는 증류액을 만드는 과정을 책에 수록했고, 이 단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281년 : 여몽 연합군의 제2차 일본 정벌이 시작되었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했습니다.

여몽 연합군은 강한 태풍과 거친 풍랑에 일본 정벌에 실패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 준 태풍을 감사히 여기며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뜻으로 카미카제(神風)라 불렀습니다.

1288년 : 고려 충렬왕 14년에 처음으로 염전에서 세금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1295년경. 국수(Noodle) :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이 면 요리를 먹는 걸 보고 이를 1295년경 베네치아로 들여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1300년. 사이다(Cider) : 사과 양조에 참고할 만한 문헌이 켄트, 에식스, 데번, 서식스에서 버킹엄셔, 글로스터셔, 헤리파드셔, 요크셔에 이르기까지 영국 전역에 퍼졌습니다.

맥주(Beer) : 유럽에서 홉이 양조의 원료로 널리 사용되면서 그루이트(gruit, 허브 혼합물)를 밀어내고 주요 풍미 재료로 부상했습니다.

 

 

2. 14세기(1301년~1400년)

14세기에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 계승에 참견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영국이 프랑스 경제를 어렵게 하기 위해 양털 공급을 중단했고, 프랑스는 프랑스 내에 있던 영국 땅을 뺏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4세기 후반 원나라 말기에 대규모 민중 반란이 일어났고, 이 반란 세력 중에서 주원장이라는 인물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가 부를 쌓으면서 14세기 이후에 르네상스라는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14세기 이후의 르네상스 번영기 덕분에 이탈리아와 독일의 도시는 경제적 잉여가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비스킷(biscuit) : 14세기 베스퀴트가 영어로 들어가 비스킷이 되었을 때 '두 번 굽다'는 의미는 사라지고, 오늘날처럼 '구워서 딱딱한 거나 바삭바삭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재킷(jacket) : 이 이름은 14세기에 프랑스 농부 전체를 가리킨 일종의 속명이기도 했습니다.

와인. 브로커(broker) : 브로커(broker)의 어원은 고대 프랑스어 브로셔(brochier)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브로셔의 의미는 '작은 나무통에 구멍을 내다'였습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브로쉬에(brocheor)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앵글로-노르만어인 브로쿠르(brocour)를 거쳐 14세기말에 영어 브로커가 되었습니다. 초기에 브로커는 작은 나무통에 구멍을 내고 그 속에 든 포도주의 맛을 보고 파는 포도주 중개업자들만 의미했습니다. 옛날 포도주만 팔던 상인이 이제 거래되는 모든 물품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드레스(Dress) : 14세기말부터 '옷을 입다'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sex) : '남성이나 여성인 상태'라는 뜻의 명사 섹수스(sexus)가 파생되었고, 14세기말 지금과 같은 형태로 영어에 들어갔습니다.

패션(fashion) : 14세기 후반에는 제작, 치장, 방식을 가리켰습니다.

몽골 스테이크(Steak) : 이 요리는 14~15세기에 독일의 함부르크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14세기 유럽에서 포도주맥주는 물 대신 마시는 음료였습니다.

고려 중엽에 중국으로부터 중산주(특급 청주류)가 유입되었습니다.

증류 :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증류법을 이용해서 의학용 치료제를 만들었습니다.

와인 : 아비뇽은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교황 클레멘트 5세 이후 1377년까지 일곱 명의 교황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아비뇽 북쪽으로 5~10km 떨어진 론강 유역의 샤토네프 뒤 파프(Châteauneuf du Pape)는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으로 론 지방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입니다.

14세기 초에는 리부른 항구를 통해서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영국이 쌩-테밀리옹(Saint-Émilion) 와인을 영국과 유럽 쪽에 소개했는데, 이를 통해 쌩-테밀리옹 와인이 세계적인 와인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물러가고 아키텐이 쌩-테밀리옹 지역을 점령하면서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이곳의 포도밭은 한때 암흑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위스키 : 14세기 후반이 되자 위스키가 영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증류주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인 아쿠아 비태(Aqua vitae)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보드카(Vodka) : 14세기경부터 러시아에서 만들기 시작하여 북유럽 여러 국가에서 애용되며, 최근에는 미국도 보드카 생산 대국이 되었습니다. 14세기경부터 대중음료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1302년. 와인 : 고려 충렬왕 28년에 원나라로부터 서역식 포도주가 유입되었습니다. 원나라로부터 백주(제차류)도 유입되었습니다.

1321년. 와인 : 샤토네프 뒤 파프의 와인 산업은 이 해에 교황 요한 22세가 아비뇽으로부터 포도나무를 가져와 이곳에 심은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1325년. 용설란(Century Plant) : 토날 마틀나우아틸 코디체(Tonal Matlnahuatil Codice)를 통해 추측컨대 용설란이 신성시되었습니다.

 

 

1330년대. 드레스(Dress) : 드레세는 영어로 들어가 드레스로 바뀌었습니다.

1336년. 와인 : 시토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부르고뉴의 수도원 건물인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안에 수도원 와이너리를 세웠습니다.

1337년~1453년 :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를 공격하면서 백년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여 년 동안 전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1339년 : 백년전쟁이 시작된 1339년 이전의 영국은 원료 수출국으로 전형적인 후진국이었습니다.

1340년. : 주니퍼가 다른 종류의 향료와 함께 흑사병의 퇴치에 이용되었습니다.

1347년~1350년. 아쿠아 비태((Aqua vitae) :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명의 물'을 처방해 환자들의 기분을 낫게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1350년 : 1350년 이후로 플랑드르의 기술자가 영국으로 건너오면서 모직물 제품이 영국에서 제조되어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1351년~1374년 :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시작되어 친원파를 숙청하고 신돈을 등용했으며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습니다. 관제를 복구하여 몽고풍을 일소하고 쌍성총관부를 탈환했으며, 신진사대부를 등용했습니다.

1358년. 재킷(jacket) : 5월 28일에 프랑스 북부 보베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폭동이 자크리의 난입니다. 그러나 다른 도시들과 협력하지 못하고 내분마저 일어나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청어(herring) : 청어잡이로 번 돈 보다 기름 값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 해에 빌럼 벤켈소어라는 네덜란드의 한 어민이 특수한 칼을 사용한 염장법을 개발했습니다.

 

 

1359년~1361년 : 홍건적이 침입하여 이를 토벌하는 동안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1360년 : 4월 13일 영국은 대규모 군사를 데리고 프랑스의 랭스를 점령했습니다.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면서 영국군이 어처구니없게 졌다는 소식이 영국에 전해졌습니다.

1368년 :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나라를 세워 자신을 홍무제라고 선언했습니다.

1375년 : 마르코 폴로의 글이 유럽인의 지리 지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 이 해에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제작된 유럽 최초의 세계지도입니다.

1376년 : 최영이 왜구를 정벌했습니다.

1377년 :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인쇄되었습니다.

1385년. 와인 : 이태리의 마르케시 안티노리(Marchesi Antinori)가 발 디 페사(Val di Pesa)의 산 카시아노(San Casciano) 마을에 있는 테누타 디 티냐넬로(Tenuta di Tignanello) 포도원에서 와인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훗날 1971년에 안티노리는 자사 최초의 슈퍼 투스칸 와인에 티냐넬로(Tignanello)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1386년. 보드카 : 러시아의 문헌에 보드카가 등장합니다.

1388년 : 위화도 회군은 원명교체기에 요동을 정벌하러 출병한 이성계가 회군한 사건입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는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고려 우왕 때 명나라는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달라며 위협했습니다.

1391년 : 고려에서 과전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과전법은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실시한 토지제도로 조선 초기 양반 관료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이룹니다.

 

 

1391년~1482년 : 콜럼버스는 이 사이에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392년 :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습니다. 혁명파 신진사대부에 의해 이성계가 즉위했고, 조선왕조의 설계는 정도전이 담당했습니다.

1394년 : 태조가 오늘날의 서울인 한양으로 천도했습니다.

1397년 :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북유럽 3국이 칼마르 동맹을 결성하며 연합군이 탄생했습니다.

1398년 : 주원장이 죽고 손주인 건문제가 2대 황제로 즉위하면서(전문제의 부친은 요절) 강력한 힘을 지닌 각지의 왕(주원장의 자식들)과 대립했습니다.

와인 : 초서의 작품인 캔터베리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던 중 이 해에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가 초서에게 평생 연간 252갤런의 와인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1400년경 : 조선시대 주종에 대한 술 이름이나 빚는 법을 수록한 최초의 문헌은 양생∙식료∙위행∙영양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1400년대 초엽에 주권이 지은 《활인심(活人心)》으로 서여주, 지황주, 무술주의 3종 술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증류 : 1400년대 초에 이르자 사람들은 에탄올에 깊이 빠졌습니다.

와인 : 보쥬의 통치자 에드워드가 부르봉 왕가에 자신의 땅인 보졸레(Beaujolais) 지역을 헌납했습니다.

보드카 : 보드카의 탄생지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폴란드가 각각 자국의 술이라 주장하며 끊임없이 논쟁 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1400년경에 이미 곡물을 재료로 해서 만든 투명하고 도수 높은 증류주가 그 주변 전역에서 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400년 : 2대 정종대에 왕자의 난이 일어납니다. 1398년에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고, 1400년에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통해 태조 이성계의 5남인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했고, 정종은 아우인 이방원을 다음 왕위 계승자로 지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