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프랑스] 오가닉 농법으로 구현된 자연과 전통의 맛 - Perrin & Fils Cotes du Rhone Villages Cairanne Peyre Blanche 2009

까브드맹 2013. 11. 11. 06:00

페랑 에 피스 꼬뜨 뒤 론 빌라주 깨란느 뻬이어 블랑슈 2009

1. 페랑 가문(Famille Perrin)

로버트 파커가 "남부 론에서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와이너리"라고 극찬한 샤토 드 보카스텔(Chateau de Beaucastel)을 소유한 페랑 가문이 "남부 론 와인의 발전을 이끄는 와인 생산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가문은 남부 론 최고의 떼루아를 보여주는 포도밭을 여럿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 품종을 모두 재배하는 고집과 순간 살균(Flash Pasteurization) 같은 현대적인 양조 방식, 유기농 재배를 결합하여 남부 론을 대표하는 와인들을 생산하기 때문이죠.

페랑 가문은 샤토 드 보카스텔에 1951년부터 오가닉 농업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포도를 재배할 때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와인을 만들 때 산화 방지를 위해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이산화황(SO2) 조차 쓰지 않죠. 대신 포도를 으깬 머스트를 80℃에서 1분간 데운 다음 식히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방법으로 산화를 촉진하는 세균을 죽여서 산화방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페랑 가문에서 특허출원 했기에 현재 샤토 드 보까스텔과 페렝 가문의 다른 와인에서만 사용됩니다.

페랑 가문은 자신들이 생산한 와인의 품질이 높게 평가받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절대적인 토양 존중, 양조 기술 방식에 대한 전념, 오가닉 농법이야말로 떼루아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은 그들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죠. 여기에 가족들이 가진 재능의 조화는 페랑 가문 특유의 전문성을 이어가도록 해줍니다. 자연과 전통은 다섯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져 온 페랑 가문의 와인에 대한 열정과 접근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죠.

현재 페랑 가문은 샤토 드 보카스텔 샤토네프 뒤 빠프 외에 도멘 뒤 끌로 데 뚜렐르(Domaine du Clos des Tourelles), 그뤼 엔 떼루아(Crus & Terroirs), 라 비에이유 페름(La Vieille Ferme)이란 다양한 브랜드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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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깨란느(Cairanne)

꺠란느는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알프스-꼬뜨 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지방에 속한 보클로즈 데파르트망의 마을입니다. 마을의 기원은 8세기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지역 경제는 대부분 와인 생산에 의존하죠. 깨란느의 와인 산업은 와인 생산의 중요성이 점차 늘어나던 18세기에 와인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766년 깨란느 지역에는 와인에 관한 다음과 같은 법령이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들은 각자의 와인을 오로지 봉인된 병에 넣어서 팔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경찰에게 와인의 봉인을 친절히 요청할 것이며, 자신이 파는 와인들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이것은 당시 깨란느의 와인 생산자들이 생각하던 (와인) 생산지 보호의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와인을 함부로 팔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1863년 미국에서 건너온 필록세라가 땅에 모래가 많은 일부 지역을 제외한 프랑스 전역의 포도밭을 차례로 파괴했고, 와인 생산자들은 황폐해진 포도밭과 와인 품질을 되살리려고 몸부림쳤습니다.

 

 

20세기 초에 필록세라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미국 북부 뉴욕주의 파이브 핑커 레이크(Five Finger Lake) 호수 주변에서 가져온 미국종 포도나무뿌리를 접붙이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죠. 이 방법으로 포도밭이 살아나자 론 계곡의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 생산량뿐만 아니라 품질에도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피에르 르 루아 부와조마리에(Pierre Le Roy Boiseaumarié) 남작과 법률가, 론 지방의 와인 생산자들이 노력하여 INAO로부터 꼬뜨 뒤 론(Côtes du Rhône) 지역 명칭에 대한 법적 인정을 받습니다.

깨란느 마을은 남부 꼬뜨 뒤 론 와인의 뿌리와 같은 곳입니다. 훌륭한 와인 품질 덕분에 꼬뜨 뒤 론 AOC보다 한 단계 윗급인 꼬뜨 뒤 론 빌라주(Côtes du Rhône Villages) AOC에 속해 있죠. 꼬뜨 뒤 론 빌라주 AOC 와인은 레이블에 마을 이름을 넣을 수 있어서 페랑 에 피스의 와인도 "Cairanne"란 명칭을 달고 있습니다. 꼬뜨 뒤 론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에 있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깨란느 레드 와인은 대부분 풀바디하고 과일과 검은 후추 같은 향신료 풍미가 나오며 뒷맛이 부드럽습니다. 깨란느 주변의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는 지공다스(Gigondas), 라스토(Rasteau), 세구레(Seguret), 사브레(Sablet), 봄 드 브니즈(Beaumes de Venise), 바께이라스(Vacqueyras)가 있습니다.

 

 

3. 와인 양조

페랑 에 피스 꼬뜨 뒤 론 빌라주 깨란느 뻬이어 블랑슈(Perrin & Fils Cotes du Rhone Villages Cairanne Peyre Blanche) 2009는 라스토와 상뜨 세실 레 비뉴(Sainte Cécile Les Vignes) 사이의 언덕배기 마을에 있는 유서 깊은 포도밭에서 수확한 그르나슈(Grenache) 포도 80%와 시라(Syrah) 포도 20%로 만들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양조했지만 알코올 발효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했고, 발효 탱크 아래의 와인을 표면에 떠있는 포도 껍질 위에 뿌려서 탄닌과 색소를 추출하고 곰팡이가 발생하는 걸 막는 펌핑 오버는 하루에 두 번씩 했습니다.

4. 와인의 맛과 향

테두리 주위의 색은 아주 짙은 퍼플 빛입니다. 잘 익은 검은 자두와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블랙 체리 향이 나오고 말린 자두 향도 약하게 풍깁니다. 바닐라와 오크, 향긋한 허브 향이 올라오고, 시간이 지나면 그을린 나무와 푸릇푸릇한 새싹의 비린내, 연필, 검은 후추, 건포도와 말린 베리류의 과일, 우아한 나무 향 등이 차례로 퍼지네요.

탄닌이 매끄럽고 부드러워 순한 느낌이지만, 한편으로는 숯을 갈아 넣은 듯 까끌까끌한 맛도 있습니다. 여유가 느껴지면서 은근한 힘과 무게가 있는 풀바디 와인으로 구조가 뛰어납니다.

 

 

드라이하지만 과일의 달고 진한 풍미가 결합되어 단 기운이 은근하게 밀려들어 옵니다. 산도는 아주 강하진 않지만 잘 숙성되어 정돈된 느낌이군요. 검은 자두와 블랙베리 같은 검은 과일 풍미가 가득하며 블랙커런트 풍미도 은근합니다. 그르나슈와 시라를 섞었지만 시라 느낌이 강하고 그르나슈의 맛과 향은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진한 검은 과일 맛이 계속 이어지면서 순한 오크와 감초, 바닐라 같은 스위트 스파이스 풍미가 전체적인 균형과 무게를 잡아주죠. 14%의 알코올은 화끈한 느낌을 주지만 거칠거나 거슬리지 않습니다.

마신 후에도 순하고 매끄러운 느낌이 기분 좋게 계속 이어집니다. 검은 과일을 씹은 후에 남는 맛과 비슷한 기운이 입에 맴돕니다.

드라이하지만 과일 풍미가 가득한 맛, 높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맛을 받쳐주는 산도, 탄탄하고 부드러우며 풍부한 탄닌이 어우러져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체적인 퍼포먼스가 상당히 우수하네요.

소와 양을 그릴에 구운 바비큐 같은 육류 요리, 숯불이나 장작에 구운 돼지 목살, 쇠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일종의 갈비탕인 포 토 푀(Pot au feu), 양꼬치, 깐풍기처럼 강한 향신료를 사용한 중국요리, 치즈 등과 잘 어울립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2년 6월 30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