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드 깔비에르 말리뇨 루주(Chateau de Calviers Maligno Rouge) 2008은 남부 프랑스(Sud de France)의 랑그독 루씨용(Languedoc Roussillon)에서 수확한 시라(Syrah)와 그르나슈 (Grenache) 포도로 만드는 IGP Pay d'Oc 등급의 레드 와인입니다.
1. 샤토 드 깔비에르(Chateau de Calviers)
샤토 드 깔비에르의 소유주이며 와인 메이커인 마르 헤농(Marc Henon)은 프랑스 남부 랑그독 가르(Gard) 지방의 생 로랑 대구즈(Saint Laurent d’Aigouze)에 있는 칼스(Calce)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과 떼루아에 매료되었습니다. 포도밭 7ha를 구매해서 와이너리를 세운 마르 헤농은 남부 프랑스의 맛과 향을 담은 와인들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샤토 드 깔비에르에선 레드 와인을 위해 평균 수령 50년 이상의 올드 바인 시라와 그르나슈, 까리냥(Carignan) 등을 재배하고, 화이트 와인을 위해 역시 올드 바인 클래레뜨(Clairette)를 재배합니다.
편암이 주로 깔린 포도밭은 낮 동안 열기를 축적해서 저녁 늦게까지 포도에 온기를 전달해 주죠. 이 덕분에 포도가 충분히 익고, 와인은 보다 구조적인 탄닌과 우아한 풍미를 갖게 됩니다. 또한 점토와 석회토로 이뤄진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드는 와인은 신선하고 감각적인 아로마가 일품이라고 합니다.
샤토 드 깔비에르에선 말과 쟁기로 밭을 갈고 유기농 비료만 사용하는 등 가능한 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합니다. 와인을 양조할 때에도 인위적인 작업을 최대한 배제해서 남부 프랑스의 떼루아를 순수하게 표현하는 와인을 생산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나 양조 설비는 매우 현대적인 것을 사용합니다.
샤토 드 깔비에르의 대표 와인 중 하나인 말리뇨 루주는 가격과 비교해 높은 품질을 지닌 이른바 밸류 와인(Value Wine)입니다. 매년 4,000~6,000병가량 소량 생산하며, 같은 가격대의 칠레 와인보다 맛과 향이 더 낫다고 평가받죠. 평균 수령 50년이 넘는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그르나슈와 시라를 혼합해서 만들며, 세월의 깊이가 묻어 나오는 힘과 부드러운 질감을 지녔습니다.
말리뇨의 레이블에는 포도송이를 든 악마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독특한 레이블 디자인은 14세기의 유럽 역사와 관련된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14세기에 유럽 일대에 창궐했던 페스트는 당시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인의 1/3, 혹은 절반이 페스트로 사망했다고 하니 당시 유럽인에게 죽음이란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흔했을 겁니다.
얼마나 죽음에 질렸는지 서양의 저승사자라고 하는 그림 리퍼(Grim Reaper)는 원래 천사나 흰색의 로브를 걸친 노인 모습으로 표현되었지만, 페스트가 유행한 후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거대한 수확용 대낫을 든 해골 모습으로 바뀌었다는군요. 사람의 목숨을 마치 대낫으로 수확하듯 가져가는 것 같아서 이런 이미지가 퍼지게 된 것 같습니다.
페스트는 프랑스에서도 크게 창궐했습니다. 당시 남부 프랑스에선 페스트의 저주와 액운을 막기 위한 주술로 레드 와인 병에 악마를 그려 넣는 것이 유행했답니다. 예로부터 천사들이 악마를 제압하여 레드 와인에 봉인했다는 전설이 있었기에 병마를 퍼뜨리는 악마가 두려워하길 빌며 와인 병에 악마 그림을 붙여서 이를 주고받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전통은 후대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와인 용기로 유리병을 사용하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이고, 프랑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아무리 빨라도 18세기에 들어선 후의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통이 만들어진 배경의 진위 여부야 어떻든 사람들은 악마를 그린 와인을 건네주며 서로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축복하고 행복을 바라는 아름다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말리뇨 루즈가 잘 알려져 있지만, 말리뇨 로제와 말리뇨 화이트 와인도 있습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색은 아주 짙으며 퍼플과 루비의 중간색을 띱니다. 진한 자두와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블루베리 같은 검은 과일 향을 진하게 뿜어내고, 향긋한 오크 향도 들어있습니다. 이어지는 향신료와 박하 같은 허브 향도 재미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볶은 아몬드 같은 견과류와 바닐라가 생각하는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향이 올라옵니다.
상당히 든든하고 무게 있는 구조입니다. 탄닌이 풍부해도 떫지는 않아서 부드럽습니다.
혀에선 달지 않으나 과일 풍미가 풍성해서 단 느낌이 있습니다. 산도는 중간보다 조금 높습니다. 다른 와인과 비교하면 묘한 차이가 있는데, 산미의 강도보다 볼륨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을 해치진 않으나 맛이 약간 빠지는 느낌입니다.
약간 씁쓸하지만 검은 과일 풍미가 가득하고 향기로운 나무 풍미도 풍부합니다. 향신료의 스파이시한 느낌도 맛볼 수 있죠. 그러나 맛은 향만큼 조화롭지 않고 약간 허전한 구석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했던 산도가 보강되면서 점점 나은 맛을 보여주네요.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여운은 제법 길게 이어지며, 느낌도 괜찮습니다.
전체적인 균형은 잘 이뤄져 있으나 산미의 볼륨이 약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산미가 와인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나은 맛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아쉽군요. 지구력이 뛰어난 점은 가점 요소입니다.
충분히 가격에 비례하는 품질을 지녔습니다. 산도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성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와인이랄 수 있죠. 레어로 구운 등심이나 안심 스테이크, 소 생갈비와 양갈비 등과 잘 어울립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2년 5월 16일 시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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