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이탈리아] "광란의 오를란도 속의 여인 안젤리카를 옮겨 놓은 것일까?" - Donnafugata Angheli 2007

까브드맹 2012. 5. 16. 06:00

돈나푸가타 앙겔리 2007

돈나푸가타 앙겔리(Donnafugata Angheli) 2007는 돈나푸가타(Donnafugata) 와이너리가 시칠리아(Sicilia) 섬의 특산 포도인 네로 다볼라(Nero d'Avola)와 메를로(Merlot)를 5:5로 섞어서 만드는 레드 와인입니다.

1. 시칠리아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섬입니다. 일찍이 그리스인이 시라쿠사(Siracusa)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했고, 카르타고와 대립하기도 하다가 포에니 전쟁 후에는 로마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과 이탈리아 반도의 기독교 세력의 충돌 지역이 되어 수시로 지배층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역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11세기 이후에는 유럽 열강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에 차례로 속하는 등 많은 정치적 변화가 있었던 곳이죠.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주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와인 산업에는 한 가지 좋았던 점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명이 이곳을 거치면서 다양한 포도와 영농기술을 남겨놓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모스까토 알렉산드리아(Moscato Alexandria) 포도는 원산지가 서아시아인데,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로 전파했으며 그 후 유럽으로 퍼져 나가서 프랑스와 독일, 마케도니아, 헝가리에서 생산하는 수많은 스위트 와인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모스까토 알렉산드리아 말고도 시칠리아 섬에는 수많은 종류의 포도가 자라며, 그중에는 시칠리아에서만 자라는 특산 포도도 많습니다.

유럽의 포도밭을 덮친 필록세라로 와인 산업이 초토화된 19세기 후반부터 시칠리아는 뿔리아(Puglia)와 함께 유럽의 와인 공장 역할을 하며 싸구려 벌크와인을 대량 생산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와인법이 새로 제정되어 이곳의 와인산업을 뒷받침했고, 생산자들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가 되자 각 와이너리가 와인 품질 향상에 많은 노력을 쏟았고, 지난 20여 년 동안 시칠리아 와인 산업은 종종 '르네상스'라고 표현될 만큼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섬의 전역에 나타나서 이제 시칠리아는 더 이상 싸구려 벌크와인의 공급지가 아니며, 고유한 레이블을 부착한 고급 와인의 생산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시칠리아 와인들은 뛰어난 품질을 바탕으로 각종 국제 대회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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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나푸가타(Donnafugata)

돈나푸가타는 오래전부터 강화 와인인 마르살라(Marsala)를 만들어왔던 랄로(Rallo) 가문의 4대손인 지아코모 랄로(Giacomo Rallo)와 아내 가브리엘라 앙카 랄로(Gabriella Anca Rallo)가 1983년에 두 아들과 함께 설립한 와이너리입니다. 돈나푸가타는 고급 와인 시장을 목표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를 위해 현대적인 와인 양조법과 마케팅, 무엇보다 와인 품질에 대한 책임 정신을 바탕으로 와이너리를 경영합니다.

랄로 가문의 소유지인 약 260 헥타르의 콘테싸 엔텔리나(Contessa Entellina) 포도원은 돈나푸가타로 하여금 최고의 품질과 이미지를 가진 와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부 시칠리아의 심장부에 있는 콘테싸 엔텔리나 포도원에서는 헥타르당 4,500~6,000그루의 포도나무를 키우며, 수확량은 헥타르당 평균 40~85 헥토리터를 유지합니다. 

돈나푸가타는 지비보(Zibibbo)에도 42 헥타르의 포도원과 작지만 시설이 잘 갖춰진 셀러를 갖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모스카토 디 판텔레리아(Moscato di Pantelleria)와 파씨토 디 판텔레리아(Passito di Pantelleria) 와인을 생산하려고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의 중간쯤에 있는 판텔레리아(Pantelleria) 섬에 진출했고, 이 섬에서 재배한 포도로 각각 까비르(Kabir)와 벤 리에(Ben Ryè)라는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돈나푸가카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3. 돈나푸가타 앙겔리(Donnafugata Angheli) 2007

돈나푸가타 앙겔리는 돈나푸가타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로 레이블에 말을 탄 여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와이너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여인, 달밤, 팔, 사랑?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레이블 속의 여인은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 속의 여인 안젤리카(Angelica)를 옮겨 놓은 것일까? 돈나푸가타의 와인 레이블에는 유독 여인들이 많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 여인들은 모두 이탈리아의 역사 또는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돈나푸가타 앙겔리는 1997년에 첫 빈티지가 나왔고, 이후 줄곧 호평을 받았습니다. 8월 말에 수확한 메를로와 9월 초에 수확한 네로 다볼라를 따로 분류하여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26~30℃의 온도로 12일간 발효한 후 젖산발효를 거쳐 산미를 부드럽게 했습니다. 와인별로 프랑스산 오크 통에서 1년간 숙성한 다음 혼합하고, 병에서 6개월 동안 추가 숙성했습니다. 

마시기 전에 1시간 정도 미리 따두면 맛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으며,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굽거나 찐 붉은 육류나 잘 숙성된 치즈가 좋습니다. 

 

 

4. 와인의 맛과 향

중간 농도의 루비색으로 여과하지 않았는지 약간 탁합니다.

블랙 체리와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프룬(prune), 블루베리 같은 검은 과일 향이 진하고, 은은한 오크와 삼나무 향이 뒷받침해 줍니다. 검은 과일 향이 너무 진해서 약간 잼 같은 느낌이 들고, 유제품 향도 살짝 느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프룬 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적당한 무게와 함께 부드럽고 깨끗합니다. 약간 진득한 느낌도 있습니다. 

드라이하며 적당한 산도와 단 과일 풍미가 나옵니다. 검은 과일 풍미가 중심을 이루고 신선한 허브와 오크 풍미가 복합성을 더해줍니다. 농후한 과일 향과 약간 진득한 질감이 합쳐져 잼 같은 풍미도 맛볼 수 있습니다. 13.5%의 알코올은 와인에 강한 기운을 줍니다. 시간이 지나도 향은 강하게 유지되지만, 맛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여운은 길고 은은하게 이어집니다. 그윽한 느낌이 좋습니다.

탄닌과 산도, 알코올의 균형이 상당히 좋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신선하고 풍부한 과일과 그윽한 오크의 조화가 만드는 느낌도 훌륭합니다. 지구력이 좀 아쉽지만, 가격을 고려하면 절대 흠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2년 2월 4일 시음했습니다.

 

[이탈리아] "탈출 중인 여자" - 돈나푸가타(Donnafugata)

1. 돈나푸가타 와이너리 돈나푸가타는 시칠리아에서 오래전부터 주정강화 와인인 마르살라(Marsala)를 만들어왔던 랄로(Rallo) 가문의 4대손인 지아코모 랄로(Giacomo Rallo)와 아내 가브리엘라 앙카 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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