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칠레] 신, 구세계의 조화 위에 열매 맺은 붉은 방패 - Baron Philippe de Rothschild Escudo Rojo 2008

까브드맹 2010. 10. 15. 09:12

바롱 필립 드 로칠드 에스쿠도 로호 2008

1. 에스쿠도 로호(Escudo Rojo)

에스쿠도 로호는 프랑스의 와인 명가인 바롱 필립 드 로칠드(Baron Philippe de Rothschild) 사가 칠레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서 생산하는 와인입니다.  칠레 센트럴 밸리 리젼의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서 기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70%에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0%와 까르메네르(Carmenère) 20%를 섞어서 만드는 레드 와인입니다.

에스쿠도 로호라는 이름은 "붉은(Rojo) 방패(Escudo)"라는 뜻으로 바롱 필립 드 로칠드 가문의 문장을 본떠서 만든 것이죠. 포도 재배에 완벽한 떼루아를 가진 칠레의 대지 위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무통 로칠드의 기술이 결합한 와인답게 국내에 들어온 후에 칠레 와인 중에서 2년 연속 최대 매출액을 올렸고, 지금도 많은 애호인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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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 생산자의 제3세계 와이너리

유럽의 와인 생산자가 칠레나 다른 신세계 국가의 땅을 구매하거나 회사를 설립해서 와인을 생산하는 일은 꽤 흔합니다. 스페인의 토레스(Torres)는 칠레에 미구엘 토레스(Miguel Torres)를 설립해서 와인을 생산하며, 프랑스 론(Rhone)의 엠 샤푸티에(M. Chapoutier)도 호주에 땅을 구매해서 와인을 만들고 있죠. 또 다른 로칠드 가문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Rothschild)도 1988년에 칠레의 비냐 로스 바스코스(Vina Los Vascos)를 사들여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아르헨티나의 까테나 자파타와 공동으로 ‘보데가스 까로(Vodegas Caro)'를 설립했습니다.

이처럼 유럽 와이너리가 신세계의 땅을 구매해서 와인을 생산하는 이유는 신세계 지역에 양조용 포도를 키우기에 적합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칠레와 호주, 아르헨티나, 미국은 유럽만큼 날씨가 변덕스럽지 않고, 일조량도 풍부해서 관개시설만 잘 갖춰주면 매우 건강하고 무르익은 포도를 재배할 수 있죠. 이렇게 잘 익은 포도를 유럽 와인 명가의 양조 비법을 사용해서 와인으로 만들면 전통이라는 측면에서는 미약할지 몰라도 가격보다 매우 뛰어난 품질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칠레에서 나오는 미구엘 토레스의 와인이나 라피트 로칠드의 와인은 가격이 그리 높지 않지만, 품질은 매우 뛰어나죠.

 

 

또 다른 이유는 이제 유럽에선 포도를 잘 키울 수 있는 땅을 더는 싸게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훌륭한 떼루아를 갖춘 곳은 이미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을 만들고 있어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땅값을 물어야겠죠. 그렇다고 땅값이 저렴한 곳을 찾으면 이번에는 떼루아가 형편없을 겁니다. 반면에 신세계는 땅값이 유럽보다 싸면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훌륭한 떼루아를 갖춘 곳이 남아있거든요. 또, 유럽 외의 시장을 개척할 때에도 유럽에서 와인을 만들어 배나 항공기로 긴 거리를 운송하는 것보다 시장에 가까운 지역에서 만들어 바로 내놓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와인의 보관 상태에서나 훨씬 유리하죠.

외국인이 타국의 땅이나 포도를 구매해서 와인을 생산하는 스타일의 와이너리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금 독특하긴 하지만, 프랑스 부르고뉴의 네고시앙인 루 뒤몽(Lou Dumont)의 오너는 한국인인 박재화 씨입니다. 이 분은 프랑스에서 유학할 당시에 부르고뉴 와인에 매료되어 일본인 남편과 함께 네고시앙을 설립한 다음 부르고뉴 각지의 농부들이 재배한 포도를 사들여서 와인을 만들고 있죠. 또 호주의 몇몇 와이너리도 소유주가 한국인이며 그들이 만든 와인이 국내에도 들어오고 있는 거로 압니다.

와인에 관심이 많은 분 중에는 자신의 와인을 만들고 싶은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도 구태여 양조용 포도 재배가 어려운 국내에서 와인을 생산하려 하지 말고, 호주나 미국처럼 양조용 포도가 잘 자라는 곳에 와이너리를 세우거나 인수해서 와인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3. 와인의 맛과 향

색은 아주 짙은 다크 레드 컬러로 거의 흑색에 가깝습니다. 주변부도 진한 색을 띠며 제일 바깥쪽의 얇은 테두리 부분만 붉은 기운을 보일 뿐 대부분 검정에 가까운 짙은 색입니다. 처음에 14%의 알코올에서 비롯된 후끈한 느낌이 나오고 점차 나무줄기 내음이 흘러나옵니다. 이윽고 서양 자두와 블랙 체리 같은 검붉은 과일 향이 나는데, 나무줄기의 향에 눌려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닙니다. 한참 후에야 나무 향과 어우러진 무르익은 과일 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향은 제법 그윽한 나무 향과 뒤섞인 과일 향인데,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 흠입니다.

첫맛에 탄닌의 떫은맛이 강하게 나옵니다. 깨끗하고 진하면서 단단한 느낌이며 부드러운 맛은 아닙니다. 마치 표면이 살짝 갈린 강철 같은 느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무처럼 부드럽지만 단단한 느낌으로 변합니다. 입안이 오그라드는 느낌과 함께 쓰고 약간 짜며 아주 밑바닥에 단맛이 조금 느껴집니다. 그냥 마시기엔 조금 벅차며 단백질이 많은 소고기 스테이크나 양 갈비 같은 고기 요리와 먹어야 좋을 것 같군요. 맛이 아주 강한데 원숙한 강함이 아니라 풋내기의 허세 같은 강함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맛있는 산미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개봉 후 30여 분 정도 흐르면 떫은맛이 많이 가라앉으면서 본격적으로 과일 풍미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되면 마시기 편해지니 빨리 먹지 말고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여운은 제법 깁니다. 하지만 입안에 강한 자극을 주면서 이어지는 여운이기에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각 요소가 나름대로 개성을 풍기며 제법 잘 어울리지만, 아직 어설프고 힘의 균형이 안 맞습니다. 한마디로 풋내기 같은 느낌인데, 아직 어리기(Young)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제법 성숙해지고 균형을 갖춰갑니다. 2008 빈티지를 2010년에 시음했으니 2년 만에 마신 셈이네요. 너무 빨리 마셨습니다. 2~3년 정도 더 지난 후에 마시면 더욱 가치 있는 맛과 향을 보여줄 겁니다.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직화로 구운 고기 요리, 양꼬치, 곱창구이 같은 내장 요리 등과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2010년 7월 11일 시음했으며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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