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기오르기티코 포도
아기오르기티코(Agiorgitiko)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서쪽에 있는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 반도의 초입에 있는 PDO 네메아(Nemea)의 대표적인 포도입니다. 네메아에서는 아기오르기티코로 레드 와인뿐만 아니라 로제 와인과 스위트 와인도 생산합니다.
네메아에서는 아기오르기티코를 “헤라클레스의 피”라고 부릅니다. 헤라클레스가 12 과업 중 첫 번째 과업인 네메아의 사자 사냥을 끝낸 후 네메아 와인으로 목을 축였고, 그 와인은 아기오르기 포도로 만들었다는 전설 때문이죠. 그러나 1460년경에 네메아에서 가장 큰 포도밭의 소유주였던 성 조지 수도원(St. George monastery)에서 이름을 딴 아기오스 조르지오(Agios Georgios, 일명 St. George) 포도가 나중에 정식으로 아기오르기티코로 명명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아기오르기티코 와인은 향이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라즈베리 같은 붉은 과일 향부터 서양 자두와 블랙베리 같은 색이 진한 과일까지 다양한 과일 향을 풍기고 검은 후추와 육두구 같은 향신료 향도 나옵니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와인에선 오크 같은 나무 향을 비롯하여 바닐라와 볶은 견과류 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향도 올라옵니다.
2. 와인 양조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자 중 하나인 부따리(Boutari)가 만든 네메아 2021은 그리스 중부의 PDO 네메아에서 재배한 아기오르기티코 포도만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하여 깊은 색과 농밀하고 복합적인 향을 가진 아기오르기티코 레드 와인은 둥근 바디와 풍부하고 뛰어난 탄닌, 산뜻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네메아에서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와인입니다. 그러나 최근엔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하지 않고 수확 후 몇 개월 이내에 병에 넣어 판매하는 영(young)한 레드 와인도 있습니다.
네메아에선 최근 10년 동안 영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해 왔으나 모든 네메아 와인은 반드시 오크 숙성을 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PDO 등급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지면서 오크 숙성하지 않은 네메아의 아기오르기티코 와인에게도 PDO 등급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아기오르기티코 와인이 1년간의 오크통 숙성을 견딜 수 있진 않기에 개정된 규정은 와인 생산자들에게 결정적인 혜택을 줬죠. 새 규정에 따라 네메아의 와인 생산자들은 매력 넘치고 상업성이 뛰어나면서 라벨에 "Nemea" PDO를 표시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볍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영한 네메아 와인은 중간 정도의 산도와 부드러운 탄닌, 붉은 과일의 산뜻한 향과 맛으로 아기오르기티코 포도가 가진 멋진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부따리의 네메아 2021은 12개월간 숙성하지만 오크통에서 계속 숙성하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하는지 명확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맛과 향은 확실히 새로운 모던 스타일의 네메아 레드 와인입니다.
맛과 향은 빈티지로부터 5~8년 동안 계속 숙성하며 발전할 수 있습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중간 농도의 루비색입니다. 싱싱한 산딸기와 앵두, 석류 같은 붉은 과일 향을 풍깁니다. 붉은 포도와 달콤한 과일잼, 허브 향도 나오네요.
미세한 탄산 기운이 맑고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잘 숙성된 가벼운 탄닌은 상쾌하면서 허술하지 않은 구조를 만들어줍니다.
붉은 과일의 풍미와 발랄한 산미가 생동감 있는 맛을 만들어냅니다. 탄닌이 가벼워도 와인에 알맞은 텐션이 유지되며, 음식과의 조화도 좋습니다. 싱그러운 허브 풍미는 와인이 단조롭지 않게 해줍니다. 깔끔하고 깨끗하며 마시기도 편하지만 힘이 부족하진 않습니다. 마신 후엔 붉은 과일과 허브, 달콤한 향신료 풍미가 은근하고 길게 남습니다.
깔끔한 탄닌과 발랄한 산미, 13%의 알코올이 맛있게 균형을 이루는 와인입니다. 묵직하지 않으며 발랄하고 경쾌해서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네요. 굉장히 모던한 맛으로 카나페 같은 가벼운 음식과 함께 먹기 좋아서 파티용 와인으로 훌륭합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와이너리가 크레타섬에서 생산하는 크레티코스 레드(Kretikos Red) 와인의 상위 호환 같은 와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전에 시음했던 네메아 2013 빈티지보다 더욱 캐쥬얼해지고 세련된 느낌입니다.
양고기스튜와 철판에 구운 돼지고기, 훈제 오리와 오리 구이, 숯불에 구운 닭고기와 치킨, 카나페, 살라미, 잠봉(Jambon) 같은 차가운 햄, 토마토 파스타, 경성 치즈 등과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3년 11월 16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