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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미네랄 느낌 가득하고 어울리는 음식의 범위가 아주 넓은 - Sutor Sauvignon Blanc 2014

까브드맹 2020. 6. 3. 10:00

Sutor Sauvignon Blanc 2014

수토르 소비뇽 블랑(Sutor Sauvignon Blanc) 2014는 슬로베니아의 연안 지역(Littoral Region, Primorska vinorodna dežela)에 있는 비파바 밸리(Vipava Valley, Vipavska Dolina)에서 재배한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포도로 만든 kakovostno vino ZGP(원산지 명칭으로 보호하는 고급 와인, kakovostno vino z zaščitenim geografskim poreklom) 등급의 화이트 와인입니다.

1. 소비뇽 블랑

소비뇽 블랑은 원산지인 프랑스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칠레, 호주, 미국 등등 전 세계 와인 생산국에서 많이 재배해서 3대 국제 청포도 품종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와인을 만들면 상쾌한 과일 향과 풀 향, 미네랄 느낌 등이 나와서 해산물이나 흰 살코기 요리와 잘 어울리죠. 그래서 여름철 와인으로 제격입니다.

유명한 소비뇽 블랑 와인 생산지로는 프랑스 루아르 밸리(Loire Valley, Val de Loire)와 뉴질랜드 말보로(Malborough)가 있습니다. 두 지역 모두 훌륭한 소비뇽 블랑 와인이 나오는 곳이지만, 맛과 향은 조금 다릅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이 레몬 같은 감귤과 구즈베리 등의 녹색 과일 향에 아스파라거스, 피망 등의 식물성 향이 주로 나온다면, 루아르 밸리의 소비뇽 블랑 와인은 과일 향이 좀 더 섬세하고 나무 새순 향과 은근한 부싯돌(Silex) 향이 특징입니다. 맛에서도 미네랄 풍미가 좀 더 많이 나오죠. 슬로베니아의 비파바 밸리에서 재배한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수토르 소비뇽 블랑 2014는 루아르 밸리의 소비뇽 블랑 와인과 더 가까운 맛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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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슬로베니아 와인

슬로베니아 와인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슬로베니아 와인은 아주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로마군이 슬로베니아 지역을 점령하기 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켈트(Celt)족과 일리리아(Illyria)인들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죠. 그 후로 포도 농사와 와인 양조가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슬로베니아에는 28,00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22,300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매년 80~90만 헥토리터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슬로베니아의 와인 생산지역 지도
(이미지 출처 : https://www.sloveniaforyou.com/Images/WineRegions_Map_Slovenia.jpg)

슬로베니아의 와인 생산지는 크게 세 곳으로

① 이탈리아와 붙은 연안 지역(Littoral Region, Primorska vinorodna dežela)

② 크로아티나와 인접한 저지 사바 지역(Lower Sava Region, Posavska vinorodna dežela)

③ 헝가리와 마주 보고 있는 드라바 지역(Drava Region, Podravska vinorodna dežela)

입니다. 수토르 에스테이트(Sutor Estate)는 이중 연안 지역의 비파바 밸리(Vipava Valley, Vipavska Dolina)에 있죠.

 

 

3. 와인 생산자와 와인 양조

수토르 에스테이트의 주인인 미차 라브렌치(Mitja Lavrencic)의 선조는 1499년에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Dalmatia)에서 이곳으로 이주했고, 그 후 라브렌치 가문은 줄곧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현재 세 개의 작은 포도밭에서 말바지아 이스트리아나(Malvasia istriana)와 샤르도네(Chardonnay), 소비뇽 블랑, 메를로(Merlot), 피노 누아(Pinot Noir)를 재배합니다.

수토르 에스테이트의 와인들은 와인 경연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고, 슬로베니아의 정상급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010년에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마(Noma)와 이탈리아 파도바(Padova)에 있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레 깔란드레(Le Calandre)에서도 수토르 에스테이트 와인을 취급하죠. 특히 일 년에 2,200병 밖에 만들지 않는 샤르도네 와인은 퓔리니(Puligny)와 샤사뉴 몽라셰(Chassagne Montrachet)의 1등급 와인과 같은 품질을 가졌다고 평가받습니다.

수토르 소비뇽 블랑 2014는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었습니다. 먼저 맛과 향을 집중하려고 헥타르당 30 헥토리터로 소량 수확했습니다. 부르고뉴 그랑 크뤼의 수확량 기준이 헥타르당 35 헥토리터이니 얼마나 적게 수확했는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보통 화이트 와인은 껍질을 제거하고 알코올 발효하지만, 이 와인은 껍질을 15%가량 남겨서 함께 발효했습니다. 오렌지 와인의 양조법을 일부 사용한 거죠. 게다가 1,000ℓ짜리 오크통에서 12개월을 숙성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프랑스 보르도 화이트 와인이나 미국의 퓌메 블랑(Fume Blanc) 와인에 사용하는 방법이죠.

이렇게 만든 수토르 소비뇽 블랑 2014는 루아르 소비뇽 블랑 와인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맛과 향이 나옵니다.

 

 

4. 와인의 맛과 향

색은 아주 샛노란 레몬색입니다. 미네랄과 레몬, 새콤한 사과, 돌, 흰 채소 향이 먼저 올라오고 연기 향도 살짝 풍깁니다. 라라하 귤껍질로 향을 낸 리큐어인 큐라소(Curaçao)와 오렌지 껍질 향이 나오고 부싯돌과 석회 향이 이어집니다. 파슬리 같은 허브와 머스캣(Muscat) 포도 향이 진해지고 오렌지 향도 조금 있습니다. 처음엔 미네랄 느낌이 강했지만, 점점 푸르고 노란 과일 향이 두드러집니다.

두껍지 않지만 돌처럼 단단한 느낌이면서 치밀합니다. 신세계 소비뇽 블랑 와인처럼 딱 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길게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드라이하면서 산미도 좋습니다. 맛에서 미네랄 느낌이 가득하고 레몬과 사과, 흰 채소 등의 풍미가 나옵니다. 달콤한 과일과 허브 풍미에 미네랄의 짠맛이 어우러집니다. 돌복숭아나 설익은 살구 같은 과일 맛이 나다가 점차 녹색 과일과 허브 풍미가 강해지고, 오렌지 껍질과 부싯돌 느낌이 두드러집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과 전혀 다르고 루아르와 미네랄 느낌은 비슷하지만 더 묵직하고 진합니다. 일반적으로 마시는 소비뇽 블랑보다 온도를 조금 높게 해서 마셔야 좋습니다. 여운에선 짭짤한 미네랄 느낌과 흰 채소 느낌이 길게 남습니다.

 

 

미네랄로 인한 짠맛과 돌복숭아 같은 산미, 13%의 알코올이 재밌는 균형을 보여줍니다. 독특한 향과 풍미 때문에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품종을 눈치챌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그냥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음식과 함께 할 때 제 모습을 보여줄 와인으로 루아르 소비뇽 블랑 와인 느낌이 나면서 훨씬 저렴합니다. 잘 어울리는 음식의 범위도 대단히 넓습니다. 볼매 와인!

마시기 20~30분 전에 열어놔야 합니다.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은 흰살생선회, 해삼, 멍게, 문어, 튀김, 흰살생선 구이, 훈제 닭고기, 통삼겹살과 항정살 같은 돼지고기, 돼지고기 바비큐, 감자 소시지, 기름 많은 소시지, 숯불양념구이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0년 6월 1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