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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금 딱 마시기 좋은 그레이트 빈티지 와인 - Château Teyssier Pezat 2009

까브드맹 2019. 7. 16. 13:40

Château Teyssier Pezat 2009

샤토 떼시에(Château Teyssier)의 뻬자(Pezat) 2009는 프랑스 보르도(Bordeaux) AOC에서 재배한 메를로(Merolt) 85%에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5%를 넣어서 만든 AOC 보르도 슈뻬리에(Bordeaux Superieur) 등급의 레드 와인입니다.

1. 샤토 떼시에

보르도 슈뻬리에 등급 와인인 뻬자는 쌩-테밀리옹 그랑 크뤼(Saint-Emilion Grand Cru)인 샤토 떼시에와 가라지 와인(Garage Wine)인 르 돔(Le Dome)의 생산자인 조나단 말터스(Jonathan Maltus)가 만드는 와인입니다. 보르도 슈뻬리에는 일반 보르도 AOC 와인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조건으로 만드는 와인으로 맛과 향이 좀 더 좋고 알코올 도수도 0.5~1%가량 더 높습니다.

조나단 말터스는 원래 가스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직원이 500명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잦은 출장과 격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아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했고, 그는 아내의 말을 따라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남서 프랑스의 꺄오르(Cahors)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좋아하는 와인을 즐기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와인 파티에서 호주 출신의 영국인 와인 생산자를 만났고, 이 만남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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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파티에서 만난 와인 생산자의 와인을 영국 시장에 판매하는 일을 맡았고, 생산량의 50%를 책임질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말터스는 본격적으로 와인 업계에 뛰어들 생각을 했는데, 여기에서 다시 아내의 조언에 따라 판매가 아니라 와인 양조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그리고 또다시 성공을 거둡니다.

1994년에 보르도 우안에서 5.5헥타르의 포도밭으로 시작한 샤토 떼시에는 오늘날 53헥타르까지 포도밭을 늘렸고, 당시 새로운 형태의 와인으로 떠오르던 가라지 와인에 관심을 두고 만든 르 돔은 2018 빈티지가 엉 프리뫼르(En Primeur)에서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으로부터 97~99점이라는 놀라운 점수를 받았을 만큼 지금도 대표적인 가라지 와인이죠. 말터스는 "가라지 와인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샤토 발랑드로(Château Valandraud), 라 몽도트(La Mondotte), 르 돔의 세 와인은 현재까지도 인정받는 대표적인 가라지 와인"이라며 자부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조나단 말터스 와인들의 엉 프리뫼르 점수
(이미지 출처 : https://news.maltus.com)

2. 와인 양조

현재 샤토 테시에에서는 여덟 가지 와인을 생산합니다. 그중 뻬자는 데일리 와인으로 만든 레드 와인입니다. 최근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라 리저브 클라레(La Reserve Claret)라는 와인을 만들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뻬자가 데일리 와인이었죠. 까베르네 소비뇽이 전혀 안 들어가고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만 사용한 점이 독특합니다만, 와인에서 느껴지는 힘과 바디는 다른 어지간한 까베르네 소비뇽 블렌드 와인에 못지않습니다.

2009년은 프랑스의 와인 평가지인 가이드 하슈테(Guide Hachette)에서 18/20점, 미국의 와인 평론지인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96점을 줬을 만큼 훌륭한 해였습니다. 다만 이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은 평년보다 강건해서 일찍 따서 마시면 너무 강한 탄닌 때문에 떫은맛이 그득했을 겁니다. 보르도 레드 와인이라면 적어도 10년 정도 잘 보관해뒀다가 마셔야 제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죠.

그래서 뻬자 2009년은 지금 딱 마시기 좋은 상태입니다. 따자마자 좋은 향과 맛을 보여주고, 2시간 정도 마시면서도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여러 병 사서 친구들과 맛보고 한두 병은 잘 보관해뒀다가 3~4년 후에 마셔봐도 재미있을 겁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조금 진한 루비색입니다. 검붉은 과일과 향긋하고 묵직한 나무 향이 올라옵니다. 과일은 점점 블랙 체리와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과일 향으로 바뀌고 타임(thyme)과 향긋한 흙, 부엽토 같은 향을 풍깁니다. 시간이 지나면 붉은 과일 향이 나타나면서 나무와 흙 향과 조화를 이루면서 어렴풋이 가을 느낌을 줍니다. 나중에는 버섯, 카카오와 태운 나무의 중간 향, 시원한 삼나무 향 등도 나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마시는 중간중간 입에 탄닌 느낌을 흩뿌립니다. 구조가 크진 않지만, 우아하고 세련되었습니다.

드라이하면서 우아하고 풍성한 산미가 훌륭합니다. 블랙 체리와 블랙커런트 같은 검은 과일 풍미가 적당하고 우아하며 그윽한 나무 풍미와 함께 어우러집니다. 타임, 혹은 그을린 나무 느낌도 나오고 부엽토와 젖은 흙 풍미도 맛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일반적인 보르도 와인이 10년 정도 지나면 얼마나 마시기 좋아지는지 알 수 있는 맛입니다.

 

 

여운의 길이는 적당합니다. 여운의 풍미를 느낄 수 있으면서 부담스럽진 않네요. 검붉은 과일과 향긋한 나무의 느낌이 어우러지며 이어집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잘 익은 탄닌과 우아하고 풍성하면서 질 좋은 산미, 알맞은 기운을 가진 14%의 알코올이 멋진 균형을 보여줍니다. 세월의 힘도 와인을 맛있게 다듬어줬을 겁니다.

레드 와인 소스를 얹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로스트비프, 고기 스튜, 숯불에 구운 소고기, 기름이 적은 돼지고기 같은 육류와 잘 어울립니다. 숙성 치즈도 좋은 안주가 됩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9년 7월 15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