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그리스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산부가 술을 마셨을 때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일종의 권위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와인을 비롯한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술에 취하면 문란해진다는 남성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서도 술에 취한 여성이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와인에 관대했던 로마에서도 여성의 음주는 부도덕한 것이었죠.
진작부터 와인 수요가 많았지만,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러 로마의 와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영토의 확대나 인구 증가 등도 와인 수요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식습관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곡물을 탈곡해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그건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도 마찬가지였죠. 훗날 화덕이나 금속 솥의 보급, 제면 기술의 발달로 빵이나 밥이나 국수를 해 먹게 된 겁니다. 로마에서는 탈곡한 밀을 갈아서 끓인 죽에 식초로 넣어 먹곤 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에머’라는 밀을 재배했는데, 에머밀은 탈곡하는 과정에서 빵을 부풀게 하는 글루텐을 만드는 단백질이 파괴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빵 만들기엔 적합하지 않은 밀이었죠.
그러다가 새로운 밀 품종과 제빵기술, 화덕이 보급되면서 로마인의 주식은 죽에서 빵으로 옮겨갑니다. 로마 최초의 빵집이 기원전 171년에서 기원전 168년 사이에 나타났고, 맛이나 편리성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로마인들은 빠르게 빵을 주식으로 삼게 됩니다. 그런데 촉촉한 죽과 달리 팍팍한 빵엔 함께 마실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 무언가에 적합한 것이 바로 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빵과 와인은 기원전 2세기 말엽부터 로마의 양대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죠.
로마 여성들도 죽 대신 빵을 먹었고, 이것은 음주의 허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전만 해도 로마 여성들은 와인과 관계된 자리에는 일절 접근할 수 없었고, 와인을 마시다 발각되면 사형되거나 이혼을 당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자는 신에게 와인을 바칠 수도 없었다는군요. 그러나 와인을 마셨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여성의 기록은 기원전 194년 이후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자가 와인을 마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야 여전히 있었겠지만, 적어도 주식으로 빵이 보급되기 시작한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로마 여성들은 와인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