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대에도 와인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하나같이 독하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와인 전문가들처럼 색이나 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도와 알코올 도수였죠. 평가 항목에는 와인의 숙성도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오래된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의 ‘오래된 와인’이란 전년도에 만든 와인을 뜻했다고 합니다. 대다수 와인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식초로 변하거나 상했다는 얘기죠.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이나 탄닌이 많이 들어간 와인만 해를 넘겨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오래된 고급 와인들은 당연히 가격도 비쌌습니다. 301년에 발표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칙령을 살펴보면 일반 와인 가격이 1스티에(대략 150~300ℓ)당 8드니에였던데 반해, 오래된 와인은 16~24드니에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와인 등급을 결정할 때 포도밭이나 와인 생산자, 빈티지보다 생산지가 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이집트에서 나오는 마레오틱 와인을 최상급으로 쳤고, <미식가>란 책을 저술한 아테나이오스(Athenaios)는 알렉산드리아 남서부의 타이니오틱 와인을 최고급으로 쳤죠. 플리니우스는 나일 강 삼각주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세베니스 와인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부 다 이집트 와인이로군요. 그리스에서는 지역별로 와인 등급을 나눴고, 몇몇 지역의 생산자들은 와인의 명성과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려고 관련 법규를 새로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로마 역시 생산지별로 와인 등급을 매겼는데 라티움과 캄파니아 와인이 인기였다고 합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 각지의 와인을 평가했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팔레르눔의 포도밭에서 생산하는 전설적인 와인에 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팔레르눔에서 생산된 와인은 고급 와인으로 높게 평가받았는데, 특히 당시 집정관의 이름을 따서 ‘오피미안’이라고 불린 기원전 121년산은 오늘날의 로마네 꽁티나 샤토 페트루스처럼 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불렸다고 합니다. 네로 황제 시대의 집정관이었던 페트로니우스가 쓴 <사티리콘(Satyricon)>이란 유명한 소설에서도 한 연회의 주최자가 ‘팔레르눔산 오피미안, 숙성기간 100년’이라고 적힌 와인 단지를 꺼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