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학자이며 작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현대의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에 비견될 만한 당대의 와인 전문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카가 있어서 대(大) 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그는 <박물지(Naturalis Historia)>란 책을 쓰면서 서기 1세기 무렵의 로마 제국과 이웃 국가에서 생산하던 와인에 관해 자세히 적어놓았죠. <박물지>에는 91종의 일반 와인, 50종의 고급 와인, 38종의 수입 와인 등 모두 합쳐 179종의 와인 목록이 나오며 플리니우스는 이 와인들을 원산지별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쿠반 와인에는 XCVI등급을, 팔레르노 와인에는 XC등급을 매겼습니다. 또한, 특정 제품에 관한 평가도 기록해 놓았는데, 이런 모습은 원산지를 강조하던 당시의 일반적인 와인 평가와 차별적인 것이었습니다. 당대의 다른 와인 평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플리니우스도 맛을 기준으로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는 와인의 맛을 쌉쌀한 맛의 드라이, 달콤한 맛이 강한 스위트, 진하지 않은 맛의 라이트의 세 가지로 분류했죠. 또 포도 품종에 따라 와인을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미니안 포도로 만든 와인을 최고로 쳤고, 그 다음엔 노멘티안, 다음엔 아피아나 포도로 빚은 와인을 높이 쳐줬죠. 세 품종 모두 로마에서 재배하는 포도였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에서 와인은 의약품으로 취급받을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과음으로 인한 위험에 대한 경고도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와인을 적당하게 마실 줄 아는 것은 문명인으로서 갖춰야 할 세련된 교양이었지만, 맥주를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술 하나 자제할 줄 모르는 야만적이고 무능력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또한, 군인, 뱃사공, 판관 등등 와인 때문에 업무에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들은 일할 때 와인을 마셔선 안 되었습니다. 특히 병영국가였던 스파르타에서는 아예 와인을 못 마시게 했습니다. 스파르타의 지도층은 때때로 농노 계급인 헬로트에게 와인을 주고 취하게 한 뒤, 청소년들에게 헬로트들의 무절제하고 방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음주의 폐해를 경고할 정도였죠.
그리스만큼 엄격하진 않지만, 로마에서도 과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사람 사이에 다툼을 불러일으키므로 절제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와인과 음주 습관이 문명인으로서 도덕성과 교양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던 것은 로마도 마찬가지였죠. 플리니우스 역시 고급 와인을 격찬하는 한편, 와인을 많이 마시면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와인과 관계있는 질병으로 건망증, 기억상실, 자아도취적인 방종, 반사회적인 행동, 언어 및 시력 장애, 위장 확장증, 구취, 오한, 현기증, 불면증, 돌연사를 들었습니다.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질병들은 대부분 현대 의학에서도 과음의 문제점으로 꼽고 있는 것들이죠.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