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역사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시작

까브드맹 2015. 5. 19. 07:00

526년 경의 게르만족 왕국들과 동로마 제국
(526년 경의 게르만족 왕국들과 동로마 제국.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Germanic_peoples#Pytheas)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여러 게르만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중세의 문이 열리게 되죠. ‘중세’하면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로마 시대보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죠. 하지만 많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 중세시대 초기의 여러 문화나 제도는 이미 로마 시대 말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그 후에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세는 온전히 발전 단계에 있었던 역사이지 퇴보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게르만족의 산발적인 공격이 지속하였던 3~5세기에 유럽의 포도 재배는 트리어(Trier) 인근의 모젤(Mosel)강까지 크게 확대되었던 상태였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생겨난 짧은 혼란기가 지나가고, 유럽 각지에 새로운 나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잠깐 줄어들었던 와인 생산량은 본래의 자리를 회복합니다. 새로운 야만족 지배자들은 와인 생산을 장려하고 포도밭을 보호했습니다. 서고트족의 법전에 나오는 ‘포도밭을 훼손하면 중형에 처한다’라는 문구는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입니다. 또한, 포르투갈을 다스리던 고트족 출신의 오르도누(Ordono) 대왕은 코임브라 인근의 포도밭을 수도원에 하사하기도 했죠.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야만족들이 포도밭을 황폐하게 만들고 수도원이 와인을 지켰다기보다는 새로운 야만족 정복자들이 포도밭의 보호에 노력하고 교회의 재산 증식에 이바지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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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서로마 제국의 붕괴로 인해 와인 무역은 침체기로 접어듭니다. 하나의 정치적 영역이 여러 개로 갈라지고, 새로운 국경이 생기면서 와인 무역로가 곳곳에서 막혔기 때문이죠. 중세가 기본적으로 장원제에 입각한 자급자족의 농업경제 체제였던 것도 무역이 침체한 이유입니다. 지방 영주들은 무역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자기 영토의 특산물로 경쟁자를 부유하게 해주는 것으로 생각해서 교통로에 관문을 세우고 통행세를 엄청나게 걷곤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무역과 마찬가지로 와인 무역은 로마 시대와 비교하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참고 자료>

1. 로도 필립스 지음, 이은선 옮김,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서울 : 시공사, 2002

2. 영문 위키피디아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