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13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시작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여러 게르만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중세의 문이 열리게 되죠. ‘중세’하면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로마 시대보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죠. 하지만 많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 중세시대 초기의 여러 문화나 제도는 이미 로마 시대 말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그 후에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세는 온전히 발전 단계에 있었던 역사이지 퇴보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게르만족의 산발적인 공격이 지속하였던 3~5세기에 유럽의 포도 재배는 트리어(Trier) 인근의 모젤(Mosel)강까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유럽 내륙으로 퍼져나간 로마의 와인 문화

로마 군단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와인 생산지는 1세기경에 남으로 크레타섬, 북으로 잉글랜드, 서로 포르투갈, 동으로 폴란드까지 넓혀졌습니다. 한국인에게 쌀과 된장이 주식이듯 로마인에겐 빵과 와인이 주식이었으므로 로마의 군인들이 현지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곳을 중심으로 와인 문화가 퍼져나갔죠. 만약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었으면 무역로를 따라 와인을 수입해서 마셨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통해 사실상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와인은 주요 식품으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의 7성사 중 하나인 성체성사에서 밀떡과 와인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와인 문화와 생산이 퍼..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제국의 로버트 파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로마의 학자이며 작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현대의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에 비견될 만한 당대의 와인 전문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카가 있어서 대(大) 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그는 란 책을 쓰면서 서기 1세기 무렵의 로마 제국과 이웃 국가에서 생산하던 와인에 관해 자세히 적어놓았죠. 에는 91종의 일반 와인, 50종의 고급 와인, 38종의 수입 와인 등 모두 합쳐 179종의 와인 목록이 나오며 플리니우스는 이 와인들을 원산지별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쿠반 와인에는 XCVI등급을, 팔레르노 와인에는 XC등급을 매겼습니다. 또한, 특정 제품에 관한 평가도 기록해 놓았는데, 이런 모습은 원산지를 강조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평가

로마 시대에도 와인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하나같이 독하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와인 전문가들처럼 색이나 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도와 알코올 도수였죠. 평가 항목에는 와인의 숙성도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오래된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의 ‘오래된 와인’이란 전년도에 만든 와인을 뜻했다고 합니다. 대다수 와인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식초로 변하거나 상했다는 얘기죠.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이나 탄닌이 많이 들어간 와인만 해를 넘겨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오래된 고급 와인들은 당연히 가격도 비쌌습니다. 301..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와인의 스타일

로마 시대의 와인도 현대 와인처럼 맛과 향이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다양했죠. 서민들이 즐긴 와인은 오늘날의 저가 와인처럼 묽고 가벼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은 와인을 다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만드는 음료인 ‘로라’를 즐겨 마셨습니다. 병사들은 취하면 안 되므로 와인 대신 식초로 변질되기 직전의 와인에 물에 타서 만든 포스카(Posca)를 마셨죠. 부유층은 좋은 와인을 마셨는데, 당도가 높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쳐줬습니다. 그래서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를 말려서 당도를 최대한 높인 상태에서 와인을 만들었고, 끓인 포도즙과 꿀을 넣어 단맛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오늘날엔 와인을 만들 때 포도 말고 다른 재료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첨가물을 넣는 것이 전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2/2

로마와 그리스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산부가 술을 마셨을 때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일종의 권위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와인을 비롯한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술에 취하면 문란해진다는 남성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서도 술에 취한 여성이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와인에 관대했던 로마에서도 여성의 음주는 부도덕한 것이었죠. 진작부터 와인 수요가 많았지만,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러 로마의 와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영토의 확대나 인구 증가 등도..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1/2

처음 만들었을 땐 계층의 구분 없이 마시는 술이었을 와인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퍼지면서 왕족과 귀족의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자들은 피와 같은 색을 지닌 와인에서 고대인들이 신성함을 느꼈고, 두 지역 모두 포도를 재배하기에 기후와 땅이 마땅하지 않아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에 와인이 고위층을 위한 술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족과 귀족이 와인을 독차지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흔한 재료인 보리로 만든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당시 서민들에겐 맥주가 와인보다 더 인기 있었다고 하네요. 와인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됩니다. 두 지역 모두 포도 재배에 알맞고, 일찍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이 들어선 지역이라 그랬을까요? 아무튼, 그리스-로마 문명이 전해진 곳에선 와인이 술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용기

고대 조지아인이 토기에서 포도가 발효한 와인을 발견한 이래로 와인 양조는 토기에서 이뤄졌습니다. 페니키아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 암포라라는 토기에 와인을 양조했고, 이웃 나라로 수출했죠. 하지만 암포라 외에 다른 용기를 쓰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때때로 염소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와인을 양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번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주머니는 다시 쓸 때 조심해야 했죠. 와인이 발효할 때 나오는 탄산가스가 낡은 주머니의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와인이 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성경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상황에 유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서기 1세기에 혁신적인 식품 용기가 발명되었고, 와인 생산에도 사용됩니다. 바로 오크통이죠.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시대의 와인 보관법

오늘날처럼 유리병이나 코르크 마개, 이산화황이 없었던 고대에는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와인을 만들 때 으깨진 포도알을 발효조 안에 넣으면 포도 무게 때문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포도즙이 있습니다. 이 즙은 고급 와인을 만들 때 쓰는데, 옛날에도 고급 와인 양조에 사용했습니다. 이 즙으로 만든 와인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보관만 잘하면 몇 년 동안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이 매우 적어서 포도를 압착해서 짜낸 즙을 함께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죠. 두 즙을 섞어서 만든 와인을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흔한 와인 보관법은 암포라에 와인을 담고 올리브 기름을 위에 부어 공기를 차단하거나, 포도의 당도를 높여 좀 더 독한 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군의 음료수, 포스카.

와인에 맛 들인 고대 로마인이 와인 사업의 수익성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에 포도밭을 가꾸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부와 중부 유럽을 석권해 나가는 로마군의 군화 발자국을 따라 포도나무와 와인도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죠. 하지만 로마군이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군인들의 건강이 더 큰 이유였죠. 요즘도 상수도 시설이 안 좋은 곳에서 물을 잘못 마시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로마군이 알프스 너머 유럽 대륙을 정복해 나갔던 옛날에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했겠죠. 만약 병균이 우글거리는 물을 잘못 마셨다가 부대 안에 이질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전투력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러시아로 쳐..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인들, 와인 생산을 논하다.

대 정치가 카토도 농업론에서 와인에 관한 내용을 썼지만, 고대 로마인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이 기록한 와인 양조법을 현대 와인 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 와인과 관련된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콜루멜라(Columella)는 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습니다. •포도나무 사이의 알맞은 간격 •와인 종류에 따른 적합한 생산지들 •버팀목 세우는 방법과 일꾼 한 명이 하루에 세울 수 있는 버팀목의 양 •포도 농사에 필요한 일꾼의 수 •노예의 식대 •포도 품종에 따른 와인의 양과 질, 그리고 선택의 문제 로마 문필가 사이에서 와인은 늘 화제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의 와인 산업

전쟁을 통해 지중해를 앞마당 연못처럼 만들어버린 로마는 당대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와인 문화를 흡수, 통합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에는 그리스인이 개간해 놓았던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을 접수해서 와인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굳혔죠.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정치가 카토(Cato)는 에서 “포도 재배는 이제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당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가내 소비가 아닌 산업 형태를 갖췄음을 알 수 있죠.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그리스와 발칸 반도 북쪽, 이집트, 프랑스, 스페인, 소아시아 반도까지 차례로 정복해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떠올랐습니다. 대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와인, 로마로 전파되다.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인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지만, 다른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죠. 그들이 그리스 문명에서 배운 문화 중에는 당연히 와인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주목했던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여러 개의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도시 근처엔 당연히 포도밭을 조성해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죠. 이탈리아의 토질이나 지형,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했기에 그리스인은 이탈리아를 외노트리아(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와인 생산 기술은 교류를 통해 로마로 전파되었고 로마의 와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로마의 와인 문화가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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