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노 누아
프랑스 서부의 보르도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가 있다면 동부의 부르고뉴에는 피노 누아(Pinot Noir)가 있습니다. 피노 누아의 포도송이는 얇은 껍질의 짙은 색 포도알이 촘촘하고 단단하게 붙은 형태입니다. 피노 누아란 이름은 이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Pinot’는 소나무, 또는 솔방울, ‘Noir’는 검다는 뜻이죠. 그래서 피노 누아는 '검은 솔방울’이란 의미입니다.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아서 색소와 탄닌이 적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만들면 옅거나 중간 농도의 광택을 띠는 루비색이 나오죠. 흔히 버건디 레드(Burgundy Red)라고 부르는 색은 피노 누아 와인의 색깔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피노 누아는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으면서 기온이 비교적 선선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그렇기에 유명한 피노 누아 생산지는 부르고뉴처럼 대륙성 기후를 띠는 서늘한 내륙 지역이거나 미국의 오레곤(Oregon) 같은 북쪽과 캘리포니아의 고지대, 또는 뉴질랜드 남섬처럼 최남단 지역이죠.
포도는 유전자가 불안정한 식물이며 피노 누아는 이런 특성이 특히 강합니다. 같은 나무에서 자른 가지를 심어도 기후와 밭에 따라 와인 맛과 향이 달라지는 일이 있죠. 쉽게 클론 품종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프랑스 국립와인사무국(ONIVINS, Office National Interprofessionel des Vins)에서는 총 43가지의 피노 누아 클론을 선정해서 재배 허가를 내주며 와인 생산자들은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클론 품종을 재배해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껍질 색이 진한 것은 레드 와인용으로, 껍질 색이 연한 것은 스파클링 와인용으로 씁니다. 수확량이 많은 클론은 기본적이면서 저렴한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수확량이 적은 것은 고급 와인을 생산할 때 사용하죠.
피노 누아는 탄닌이 적어서 와인을 만들면 바디가 무겁지 않은 편이고, 양조 방식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신선한 맛과 우아한 향, 부드러운 질감이라는 피노 누아 와인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쉽죠. 맛과 향이 뛰어난 고급 피노 누아 와인을 생산하려면 잘 여문 포도로 정성 들여 만들어야 하기에 포도 재배자와 와인 생산자 모두 남다른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재배하기 힘들고 와인 만들기도 힘든 포도이지만 제대로 된 피노 누아 와인은 굉장히 매혹적인 맛과 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 세계 와인 생산자들은 기회만 되면 피노 누아로 멋진 와인을 만들고 싶어 하죠.
피노 누아 와인의 향은 아주 섬세하고 복합적입니다. 처음엔 주로 붉은 과일과 달콤한 꽃, 소나무 향 등이 나오다가 숙성되면서 송로버섯과 향신료, 가죽 등등 미묘하고 복합적인 향을 풍기죠. 대표적인 향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 과일 계열 : 체리(Cherry), 라즈베리(Raspberry), 딸기(Strawberry), 말린 자두(Prune), 자두(Plum), 석류(Pomegranate), 시트러스(Citrus), 크랜베리(Cranberry)
○ 나무 계열 : 소나무(Pine)
○ 식물 계열 : 버섯(Mushroom), 제비꽃(Violets), 라벤더(Lavender), 재스민(Jasmine), 장미(Rose), 민트(Mint), 사탕 무 뿌리(Beetroot)
○ 향신료 계열 : 향신료(Spice), 코리앤더(Coriander), 생강(Ginger), 정향(Clove), 육계피(Cinnamon), 올스파이스(Allspice)
○ 기타 계열 : 커피(Coffee), 토양(Earth), 훈향(Smoke), 캐러멜(Caramel), 코코아(Cocoa), 가죽(Leather), 야생고기(Game), 퇴비(Compost), 녹비(Mannure)
달지 않고 과일 맛이 많으며 신맛이 강한 편입니다. 탄닌이 적어서 부드럽고 우아하며 떫은맛이 거의 없죠.
2. 테스코 레드 버건디 피노 누아 2009
테스코 레드 버건디 피노 누아 2009는 루이 조세(Louis Josse)에서 만들었으며, 부르고뉴의 유명한 와인 회사인 라보에 루아(Labouré-Roi)에서 와인 양조를 맡았던 베르트랑 스트레블러(Bertrand Straebler)가 생산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양조 철학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처음엔 유서 깊고 전통적인 와인을 모방하는 것을 제 와인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 후엔 경험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가치 있는 와인들을 모델링하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와인을 만들고 있죠. 저는 항상 지형과 토양의 확실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려 합니다. 매년 자연이 제게 위임한 것을 와인에 반영하려 열심히 일하며, 창조적인 작업을 위해 노력하죠. 그래서 위대한 부르고뉴 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맑고 깨끗한 연한 루비색입니다. 저가 피노 누아치곤 올라오는 향의 양이 상당합니다. 체리와 크랜베리 같은 붉은 과일 향에 풀 비린내 같은 향이 섞였고 나무 향도 약간 풍기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과일 향이 좀 더 달게 느껴지기 시작하지만 큰 변화는 없습니다.
깨끗하고 깔끔하며 탄닌의 떫은맛은 거의 없습니다. 느낌은 좀 단조롭네요.
달지 않고 드라이하며 아주 십니다. 산도가 꽤 높은데 가볍고 단순해서 깊은 인상을 주진 않네요. 크랜베리와 덜 익은 과일의 풋익은 맛이 나오며 단순합니다. 나무와 허브 풍미도 약간 있습니다. 여운은 바로 꺾이지 않고 제법 이어집니다. 다만 느낌은 평범합니다.
산도가 아주 높은 반면 다른 요소가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역시 저가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한계가 느껴지네요. 라이트 바디의 와인으로 맛이 진하지 않아서 풍미가 강하지 않은 고기와 잘 맞습니다.
아마 세일을 제외하곤 국내에서 제일 저렴한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맛이야 떨어지지만 가격을 생각해 보면 괜찮네요. 월급 받기 전날이라 지갑이 가볍지만, 그래도 피노 누아 와인이 그립다면 한 번 고려해 보시길.
닭고기 백숙, 치킨 샐러드, 조금 저렴한 부위의 참치회, 삶은 돼지고기 등과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12년 3월 30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