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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모습을 감추려 해도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 Domaine de la Romanee-Conti Grands Echezeaux 2006

까브드맹 2012. 5. 22. 06:00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 그랑 에쎄죠 2006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 그랑 에쎄죠(Domaine de la Romanee-Conti Grands Echezeaux) 2006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꼬뜨 드 뉘(Côte de Nuit)의 본-로마네(Vosne-Romanée) 마을에 있는 그랑 에쎄죠(Grands Échezeaux) 포도밭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Pinot Noir) 포도로 만드는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 와인입니다.

1. 도멘 드 라 로마네 꽁티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역사는 1232년에 본(Vosne) 마을의 생-비방(Saint-Vivant) 수도원이 1.8헥타르의 포도밭을 사들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631년에 드 크루넘부르(de Croonembourg) 가문이 이 포도밭을 구매했고, 로마네(Romanée)라는 이름을 붙였죠. 이때 인접한 라-타쉐(La Tâche) 밭도 크루넘부르 가문의 소유가 됩니다.

1760년에 앙드레 드 크루넘부르(André de Croonembourg)는 도멘을 팔기로 했고, 이때 프랑스 사교계의 두 거물이 도멘을 놓고 경쟁을 벌입니다. 한 명은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바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이었고, 또 한 명은 루이 프랑소와 레르 드 부르봉, 꽁띠 왕자(Louis François Ier de Bourbon, Prince de Conti)였습니다. 자존심을 건 두 사람의 경쟁은 꽁띠 왕자의 승리로 끝났고, 도멘을 사려고 꽁띠 왕자가 지불한 돈이 무려 8000 리브르라고 하는군요. 라틴어로 1000 리브르를 뜻하는 말이 밀레(mille)이고 백만장자를 뜻하는 밀리어네어(millionaire)가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8000 리브르가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이 가시죠? 이 사건을 계기로 로마네 포도밭은 뒤에 꽁띠라는 이름이 붙어서 로마네-꽁띠(Romanée-Conti)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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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띠 왕자가 그토록 큰돈을 내고 도멘을 샀지만, 애석하게도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도멘의 건물과 포도밭은 프랑스혁명 정부의 손에 넘어가고 맙니다. 혁명 정부는 통치 자금을 마련하려고 도멘을 경매에 부쳤고, 건물과 포도밭은 니꼴라 데피 드 라 누에르(Nicolas Defer de la Nouerre)에게 팔리고 맙니다. 누에르는 도멘을 경영하다가 1819년에 줄리앙 우브라르(Julien Ouvrard)에게 78,000프랑에 되팔았고, 1869년에 자끄-마리 뒤보-블루셰(Jacques-Marie Duvault-Blochet)가 이 도멘을 구매하죠. 그는 에쎄죠와 그랑 에쎄죠, 리슈부르그(Richebourg) 포도밭도 일부 사들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의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라 타쉐는 나폴레옹의 장군 중 한 명이었던 루이 리제-벨에어(Louis Liger-Belair)와 관련 있는 그랑 크뤼 포도밭입니다. 루이는 많은 포도밭을 가진 미망인인 클레어-세실 바지르(Claire-Cecile Basire)와 결혼했고, 1815년까지 그의 아들인 루이-샤를(Louis-Charles)과 함께 라 타쉐를 포함한 40헥타르의 훌륭한 포도밭을 획득하죠.

세월이 흐르면서 리제-벨에어 가문이 소유한 포도밭은 24헥타르로 줄어들었고, 상속에 따른 갈등으로 인해 1933년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티에 라 타쉐를 팔아버립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 꽁티는 뒤보-블루셰(Duvault-Blochet)가 관리하던 시기에 인접한 레 구디쇼(Les Gaudichots) 포도밭 4헥타르를 얻었고, 많은 법적 논쟁 후에 1936년에 라 타쉐와 레 구디쇼를 하나로 합쳐서 라 타쉐 모노폴(monopole)로 만들어버립니다.

 

 

도멘이 소유한 또 하나의 그랑 크뤼 포도밭인 로마네 생-비방(Romanée Saint-Vivant)은 1791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인 갸스파르 몽즈(Gaspard Monge)의 사위인 니꼴라-조세프 마리(Joseph Marey)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마리-몽즈 가문은 1898년에 생-비방 포도밭의 일부를 라투르(Latour) 가문에 팔았고, 나머지 구획은 1966년에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에 임대했다가 1988년에 도멘에 팔아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가 본-로마네 마을에서 갖고 있는 6개 포도밭이 모두 갖춰지게 되었죠.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는 몽라쉐(Montrachet) 그랑 크뤼 포도밭의 일부 구획도 갖고 있으며, 이곳에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2008년 11월에는 꼭똥 포도밭 일부도 구매해서 2009 빈티지부터 생산하고 있죠.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로마네-꽁띠(Romanée-Conti) : 약 7,300병

2) 라 타쉐(La Tâche) : 약 23,600병

3) 리쉐부르(Richebourg) : 약 1,000 상자

4) 로마네 생-비방(Romanée Saint-Vivant) : 약 1,500 상자

5) 그랑 에쎄죠(Grands Échezeaux) : 약 1,150 상자

6) 에쎄죠(Échezeaux) : 약 1,340 상자

7) 꼭똥(Corton) : ?? 

8) 몽라쉐(Montrachet) : 약 250 상자

8가지 와인 모두 부르고뉴 와인의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 등급입니다.

 

 

그랑 에쎄죠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Grands Échezeaux Domaine de la Romanée-Conti) 2006의 시음은 철저한 정보 통제 속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이뤄졌습니다. 어떠한 와인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마셨기에 조금의 선입견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최대한 공정한 평가를 매겼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향을 맡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대단하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향, 맛, 질감, 균형감 등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더군요. 저뿐만 아니라 와인을 함께 마셨던 이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 와인에 높은 평가를 하며 뛰어난 품질에 대한 공감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시음이 끝난 후 이 와인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다들 깜짝 놀라고 말았죠. 이처럼 훌륭한 와인을 제공해 준 윤모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군요.

2. 와인의 맛과 향

색은 아주 맑고 밝으며 영롱한 루비 빛입니다. 향이 제법 무거워서 처음엔 이렇다 할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에 갖가지 향을 맡을 수 있었죠. 산딸기와 체리, 크랜베리, 레드커런트 같은 붉은 과일의 다양한 향이 쏟아질 듯 흘러나오며, 여기에 우아한 나무와 향긋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신료 향이 뒤섞여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볶은 견과류의 고소한 향도 흘러나옵니다. 이런 향들은 너무 약하지도 너무 강하지도 않게 균형을 이루며, 섬세하고 우아한 인상을 주면서 계속 이어지죠. 시간이 갈수록 향이 더욱 좋아졌기에 아마도 와인의 양이 더 많고 시음 시간도 더 길었다면 더욱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맑고 밝은 색감과 달리 무게감 있는 탄닌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거칠고 떫은 느낌은 전혀 없으며 탄력 있고 우아한 질감을 지녔죠. '비단 같다.', '실키(Silky)하다'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무게감 있는 탄닌과 이를 뒷받침하는 매력적인 산미가 훌륭하며, 이 두 요소가 13%의 알코올과 결합해 우아하면서 강하고, 그윽하면서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산딸기와 체리 같은 붉은 과일의 풍미와 우아하고 그윽한 오크와 삼나무 계열의 풍미, 향긋한 향신료의 풍미가 조화를 이뤄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기품 있는 맛을 보여줍니다. 뭐랄까... 아직 젊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워서 나이보다 훨씬 깊이 있는 내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나 할까요? 여운은 길고 은은하게 이어집니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동시에 풍부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해서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는 훌륭한 균형감을 갖췄습니다. 이런 균형을 바탕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조화로운 맛을 느끼게 해 주네요.

섬세하게 조리한 소고기 스테이크와 로스트비프,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같은 고기찜, 버섯을 넣은 소고기 요리 등과 함께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A+로 비싸더라도 기회가 되면 꼭 마셔봐야 할 뛰어난 와인입니다. 2012년 5월 11일 시음했습니다.

와인 생산지인 그랑 에쎄죠에 관한 정보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프랑스] 부르고뉴 > 꼬뜨 도르 > 꼬뜨 드 뉘(Côte de Nuit) > 본-로마네(Vosne-Romanée) > 그랑 에쎄죠(Gran

1. 그랑 에쎄죠 & 에쎄죠 그랑 에쎄죠와 에쎄죠는 둘 다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의 플라제-에쎄죠(Flagey-Échezeaux) 마을에 있는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입니다. AOC 지정은 그랑 에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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