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이탈리아] 보쌈과 마실 와인을 고르라면 이 와인을 선택하겠습니다 - Boroli Langhe DOC Arneis 2009

까브드맹 2011. 10. 10. 06:00

보로리 랑게 아르네이스 2009

피에몬테의 랑게(Langhe) 지역에서 재배한 아르네이스(Arneis) 포도로 만든 보로리 랑게 아르네이스(Boroli Langhe Arneis) 2009는 일반적인 화이트 와인과 맛과 향이 사뭇 다릅니다. 상큼한 과일 향 대신 진한 흰 꽃 향을 풍기며 매우 묵직하죠.

1. 보로리 랑게 아르네이스 2009

흔히 화이트 와인은 생선 요리와 잘 맞는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생선회나 향신료를 많이 쓴 생선 요리는 소비뇽 블랑이나 평범한 이탈리아 화이트, 프랑스 북서부의 뮈스까데(Muscadet) 와인과 잘 어울리며 기름과 크림을 많이 사용한 생선 스테이크는 샤르도네처럼 풍미가 진한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리죠.

하지만 보로리 랑게 아르네이스는 일반적인 생선 요리와 잘 안 맞습니다. 만약 동태전 같은 생선 요리와 함께 마신다면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물씬 풍기며 마치 25도짜리 소주를 마신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화이트 와인=생선 요리라는 공식을 깨는 와인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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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르네이스의 드라이하고 묵직한 질감은 육류와 잘 어울리며, 특히 삶은 돼지고기와 함께 마시면 일품입니다. 삶은 돼지고기와 함께하면 와인의 상큼한 산미가 늘어나면서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줘 맛을 더 좋게 만들어주죠. 맛이 강한 편이라 매콤한 향신료를 많이 쓴 요리에도 잘 맞는데, 매콤한 양념을 쓰는 김치와 함께 먹어도 눌리지 않고 조화를 이룹니다. 그래서 삶은 돼지고기와 양념을 많이 넣은 김치가 함께 있는 음식, 즉 보쌈과 먹으면 아주 멋진 마리아쥬를 맛볼 수 있죠. 만약 보쌈과 함께 마실 와인을 고르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이 와인을 선택할 겁니다.

와인에 사용한 아르네이스 포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링크 글을 참조하세요.

 

 

2. 와인의 맛과 향

맑고 깨끗한 밀짚 색으로 아주 예쁩니다. 풍성한 향은 화이트 와인에서 흔히 나오는 하얗고 노란 과일보다는 흰 꽃의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중에서 린덴과 아카시아 향이 두드러지죠. 굽지 않은 아몬드 같은 견과류와 복숭아 같은 핵과류(核果類), 순한 오크 향 등도 약하게 나옵니다.

화이트 와인치고 상당히 묵직한데 샤르도네와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흔히 마시는 화이트 와인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죠. 약간 찐득(?)하며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흔히 마실 수 있는 샤르도네와 소비뇽 블랑, 리슬링 와인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맛이 납니다. 매우 드라이해서 전혀 달지 않고 산도는 낮습니다. 오크 처리를 해서 그런지 나무 풍미가 가득하죠. 그래서 마시면 침이 샘솟는 다른 화이트 와인과 달리 오히려 입이 메마른 느낌이 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침이 나옵니다. 나무와 흰 꽃의 풍미가 묵직한 질감과 결합한 맛은 마치 나무를 갈아 넣은 듯한 느낌을 주죠. 이렇게 메마르고 쓴 풍미가 함께 느껴지는 맛의 기운은 상당히 강해서 어지간한 레드 와인보다 더 셀 정도입니다. 다만 기간이 갈수록 나무 풍미보다 과일 풍미가 더 강해지죠.

 

 

그래서 음식과 함께 마실 땐 어류보다 육류와 잘 맞습니다.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 맛이어서 만약 보쌈과 함께 마실 화이트 와인을 찾는다면 첫손에 꼽겠습니다. 소고기도 능히 좋은 궁합을 이룹니다. 하지만 산도가 낮고 메마른 느낌이 강해서 생선회는 되도록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동태전처럼 기름에 익힌 생선 요리도 알코올 기운이 강해지므로 피해야 합니다. 여운은 굉장히 강렬하고 길게 이어집니다. 묵직한 힘도 느껴지네요.

흔히 마시는 화이트 와인과 비교하면 산미와 과일 향이 부족하지만, 전체적인 균형과 느낌을 고려해보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서 처음 마실 땐 당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보쌈 같은 돼지고기와 김치 요리, 닭고기와 소고기 샐러드, 돼지고기와 닭고기 요리 등과 잘 맞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11년 10월 1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