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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부르는 시 9 - 취중에 붓을 달려 이청경(李淸卿)에게 주다.

까브드맹 2010. 12. 10. 09:35

이규보 묘. 이미지 출처 : http://www.ganghwa.incheon.kr


취중에 붓을 달려 이청경(李淸卿)에게 주다

이규보

去年園上落花叢    (거년원상락화총)       지난해 동산에 피었다 떨어진 꽃떨기는
今年園上依舊紅    (금년원상의구홍)       올해도 그 동산에 예처럼 붉건마는
唯有去年花下人    (유유거년화하인)       어째서 지난해 꽃 아래서 놀던 사람은 
今年花下白髮翁    (금년화하백발옹)       올해는 그 꽃 아래 백발 늙은이인지.
花枝不減年年好    (화지불감년년호)       해마다 줄지 않는 좋은 꽃가지는 
應笑年年人漸老    (응소년년인점노)       해마다 늙어 가는 사람을 응당 비웃으리라.
春風且暮又卷歸    (춘풍차모우권귀)       봄바람도 저물고 꽃 역시 가버릴 테니 
愼勿對花還草草    (신물대화환초초)       부디 꽃 대해 망설이지 말라. 
我歌君舞足爲歡    (아가군무족위환)       내 노래에 그대의 춤이면 족히 기쁘리니 
人生行樂苦不早    (인생행락고불조)       인생 행락을 왜 때 맞춰 아니할 건가.
顚狂不顧旁人欺    (전광불고방인기)       남이야 우리를 미치광이라 하든 말든 
要使千鍾如電釂    (요사천종여전조)       천 잔 술을 어서 빨리 마셔나 보세. 
君不見劉郞飮酒趁芳菲 (군불견유랑음주진방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유랑이 술 마실 때면 꽃향기 찾는 것을. 
解道風情敵年少     (해도풍정적년소)      헤아리건데 그 풍정이 소년에 맞선다오.[각주:1] 
又不見東坡居士簪花老不羞(우불견동파거사잠화노불수) 또 보지 못했는가? 동파 거사가 늙어서도 꽃 꽂고 부끄러워 않았다[각주:2]는 말을. 
醉行扶路從人笑    (취행부로종인소)       취한 걸음 지팡이에 의지해 사람들이 웃었다오. 
古來得意只酒杯    (고래득의지주배)       예부터 흥이 나면 술잔뿐이니, 
莫辭對月傾金罍    (막사대월경금뢰)       달 대해 금항아리 기울이길 사양 말라.
榮華富貴一笑空    (영화부귀일소공)       부귀영화도 한 번 웃음에 사라지리니
請看魏虎銅雀臺    (청간위호동작대)       위 무제의 동작대 노래[각주:3]를 보게.


<동명왕편>,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 등으로 잘 알려진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李圭報, 1168년∼1241년)는 우리에게 뛰어난 명문장가요, 시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등학교 고문 시간에 한 번 쯤은 이규보의 글을 접해봤을텐데요, 정작 이 분의 술에 관한 주옥같은 시들은 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규보는 시, 거문고, 술을 좋아해서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리울 정도였으며, 당연히 술에 대한 뛰어난 시도 많이 지었죠.

위의 시는 그 중의 하나로써 인생의 허망함과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누릴 것을 권하는 애주가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시 외에도 술에 관한 뛰어난 시들을 많이 지었는데, 그것들은 차차 포스팅 해가기로 하지요.

위의 시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동국이상국집편에 실린 번역시를 참조하여, 약간 손을 본 것입니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멋진 시 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 자료들을 읽어보실 분들은 아래의 링크로 한 번 찾아들어가보시기 바랍니다.


  1. 유랑은 당(唐) 나라 유우석(劉禹錫)을 가리킨 듯하나 자세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2. 동파 거사는 송(宋) 나라 소식(蘇軾)의 호. 소식의 길상사상모란시(吉祥寺賞牧丹詩)에 “늙은이는 머리 위에 꽃 꽂고 부끄러워하지 않건만, 꽃이야 응당 늙은이 머리에 있기 부끄러우리.[人老簪花不自羞 花應羞上老人頭]”라 한 데서 온 말입니다. [본문으로]
  3. 인생의 부귀영화가 허무함을 뜻하는 말. 동작대(銅雀臺)는 악부가사(樂府歌詞)의 이름으로 이 동작대 가사의 내용은 위 무제(魏武帝 삼국(三國)시대의 조조(曹操))가 죽을 무렵에 그의 기첩(妓妾)들을 연연(戀戀)한 일과 그의 기첩들이 무제가 죽은 뒤에 쓸쓸히 무제의 은총을 추모하는 등의 일을 서술하였답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