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책 이야기

[문화] 신화, 전설, 문학 속의 와인 이야기 3 - 유령신부 속의 결혼 서약

까브드맹 2010. 11. 18. 08:14

"이 손으로 당신의 슬픔을 닦아줄 것이며,

내가 당신의 와인이 될지니 당신의 잔은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촛불로 나는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길을 밝혀주리다.

이 반지로 나는 당신이 내 아내가 되어주길 청합니다." 

위의 글귀는 팀 버튼이 만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인 '유령신부(2005)'에 나오는 결혼 서약입니다. 티모시 윌리엄 팀 버튼(Timothy William "Tim" Burton, 1958)은 미국의 영화감독이며 작가입니다. 1982년에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인 '빈센트(Vincent)'로 데뷔한 후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왔죠. 그의 영화 세계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국내에는 '가위손'을 시작으로 배트맨 리턴스,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령신부는 원래 결혼식 전날에 살해당한 신부가 살아있는 남자를 꼬드겨서 지하로 데려간다는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팀 버튼의 상상력이 어우러져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속의 남자 주인공인 빅터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부모는 큰 상인인데, 막대한 부를 이용해서 귀족 가문과 사돈을 맺어 부에 이어 명예도 손에 넣으려 하죠. 그래서 빅터를 몰락한 귀족 가문인 에버글롯가의 영애인 빅토리아와 정략결혼시키려 합니다.

결혼식 전날 결혼 당사자인 빅터와 빅토리아 두 사람과 양가의 부모는 함께 모여 결혼식 예행연습을 하는데, 빅터는 긴장감 때문에 자꾸 실수하고 결혼 서약도 제대로 외우지 못합니다. 빅터의 어리바리함에 화가 난 주례는 예행연습을 중단하고 빅터가 결혼 서약을 똑바로 외울 때까지 예행연습을 안 하겠다고 합니다. 예행연습은 중단되고 빅터는 그날 밤, 마을 인근의 숲에서 결혼 서약을 열심히 외우며 예행연습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가 연습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서약을 읊조리며 반지를 나무 밑동에 손가락처럼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끼우죠. 그런데 사실 그 나뭇가지는 사기꾼에게 속아 결혼식 전날 살해당한 다음 나무 밑에 묻혔던 유령신부의 손가락뼈였던 겁니다. 유령신부는 빅터의 연습을 자신에 대한 결혼 서약으로 착각하고 무덤에서 일어나 빅터를 지하 세계로 끌고 가는데...

위의 결혼 서약은 모두 네 줄로 매우 짧지만, 결혼 생활에 관한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았습니다. 첫 줄은 세상의 고난으로 인한 상처에 대한 위로, 둘째 줄은 정신적, 물질적 충족, 셋째 줄은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한 인도를 얘기하며, 마지막 줄은 그러한 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얘기합니다. 여기서 와인은 물심양면으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서구 문화에서 와인은 단순히 술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상징되는 신성한 음료였습니다. 그랬기에 미국에서 금주령을 시행할 때에도 와인은 술이냐 아니냐 논쟁의 대상이 되었죠. 결국, 술로 인정해서 미국 내 와인 생산을 금지했지만, 성찬식을 위해서 몇몇 와이너리에 와인 생산을 허가했습니다. 그 와이너리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베린져사입니다.

와인이 생산되지 않았던 북유럽에서 와인은 귀족과 부유한 부르주아들의 술이었습니다. 일반 서민은 맥주를 마셨죠. 그래서 "당신의 와인이 되어 당신의 잔을 마르지 않도록 하겠다"라는 말은 성스러운 술인 와인처럼 당신의 마음을 채우고, 귀한 술인 와인을 끊임없이 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삶을 살도록 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네 줄로 된 짧은 서약서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매우 크고 운치도 있군요. 혹시나 프러포즈를 하실 분이 있으면 한 번 사용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