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팩 와인
팩 형태로 생산하는 와인은 꽤 실속 있습니다. 가격이 싸면서 양도 많고 맛도 괜찮은 편이거든요. 1ℓ짜리 작은 크기도 있지만 보통 3~4ℓ 정도의 양에 2~3만 원 사이의 가격입니다. 750㎖ 병으로 따져보면 비싸 봤자 7,500원 정도밖에 안 되죠. 물론 저가 와인이라서 깊고 우아한 맛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음식과 함께 마시기엔 나무랄 데 없습니다. 무엇보다 꼭지로 와인을 따르기 때문에 개봉 후에 와인이 공기를 거의 접촉하지 않게 되어서 장기 보관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면 한 박스 사서 베란다에 놓고 식사할 때마다 반주로 한 잔씩 마시면 딱 좋죠. 또 야외로 놀러 갔을 때에도 무겁고 깨지기 쉬운 병 와인보다 양과 비교해 가볍고 깨질 염려 없는 팩 와인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와인이 일상에서 즐기는 알코올성 음료가 아니라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에서 폼 잡고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아직 강하다 보니 사각의 종이팩에 담긴 팩 와인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다양한 팩 와인을 수입했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도 마트에 가면 팩 와인 한두 종류는 있으니 주머니가 가벼운데 와인을 마시고 싶으면 한 번 사보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유럽보다 호주나 미국산 팩 와인을 사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유럽산 팩 와인은 묽은 것이 많아서 진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안 맞기 때문이죠. 하지만 호주나 미국산 팩 와인은 데일리 와인으로 마시기에 딱 적당한 무게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팩 와인에 값싼 와인이 들어가다 보니 잘 익은 포도가 아니라 품질 낮은 포도를 쓰기 때문입니다. 품질 낮은 포도 중엔 잘 익지 않은 포도도 있기 마련이고 이런 포도가 들어가면 와인이 묽고 풋내가 나게 되죠. 그래서 괜찮은 와인이 미디엄 바디에서 풀 바디인 유럽에서는 저가 와인인 팩 와인은 묽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후가 좋고 일조량이 풍부한 미국과 호주에선 와인이 대부분 풀 바디해서 팩 와인도 미디엄 바디 이상입니다. 그래서 호주와 미국산 팩 와인이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잘 맞습니다.
2. 프란지아 레드
프란지아 레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 팩 와인입니다. 이탈리아계 이주민인 테레사 프란지아(Teresa Franzia)가 1906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옆에 세운 포도원에서 생산하죠. 가벼운 베리 향이 나며 식전주로 좋습니다. 곽에 토마토 파스타와 소고기 요리 같은 다양한 음식에 어울린다고 적혀 있는데 이런 와인은 개성이 약해서 여러 음식과 잘 맞는 것이 장점입니다. 주로 사용한 포도는 뗌프라니요이며 와인 상자에는 6주간 신선한 맛을 유지한다고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고 4주 정도 맛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저가 와인이지만 포도가 잘 자라는 기후를 가진 캘리포니아 와인답게 매우 진한 흑적색으로 오디나 블랙 체리가 떠오르는 색입니다. 중앙은 거의 흑색에 가깝게 진하고 주변부도 불투명할 정도로 진합니다. 라즈베리처럼 달콤하고 진한 붉은 과일 향이 풍부하게 흘러나옵니다. 줄기와 나뭇잎에서 나오는 비린 냄새도 살짝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과일 향이 줄어들고 비린 냄새가 강해집니다.
색깔이 진한 것과 달리 탄닌의 떫은맛은 별로 없습니다. 부드러운 맛이지만 탄탄한 질감은 느껴지지는 않네요. 미디엄 바디의 와인으로 음식과 함께 마시기에 딱 좋습니다. 산미가 있고 단맛이 조금 있습니다. 산지오베제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데 미국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이탈리아 것과 맛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비슷한 가격의 이탈리아 산지오베제 와인이 쾌활하다면 프란지아는 좀 더 차분하고 얌전한 느낌입니다. 마시고 난 후 약간 쓴맛이 나지만,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습니다. 다만 맛의 변화가 없이 단조로운데, 이 정도 가격의 와인이라면 당연하죠. 여운이 느껴지지만 깊지도 길지도 않습니다. 그냥 몇 초 가량 슬쩍 풍미가 이어지는 정도랄까요?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가볍게 마시기 좋고 파스타와 피자, 햄버거스테이크, 닭과 칠면조 같은 가금류, 각종 육류와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그냥 마셔도 나쁘진 않으며 밀가루 음식이나 고기 요리와 함께 먹으면 식탁의 즐거운 동반자가 될 겁니다.
2010년 9월 25일 시음했으며 개인적인 평가는 D-로 맛과 향이 부족한 와인입니다. 그래도 가격과 양을 따져보면 실속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