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스페인] 싼값에 회와 한식과 함께 마시기 좋은 - Bodegas Isidro Milagro Los Candiles Blanco

까브드맹 2010. 11. 4. 09:25

보데가스 이시드로 밀라그로 로스 깐디레스 블랑코

1. 저렴한 데일리 와인의 세계

마트의 와인 코너에 가면 오천 원 정도 하는 저렴한 와인이 두세 종류 이상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와인도 있지만 대부분 스페인 와인이죠. 스페인 와인 중에 저가 와인이 많은 것은 전 국토에서 포도를 재배해서 재배 면적이 세계 1위이며, 오랫동안 협동조합 방식으로 질보다 양을 중요시하며 저렴한 데일리 와인을 많이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스페인은 와인을 대량 수출하는 유럽 국가 중에서 인건비가 제일 싼 편이기도 합니다. 최근 자국 내 와인 소비가 줄어든 탓에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데 위의 요인과 합쳐져서 다른 나라 와인보다 싼 가격에 수출하는 것 같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1만 원 이하의 저가 와인을 찾으면서 값싼 스페인 와인의 수입량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2006년만 해도 와인 수입량에서 스페인 와인은 프랑스(4,600t)와 미국(4,200t), 칠레(3,800t)에 이어 4위(3,600t)였지만, 2007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서죠. 2009년 상반기에는 2,500t이 수입되어 프랑스를 제치면서 칠레(3,300t)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2010년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보다 수입량이 41% 증가해 마침내 칠레도 제치면서 수입 와인 1위에 등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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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상대적으로 비싼 프랑스와 칠레, 미국 등지의 와인 수입은 줄고 있습니다. 2010년 상반기 프랑스 와인은 8%(금액 7%) 감소했고, 미국 와인은 6%(금액 7%), 호주 와인도 15%(금액 6%)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와인은 저렴한 것이 많아서 수입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 와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여전히 작습니다.

물론 스페인에서도 값비싼 고급 와인을 많이 만들지만, 프랑스와 칠레 와인보다 지명도가 낮아서 아직은 품질보다 가격 위주로 수출하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 와인의 2010년 상반기 통관가격은 한 상자당 평균 12달러로 저가 와인 한 상자가 보통 12병인 것을 고려하면 병당 수입가는 1달러에 불과합니다. 이 가격도 2009년보다 2달러나 떨어진 가격이랍니다. 이렇게 싸다 보니 세금과 유통 수수료가 붙어도 시중 와인 샵에서는 5천 원 이하의 싼값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죠. 심지어 할인판매 기간에는 3천 원 정도에 판매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스페인 저가 와인은 매우 싸지만, 품질은 가격을 고려해볼 때 괜찮은 편입니다. 레드 와인은 대부분 딸기 향과 체리 향이 약하게 나고 탄닌의 떫은맛이 거의 없어 매우 가볍고 마시기 편합니다. 화이트 와인은 풋사과나 풋복숭아의 상큼한 향이 조금 나면서 물처럼 가볍고 약간 시어서 마치 레몬수 같죠. 그래서 그냥 마실 땐 별다른 느낌이 없지만, 음식과 함께하면 꽤 마실 만해집니다. 오히려 개성이 약해서 다양한 음식과 궁합이 잘 맞죠. 그래서 동네 피자, 막회, 중국 요리, 삼겹살, 해물탕, 매운탕, 양념치킨, 닭튀김, 돼지불백, 돼지갈비, 돼지 곱창, 생선구이, 부침개, 순대, 족발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과 어려움 없이 함께 먹을 수 있죠. 콜라나 사이다 대신 마시는 알코올이 들어간 과일 음료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더구나 가격 부담 없으니 한 상자씩 구매해서 데일리 와인으로 마시기에 좋죠. 전날 마시고 남은 와인은 요리에 넣어도 좋고요. 제가 만나본 외국인 여성은 이틀에 한 번꼴로 마트에 가서 이런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을 꼭 두 병씩 사더군요. 아마 식사 때마다 반주로 마시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이 고급술이나 특별한 날만 마시는 술로 여기는 일이 많지만, 이런 저렴한 와인을 일상에서 늘 즐기는 것이야말로 와인을 생활화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보데가스 이시드로 밀라그로 로스 깐디레스 블랑코 역시 스페인에서 수입하는 아주 값싼 화이트 와인입니다. 아이렌(Airen) 100%로 만드는 비노 데 메사(Vino de Mesa) 등급 와인이죠.

색은 미색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밀짚 색입니다. 테두리 부근은 거의 물처럼 투명한 빛을 띠며 가운데 색도 창백 합니다. 향은 청량하지만 별로 강하지 않고 평범합니다. 약한 풋사과 향과 시트러스 종류의 향이 조금 나오는 정도죠. 기분을 거슬리는 나쁜 향은 없습니다.

질감은 그리 날카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드럽지도 않습니다.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이죠. 단맛이 거의 안 나는 드라이한 와인으로 약한 바디감과 함께 단조롭지만 깨끗한 맛이 느껴집니다. 오렌지와 사과의 중간 정도인 맛이 나며 신맛이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합니다. 차갑게 마시면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입니다. 저가 와인 중에는 가끔 뒷맛이 조미료를 넣은 것처럼 찝찝한 것이 있지만, 로스 깐디레스는 그런 걸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또한, 저가 와인은 개성이 약해서 모든 음식과 두루 잘 어울리는 것이 많은데, 로스 깐디레스도 향이 강한 음식이나 매콤한 음식과 잘 맞습니다.

 

 

저렴한 화이트 와인치고 여운도 만족스럽습니다. 고급 와인에 비교할 만한 건 절대 아니지만, 나름 잔잔하고 괜찮은 느낌이 있네요. 빈속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질감과 바디, 산미가 두드러지는 맛, 괜찮은 여운이 어울려 마시기 편하고 뒷맛이 깔끔한 저가 화이트 와인이 되었습니다. 수준은 전혀 높지 않지만, 가격을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의 균형과 조화를 보여줍니다. 5천 원 정도의 가격에 팔립니다. 한 상자 사두고 심심할 때마다 차갑게 해서 마시는 데일리 와인으로 제격입니다.

2010년 10월 31일 시음했으며 개인적인 평가는 E로 맛과 향이 보잘것없는 입니다. 하지만 가격을 따져보면 C- 정도 주겠습니다. 양념 치킨, 닭 튀김, 생선회, 해물 종류, 한방족발, 각종 한식, 기타 가벼운 풍미의 음식 등과 잘 맞는 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