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스탈 까즈(L'Ostal Cazes)
병에 붙은 황금빛 원이 한가위의 보름달을 떠올리게 하는 와인입니다. 로스탈 까즈는 남부 프랑스의 미네르부아 라 리비니에르(Minervois la Livinière) AOC에서 재배한 4종류의 포도로 만들었으며 사용한 포도 품종과 비율은 시라(Syrah) 65%, 까리냥(Carignan) 13%, 그르나슈(Grenache) 12%, 무흐베드르(Mourvedre) 10%입니다.
시라를 가장 많이 썼고, 나머지 세 품종이 비슷비슷한 비율로 들어갔습니다. 시라가 많이 들어간 와인은 양념이 강한 우리나라 음식뿐만 아니라 향신료를 많이 쓰는 중국 요리와 동남아 요리에 제법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매콤한 고추와 땅콩을 함께 넣어서 볶은 궁보계정(宮保鷄丁)이나 매콤한 소스를 사용한 닭튀김 요리인 깐풍기를 안주로 하면 상당히 맛있게 마실 수 있죠.
우리나라 요리는 양념이 강한 것이 많아서 레드 와인 중에선 맞지 않는 것이 많지만, 이 와인이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소고기 불고기뿐만 아니라 고추장 양념으로 약간 매콤하게 조리한 돼지 불백과 함께 먹어도 좋은 궁합을 이룰 겁니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은 삼겹살이나 목살 구이에도 어울리고요. 그러고 보니 추석 때 가족과 함께 달을 보면서 이 와인을 마셨다면 흥취가 절로 살아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게도 로스탈(L'Ostal)이란 말은 랑그독(Langue d'Oc) 지역의 고어(古語)로 '가족'과 '그들이 사는 집' 양쪽을 다 뜻하는 말이랍니다. 로스탈 까즈(L'Ostal Cazes)는 이 와이너리의 소유주인 '장 미셸 까즈(Jean-Michell Cazes) 가족' 혹은 '장 미셸 까즈의 집'이란 뜻이 되겠네요. 레이블 모양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온 가족이 다 모이는 추석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와인입니다. 이래저래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머릿속에 떠오를 와인입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색은 진한 흑적색으로 영롱하게 맑진 않고 조금 흐립니다. 아마 자연미를 살리느라 정제나 필터링을 하지 않은 듯합니다. 과일 향이 풍부하게 나오지만, 특별히 개성적인 향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라 때문인지 과일 향 사이사이에 향신료 향이 약간 나타납니다.
질감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나 끝부분에 탄닌의 날카로운 느낌이 약간 나타납니다. 무게감이나 힘은 중간 정도. 그르나슈와 시라를 혼합했지만, 시라의 비율이 높아서 향신료의 맛이 강합니다. 한편으론 그르나슈 와인의 특징도 나타나며, 입안에서 독특한 자극이 느껴집니다. 남부 프랑스 와인은 보르도나 부르고뉴 와인과 비교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많은데, 이 와인도 복합적인 풍미는 두 지역의 와인보다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네 품종의 블렌딩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서 밋밋하지 않고 뚜렷한 개성을 지녔습니다.
백 레이블에 적힌 포도 종류를 보고 여운이 꽤 길고 강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짧더군요. 그래도 비슷한 가격의 다른 남부 프랑스 와인과 비교하면 꽤 긴 편입니다. 네 품종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마시기 즐겁고 균형 잡힌 와인이 되었습니다. 맛과 향이 뇌리에 깊게 남는 와인은 아니지만, 마셨을 때 나름의 개성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강한 양념으로 조리한 고기 요리, 강한 양념을 사용한 한식,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 중국식 닭 요리, 동남아 요리 등과 잘 맞습니다.
2010년 10월 1일 시음했으며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