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요 데 나바(Albillo de Nava), 베르데하(Verdeja)라고도 부르는 베르데호(Verdejo)는 스페인 카스티야 이 체온(Castilla y León)주의 루에다(Rueda) DOP에서 오래전부터 재배해 온 화이트 와인용 포도입니다. 베르데호 와인은 신선하고 밝은 감귤류와 멜론 특성이 나오고 산미가 균형 잡힌 것이 주류이지만, 풍부한 질감의 미디엄 바디 와인도 종종 생산됩니다.
1. 베르데호의 특성
1) 포도의 특성
베르데호의 포도송이와 포도알 크기는 중간 정도입니다. 포도 껍질은 두껍고 포도즙은 풍부하죠. 포도가 익는 동안 충분한 산도를 유지합니다.
베르데호의 특징이며 최대의 단점은 너무 빨리 산화(酸化)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르데호 포도는 보통 기온이 가장 낮은 한밤중에 수확하죠. 10~15℃의 서늘한 기온에서 수확해서 포도가 산화하거나 주스가 갈색으로 변하는 걸 막으려는 겁니다. 또한 수확하자마자 산소를 차단할 수 있는 통에 담아 양조장으로 옮기는 도중에 포도가 산화하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2) 와인의 특성
깔끔하고 신선하며 과일과 허브 향이 나오는 베르데호 와인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피노 그리(Pinot Gris) 와인과 맛과 향이 매우 비슷합니다. 소비뇽 블랑 와인과 비슷한 스타일은 가볍고 라임과 풀, 미네랄 풍미가 나옵니다. 오크통에서 발효 및 숙성하고 와인 산화 양조법 등을 사용해서 만든 와인은 풍부하고 부드러운 미디엄 바디에 구운 아몬드와 레몬 커드의 미묘한 풍미가 나옵니다.
베르데호 와인을 병에서 숙성하면 몇 년간 계속 품질이 좋아지며, 생생한 산도가 뒷받침하는 풍부한 질감과 구운 아몬드 풍미가 발달합니다. 만들기 까다롭고 장기 보관 능력도 떨어지는 베르데호 와인은 예전엔 스페인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양조 기술과 보관 기술이 발달로 점점 많은 베르데호 와인이 수입되고 있죠.
2. 베르데호의 역사
베르데호의 원산지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포도라는 것입니다. 1085년 스페인의 알폰소 6세(Alfonso VI)가 톨레도(Toledo)를 수복했을 때 두에로(Duero) 지역 일대엔 아스투리아인(Asturians)과 바스코인(Vascones), 이슬람 지배 아래에서 문화적으로 아랍화 된 이베리아 기독교도인 모자라베인(Mozarabs)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북아프리카에서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섬에 있는 알가이다(Algaida)를 거쳐 스페인 동부의 남북을 잇는 고대 로마의 가도인 은빛 길(the silver route)을 따라 베르데호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베르데호의 원산지가 스페인, 아마도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의 연구소에서 진행된 유전자 분석 결과 베르데호는 알프스 산맥이 원산지인 사바냥(Savagnin)과 스페인이 원산지인 카스텔레나 블랑카(Castellana blanca)의 교배로 탄생한 품종이란 것이 밝혀졌죠.
알폰소 6세의 통치 기간인 1072년~1109년 사이에 토로(Toro)와 티에라 델 비노(Tierra del vino), 마드리갈 데 라스 알타스 토레스(Madrigal de las Altas Torres) 지역, 루에다에 베르데호가 처음 심어졌습니다.
20세기 중반 베르데호는 보데가 마르틴산초(Bodega Martinsancho)의 앙헬 로드리게스 비달(Ángel Rodríguez Vidal)이 아니었으면 멸종될 뻔했습니다. 그가 루에다에서 재배한 베르데호로 만든 와인은 베르데호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이 업적으로 스페인 왕 후안 카를로스 1세(Huan Carlos I)는 그에게 농업 공로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산화가 잘되는 특성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 베르데호는 요즘처럼 신선한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아예 셰리(Sherry)처럼 강하게 산화한 와인으로 양조하기도 했었죠. 신선한 맛이 나는 베르데호 와인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와이너리인 마르께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이 저명한 프랑스 와인 학자인 에밀 뻬노(Émile Peynaud) 교수의 도움으로 새로운 베르데호 와인의 양조에 성공하면서부터였죠.
1980년대에 스페인 정부는 루에다의 화이트 와인에 지역 명칭(DO, Denominación de Origen)을 부여해 라벨에 "Rueda"라는 지역명을 넣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베르데호 포도를 적어도 50% 사용해야 하고 나머지 포도는 소비뇽 블랑이나 마카베오(Macabeo)를 넣도록 했죠. 만약 "Rueda Verdejo"처럼 품종까지 라벨에 표시하려면 베르데호 함량이 반드시 85%를 넘어야 합니다. 종종 베르데호 100%로 만든 와인도 생산됩니다.
3. 베르데호 와인 생산지
베르데호는 카스티야 이 레온에서 대부분 재배하며, 특히 루에다는 전 세계에서 베르데호 포도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입니다. 루에다의 토양엔 모래가 많아서 포도뿌리혹벌레인 필록세라(phylloxera)에 자연적인 내성을 가진 곳이 많고, 이 중 일부는 맛과 향과 개성이 가장 풍부한 베르데호 와인을 생산하는 오래된 포도밭이죠. 오늘날 루에다에는 1,500명 이상의 포도 재배자와 62개의 와이너리가 베르데호 와인을 생산합니다.
4. 베르데호 와인의 향
베르데호 와인의 주요 향은 라임(lime)과 그린 멜론(green melon), 자몽 껍질(grapefruit pith), 회향(fennel), 흰 복숭아(white peach) 등입니다. 사과와 오렌지 기름, 아카시아 같은 흰 꽃, 아몬드 같은 견과류 등의 향도 나옵니다.
5. 베르데호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시트러스 소스나 견과류 소스를 사용한 닭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백색육과 가자미와 조개 같은 해산물 요리가 잘 맞습니다. 향신료와 코코넛 소스를 많이 사용하는 동아시아 요리와 라임을 많이 쓰는 멕시코 요리와 어울리며, 두부와 감자, 아티초크(Artichoke), 파, 피망, 아스파라거스, 아보카도, 파인애플, 망고, 양파 같은 과일과 채소를 사용한 음식도 베르데호 와인의 좋은 파트너가 되죠. 치즈는 양젖 치즈와 페타(Feta), 리코타(Ricotta), 페코리노(Pecorino)가 좋습니다.
산도가 높은 베르데호 와인은 레몬이나 라임 같은 새콤한 소스를 사용한 음식과 어울리며, 오크 숙성을 해서 다소 묵직한 베르데호 와인은 크림이나 코코넛 소스를 사용한 음식과 먹으면 좋습니다.